정부의 풍년 트라우마에 농민 맘 놓고 농사 못지어
정부의 풍년 트라우마에 농민 맘 놓고 농사 못지어
  • 본지 편집국장 김재민
  • 승인 2013.10.31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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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풍작에 농민들 오히려 울상

2010년, 2011년은 우리 국민이 주식처럼 생각하는 품목의 공급이 부족해 엄청난 혼란을 겪었던 해이다.
2010년은 잦은 강우와 태풍 등의 영향으로 마늘, 고추, 배추 등의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폭등하고 정부가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수입해야만 했다.

2011년은 그해 봄까지 이어진 구제역 그리고 고병원성AI 피해로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이 부족해 축산물 가격이 폭등하며 정부는 또 다시 엄청난 양의 삼겹살을 수입해 시장에 공급해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2년에는 한우, 돼지고기 가격이 폭락해 농가들이 생존권 투쟁에 나섰고, 올해는 마늘에 이어, 고추, 배추까지 재배면적이 늘거나 풍작으로 공급량이 늘면서 가격 폭락에 농민들이 울상이다.

올해는 쌀까지 풍작이 전망되고 있어 주요 농산물 가격이 모두 하락해 소비자들은 큰 이익을 보고 생산자인 농민들은 손실을 보는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가축의 질병, 농작물은 병해충 발생이나 일기불순으로 흉작에 대한 걱정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풍년에 울상을 짓고 있는 농민들이 대다수라는 것은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그것도 식량자급률이 20%니 30%니 하는 식량빈국에서 말이다.

이 같이 풍년을 걱정하게 된 것은 우리 농업이 개방돼 부족한 식량을 마음껏 수입해다 먹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우리 농업이 자급보다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농업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자급농업이 주류이고 수입이 제한적으로 이뤄질 때야 많이 생산되면 더 풍족히 먹을 수 있게 돼 축복이 되지만, 상업농업으로 전환된 이후부터는 풍작보다는 오히려 흉작을 기대하는 역설이 우리 농업에서 일어나고 있다.

배 가격이 폭락하면, 태풍이라도 한번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자조섞인 이야기가 나오고 한우 값이 구제역이라도 발병해서 싹 묻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아마도 투자는 투자대로 했고 열심히 일했는데 역설적으로 오히려 손실을 보는 상황에 대한 한탄일 것이다.
역대 정부는 농산물의 수급을 정확히 맞추기 위한 노력을 수도 없이 해왔다.

주요 농축산물의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에 대한 전망, 수급에 대한 관측이 실시되고 계약재배, 수직계열화 등 농가를 조직화 하려는 시도도 계속됐다.

공급이 부족한 시기에는 재배면적을 늘리려는 시도로, 또 가격이 폭락하면 재배면적을 줄이려는 노력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지만 농산물은 언제나 늘 남거나 모자라거나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참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쌀 목표 가격 문제도 뒤 짚어 놓고 보면, 풍작이 계속되면 목표가격도 내려 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정부가 수급조절위원회를 만들고 직불금을 지급하는 등 여러 가격안정과 소득안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풍작에 농민들이 기뻐 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취임 시 가격 보장보험의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해만 보장하는 보험이 아니라 가격 하락에 따른 위험도 보장하는 보험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의 정책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가격보장보험이 됐든 쌀변동직불금과 같이 직불금형태가 됐든 간에 정부가 풍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쌀 목표가격 인상에 정부가 반대하는 이유도 쌀생산 증가와 그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재정이 직불금으로 과도하게 들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인데, 정부가 이런 식으로 풍작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 농민들의 풍년 트라우마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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