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 "농민운동 ‘단순함’이 필요할 때"
훈수 "농민운동 ‘단순함’이 필요할 때"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4.09.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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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이하 한농연)와 쌀전업농중앙연합회(이하 쌀 전업농)는 지난해부터 이어온 쌀시장 개방과 관련해 농민단체로서는 이례적으로 개방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개방을 안 하면 좋겠지만, 여러 상황과 국제법을 따져보니 개방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정부 측의 입장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었는데, 쌀 변동직불금 금액의 인상, 정책자금 금리인하 등 여러 가지 농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달리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앞뒤 가리지 않고 반대 입장을 나타냈고 협상만 잘하면 쌀시장 개방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정부에 개방 반대 입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쌀시장 개방 반대는 일부 농민단체의 주장으로 폄하됐고 통상관련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부담없이, 쌀 시장 개방 선언, 관세율 결정, 쌀 산업 발전대책 발표를 밀어 부쳤다.
그런데 한농연과 쌀 전업농이 줄기차게 요구한 정책금리 인하 등의 쌀 산업 발전 대책은 제대로 반영이 안 되거나 대책에는 들어갔는데 내년도 예산안에는 빠져 실행의지를 의심받고 있고 과거부터 해오고 있는 정책이나 지원을 연장하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분명히 농민들이 피해를 보고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농민단체들이 지혜롭게 행동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필자는 UR협상 이후 진행된 수많은 시장개방 논의에 있어 농민단체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분석 한 결과, 앞뒤 가리지 않고 반대를 했던 때는 정부로부터 많은 정책적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때에는 별 소득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농민단체의 반대가 집중됐던 개방이슈는 UR협상, 한칠레 FTA 협상, 한미 FTA협상으로 정부는 농민들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많은 투융자사업과 제도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EU‧캐나다‧호주 그리고 이번에 쌀 개방과 관련해서는 이해가 엇갈리는 품목단체들이 중심이 돼서 움직였을 뿐 단결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별 대책을 끌어 내지 못했다.
특히 이번 쌀시장개방의 건과 관련해서는 아예 농민단체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와 국회가 쉽게 개방 결정을 내리는데 일조를 했다.
굳이 정부와 정치권이 농민들에게 당근을 줄 필요가 없겠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최근 농민단체들 사이에서 연구소를 만드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농연과 전국농민회에 이어 품목농민단체인 낙농육우협회가 연구소를 열었고 대한양계협회는 닭능력검정소를 확대해 정책연구기능을 수행하겠다는 안을 수립한바 있다. 전국한우협회도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서울대와 MOU를 맺고 강원도 평창에 한우연구소 설립을 추진한바 있다.
자조금사업이 잘 진행되는 품목의 경우 외부 연구 인력을 각종 논리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과거와 달리 무조건 거리로 뛰쳐나가는 게 아니라 과거와는 다르게 좀 더 세련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언론도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도 갖췄다.
기후변화, 식량주권, 식량안보, 식량자급률 등 농업 보호 논리를 농민들 스스로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정부(농식품부 제외), 정치권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민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논리를 이야기 하는 순간 그러니까 농민들이 논리로 무장해 정부와 정치권을 설득하기 시작하면서 농민단체는 정부와 정치권에 로비를 하는 압력단체의 하나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식량안보, 식량자급과 같은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공부 많이한 정치인, 공무원, 학자님들이나 이야기하라 하고 농민들은 이익을 본다면 찬성, 손해를 본다면 반대라는 단순한 논리로 연대하고 주장을 펼쳤던 시대 그때의 농민운동이 더욱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농민단체도 초심으로 돌아가 안으로는 탄탄한 논리를 개발해 농민들을 교육함으로써 내부 결속과 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외부로는 좀 더 단순한 구호로 시민사회와 정부와 정치권에 어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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