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 개혁’ 기로에 선 가락시장
‘농산물 유통 개혁’ 기로에 선 가락시장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4.10.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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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제도 논란을 통해 바라본 도매시장 활성화 방안

국내 모든 농산물은 생산자와 구매자의 견제와 협력 속에 가격이 결정되고 산지에서 소비지로 이동해 최종 소비자에게까지 전달된다. 특히 독점적 지위를 가진 농민이 없고, 독점적 지위를 가진 유통인이 없는 품목에서는 이른바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그 가격을 모든 거래주체가 수용하는 형태가 된다.

어떤 농업인이나 유통상인도 농산물 가격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를 경제학에서는 완전경쟁시장이라 부르는데, 완전경쟁시장과 가장 흡사한 것이 이 농산물 시장이다. 완전경쟁 시장에서 가격을 움직일 수 있는 변수는 오직 농민들의 재배의향, 소비자들의 수요변화 그리고 기후에 따른 작황뿐이다.

과거 산지와 소비지 상황에 밝아 폭리를 취하는 유통인들의 횡포를 막고자 만들어진 것이 농산물도매시장 그리고 1990년대 정착한 상장경매제도다.

경매제의 도입과 의무화, 마지막으로 전자경매로 진화된 도매시장 내 거래방법은 계속된 문제발생과 제도개선을 통해 투명한 가격 형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구현해 냈다. 여기에 도매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생산자와 수요자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 유통비용 절감에도 큰 공을 세웠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수급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불만이 늘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데 있다. 연중 가격 변동이 거의 없는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앞에서 말한 변수로 인해 하루 사이에도 가격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손해본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가격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연구가 지속됐다. 여기에 대형소매유통의 등장과 이들 유통주체간의 치열한 경쟁은 농산물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대형유통업체와 같은 직거래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요구되면서 도매시장의 거래방법 개선에 대한 변화 또한 시도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가락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과 맞물린 시장 내의 거래제도 논의는 지난 수십년동안 풀리지 않은 숙제였다. 본지는 가을특집호를 발행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진단해 본다. 

 

■ 농산물 유통 화두 '효율성' 

 과거 20여년 전 위탁상 시대 농산물 유통문제의 화두가 가격 ‘투명성’이었다면 지금의 유통업계와 정부는 ‘효율성’에 정조준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형유통업체와 SSM(Super SuperMarket)과 같은 소매유통채널들도 도매시장을 경유하기보다 산지와의 직거래나 계약재배, 물류센터 건립을 통해 농산물 유통의 수직계열화 비중을 높여나가는 것에서 나아가 IT와 결합한 모바일 유통까지 겨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체인스토어 협회가 발표한 유통업체 연감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2006년 이후 연평균 6.9%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SSM도 연평균 26.5%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농산물 출하자들도 각 농민단체와 연계해 정부의 직거래 활성화 정책에 발맞춰 직거래 장터 운영 등에 앞장서고 있고 경매단계를 거치지 않는 거래방법을 운용하고 있는 시장도매인도 서울강서시장에 2004년 개장 이후 연평균 10.25%의 거래금액 성장세를 나타내며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한국시장도매인연합회가 본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강서시장 내 경매제 시장과 비교한 시장도매인제 시장은 시설물 활용측면에서 거래물량 2.3배, 거래금액 3.1배 이상의 효율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유통의 초점이 ‘효율’에 집중되면서 정부가 나서서 경매제 이외의 거래제도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최근 ‘청과 도매시장 중장기 발전 로드맵 연구’ 공청회를 통해 시장도매인제를 가락시장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시장도매인제는 시장 안팎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 각 이해주체 교섭 도구 ‘경매가격’
 
전국에서 생산되는 국내 농산물은 가락동의 경매시장에 특·상·중·하품이 자유롭게 반입된다. (출하자-도매법인)-경매-(중도매인-소매거래처)로 구성된 경매 유통구조에서 가격 교섭력이 미약한 출하자(농민)들은 도매법인을 통해 교섭력을 높이고 소매거래처 입장을 대변하는 중도매인은 또 법인과의 협상으로 가격의 균형과 견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법인은 좋은 농산물을 공급받기 위해 출하자를 고객으로, 반대로 출하자는 도매법인을 가격을 교섭해 주고 중도매인을 연결해주는 출하통로로 여긴다. 여기에 법인은 거래금액이 큰 중도매인들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뒤엉켜 있는 갑을 관계가 국내 농산물 유통의 기준가격이 되는 ‘경매가격’을 탄생시킨다.
 
경매가격이 반드시 공정가격이라 할 수 없지만 이 가격은 각 유통주체의 이해가 얽힌 최적의 시스템으로 인정받으며 지난 1994년 농안법 개정 이후 국내 농산물 유통에 있어 기준가격으로 또 수급조절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거래가격은 이후 여러 농산물유통경로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대형마트와 산지와의 직거래는 물론 새롭게 시도된 시장도매인, 정가수의매매, 산지유통인과 농민과의 포전거래 가격, 농협과 조합원간의 거래 등 다양한 곳에서 기준가격 역할을 하고 있다.
  
 
■ 농산물 가격 하향 평준화 우려.
 
시장도매인제는 경매를 제외한 출하자-시장도매인-소매거래처로 구성된 유통구조로 경매유통구조인 하역과 선별을 포함한 도매법인-중도매인을 시장도매인으로 묶어버린 이론상으로 간단한 구조다. 다만 산지 조직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우리나라 여건상 출하자와 시장도매인 간 정보 비대칭성과 거래교섭력 차이는 부가가치 배분에 왜곡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시장도매인제도가 가락시장에 도입되고 도매법인들의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상위 중도매인들이 시장도매인으로 탈바꿈하면 국내 농산물의 기준 가격이 되는 경매가격은 장기적으로 하향 평준화가 될 우려가 있다. 도매법인들보다 거래폭이 넓은 시장도매인들은 도매시장에서 특·상품 등 좋은 물건을 선점, 경매시장에는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농산물이 상장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경매가격은 떨어지고 연쇄적으로 시장도매인제 거래가격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나아가 농산물 가격의 척도가 되고 있는 경매가격 하락으로 출하자들(농민)은 농산물 가격협상에서 그 어떤 주체와의 거래에서도 피해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결국 경매가격은 대표성을 잃고 농산물 유통주체들은 기준가격을 찾기 위한 가격 탐색에 큰 비용을 지불할 우려도 존재한다.
 
■ 시장도매인 연쇄부도 가능성도.
 
이처럼 경매가격이 대표성을 잃게 되면 경매 거래는 위축되고 단기간에 시장도매인 시장 또는 직거래 시장으로 물량이 몰리는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축산 유통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과거 전체 돈육유통 물량의 30%가 공판장 등 도매시장을 통해 유통되던 돼지가 경매가격이 대표성을 잃으면서 순식간에 도매시장 가격체계가 무너지고 육가공업체나 직거래로 물량이 흘러간 예가 있다.
 
문제는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시장도매인에 물량쏠림 현상이 가중되고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과거 경매제 유통구조 가지고 있던 출하자-도매법인-중도매인 등으로 분산됐던 리스크는 고스란히 시장도매인에 한꺼번에 쏠려 연쇄부도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유통 전문가들 사이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역할.
 
도매시장 법인들과 소규모 중도매인들 그리고 출하자들까지 가락시장에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경매제도와 정가수의매매로도 경쟁력을 높이는 데 충분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다른 거래제도의 도입보다는 정가·수의매매에 대한 인센티브를 집중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한편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건설과정에서 복잡한 교통문제를 완화해 대형유통업체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논의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공사가 9월 18일 개최한 공청회에서도 각 패널들과 참가자 다수는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우려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최근 공사는 각 도매법인에 '가락시장 중장기 발전 방향 연구용역 경과 보고'를 서면으로 통보하고 공청회 당일의 총평을 내놨다.  공사는 총평에서 ‘하나의 거래제도가 가장 적절한지 유통환경의 급변으로 아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며 ‘경매 이외의 다양한 거래제도의 부분적 수용과 제도 간 경쟁을 통해 시장발전을 도모해야 함’이라고 밝혔다. 지난 공청회가 무색해 지는 총평이었다.
 
가락시장 내 수많은 관계자들은 공사가 이미 답을 정해놓고 모든 문제를 풀려하고 있다고 푸념한다.  공사는 이제 가락시장 내에 퍼지고 있는 여론에 귀 기울이고 좀 더 신중한 검토에 들어가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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