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배추가격 하락 1년… 무엇이 문제인가?
[심층진단] 배추가격 하락 1년… 무엇이 문제인가?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4.11.13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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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단기적 대책만 재탕…산지격리·폐기 무용지물
농협 통한 계약재배 배추가격 하락 근본원인
외식업계 중국산 김치 수요 꾸준...관세 낮아져 수입 늘 듯

본격적인 김장철이 다가오면서 배추값 상승을 기대했던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배추가격이 지난해 10월부터 평년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 형성되면서 배추 농가들의 채산성 악화는 물론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유통인들마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과잉되는 배추물량에 대한 선제적인 산지격리와 확대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 농민과 유통업계에서는 정부의 대책이 무용지물이라며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자의 말>

■ 배추도매가격 1년 넘게 평년 밑돌아
 
배추가격은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평년보다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13년 10월에는 10kg기준 배추 상품평균 가격이 4161원으로 동월 평년가격인 5505원보다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올해 4월에는 평년 동월보다 80%가까이 떨어진 2301원을 기록하면서 바닥을 쳤으며 9월에는 6313원, 10월에는 3634원으로 각각의 평년 가격인 8599원, 5505원보다 크게 밑돌았다. 11월 초에도 배추도매가격은 3500원대에서 머물렀고 11월 13일에는 3406원을 기록하며 평년 11월 평균 가격인 5112원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 산지격리·폐기 정책 실효성 의문
 
정부에서는 계속되는 배추값 하락에 산지격리와 폐기 등의 정책을 발표하고 이를 하루빨리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대책으로는 가격 회복을 꾀하기는 힘들다는 주장이다. 격리·폐기 비용 중 정부 지원금이 너무 낮아 자발적인 농가와 유통인들의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11월 30일까지 가을배추 4만5000톤에 대해 자율감축과 정부격리를 실시할 예정인데 정부의 지원 수준은 배추밭 10a(302.5평)당 계약재배 최저가격인 71만원이다. 자율감축의 경우 정부가 절반, 유통인이 절반을 부담하게 되고 정부격리의 경우 정부에서 80%를 보전해 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배추 산지유통인이 약 300평의 배추밭을 자율감축 하게 되면 35만5000원을 지원받는 셈인데 이는 평당 1183원꼴이다. 평당 배추생산원가가 6000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수치라는 것. 정부격리의 경우도 지원금이 낮은 것은 매한가지다. 이 경우 배추농가나 산지유통인들은 평당 1893원을 지원받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장에서는 정부의 격리·폐기 정책에 참여하는 비율이 낮고 참여를 하더라도 상품성이 좋지 않은 배추들만 격리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 농협통한 배추 계약재배 목표설정 재검토 필요
 
정부가 배추 생산안정화를 꾀한다며 추진하고 있는 계약재배가 오히려 배추 재배면적을 줄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면서 가격 상승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2012년 1만3408ha, 13년 1만5095ha, 14년 1만5233ha로 매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격이 떨어지면 재배면적이 줄었던 과거와 달리 12년과 비교해 13년에 배추가격이 절반가까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오히려 상승한 것이다.
 
시장상황에 따라 포전거래를 줄이는 방식으로 일선 농가의 배추재배면적을 줄이는 역할을 했던 산지유통인과 달리 농협에서는 오히려 계약재배 면적을 늘리며 배추값 하락을 견인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단 계약재배를 하게 되면 다른 품목으로의 작목전환이 어려워져 배추가격이 폭락할 때도 계약재배물량은 일정하게 시장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농협에서는 올해 봄배추 174ha, 고랭지배추 750ha를 계약재배 하고 있으며 가을배추의 경우 지난해 740ha에서 50ha를 늘려 790ha에 배추를 계약재배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앞으로 농협을 통해 계약재배 물량을 전체 배추생산량의 절반 가까이 점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시장가격 상승을 막고 가격이 폭락할 경우 농협의 재정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유통관계자는 “농협에서는 배추 안정생산을 목적으로 계약재배로만 1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붓지만 가격이 크게 하락할 때는 농협의 재정악화만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협의 계약재배 확대정책은 가격 폭등을 막는 견제장치에 불과할 뿐 가격이 하락할 때는 다수의 배추 농가에서는 피해만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수의 산지유통인들도 “배추의 경우 폭락과 폭등 반복으로 그나마 현상유지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계속적인 가격하락으로 폐업하는 유통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협의 계약재배 확대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외식업계 중국산 김치 선호…한중FTA로 김치관세 낮아져
 
국내산 배추 가격이 하락하면 김치 수입은 줄이고 국내산 배추 사용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외식업계에서는 꾸준히 중국산 김치를 선호하고 있다. 국내에서 김치를 생산할 때 소요되는 인건비와 기타 양념채소류 등의 비용이 중국보다 월등히 높아 가격경쟁력에서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타결된 중국과의 FTA 협상에서 중국산 김치수입에 대한 빗장은 오히려 풀리는 상황이다.
 
이번 협상에서는 고추·마늘·양파·생강 등 양념채소와 배추와 무 등 주요 밭작물의 경우 양허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이들 원료가 쓰이는 김치의 경우 정부는 현행 20%의 관세를 10%(2%p) 이내에서 부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중국에서 18%의 관세만 물면 국내에 자유롭게 중국산 김치가 유통될 수 있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김치는 월평균 1만8000톤 가량이며 이중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지난 한해동안 수입한 김치 물량은 총 21만3198톤으로 연간 20만톤 이상의 수입김치가 꾸준히 국내시장에 풀리고 있다. 우리나라 상품김치(가정제조 제외)의 시장규모는 50만9000톤(추정치)으로 이중 절반 가량은 중국산이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계속되는 김치수요 하락과 중국산 김치의 국내 시장 위협에 하루빨리 국내산 김치시장을 활성화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치자조금설립을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는 한편 유통업체와 연계한 대형 이벤트, 정부의 전폭적인 가격지지정책 지원과 소비활성화 정책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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