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방 20년 우리 농업에 남긴 것은
시장개방 20년 우리 농업에 남긴 것은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4.11.21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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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협상 이후 출범한 WTO 체제 속의 자유무역확대는 농산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상품과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의 개방이 이뤄졌지만 이를 농산물 분야로 한정할 때, 자유무역으로 과연 인류의 식량문제 좁혀서 우리의 식량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시장개방 20년 불확실성 높아진 환경
1995년 1월 WTO가 출범했으니 어느덧 자유무역을 기본전제로 한 국가 간 무역이 도입된 지 20년이 됐다.
WTO 체제 속 농산물 시장은 기본적으로 축산물을 저율관세로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골자였고 일반농산물은 고율관세, 가공품은 20~40%대의 저율관세로 시장 개방협상을 마무리한 바 있다.
먼저 저율관세로 시장이 개방된 품목인 축산물과 일부 유제품, 가공농산물은 우리 농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축산물의 경우 2001년부터 꾸준한 가격 상승으로 농가들이 부유해진 것처럼 보였지만 쇠고기의 경우 국내산의 시장점유율이 50%만 넘어서면 가격이 폭락하고 있고 돼지고기도 시장점유율 70%가 마지노선으로 그 이상 생산량이 증가하면 여지없이 가격 폭락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
국내산 축산물의 공급량이 줄어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면 돈을 벌게 될까. 그렇지도 못하다.
국내산 축산물의 가격이 상승하면 국내산과 수입산의 가격차를 활용해 추가 수익을 얻으려는 수입업자들이 수입량을 늘리면서 다시 가격을 하락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축산업자들은 어느 수준에서 공급량을 맞춰나가야 할 지 어느 부분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인지를 늘 고민하고 있고 농가들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가격이 하락하고 또 상승하는 불확실성이 높아진 환경에서 축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티핑 포인트는 어떤 상황이 처음에는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균형을 깨고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변화되는 극적인 순간을 말하는데 2002년 대규모 잉여원유사태, 2010년 여름배추 파동, 2011년 한우가격 폭락사태, 그리고 올해 낙농유가공업계가 격고 있는 2차 잉여원유 상황 등이 여기에 속한다.

■ 티핑 포인트를 오가는 곡예 농업
티핑 포인트를 가장 많이 오가는 품목은 양돈과 배추다.
양돈분야는 시장 개방 이후 가격 폭락과 폭등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품목으로 구제역, PED, 소모성질병과 같은 질병 리스크가 없었다면 시장점유율에서 균형을 맞추기 가장 힘든 품목이 됐을 것이다.
이 같은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국내 축산농가들의 폐업은 가속화 됐고 그 과정에서 일부 농가가 규모를 키우며 큰 이익을 보는 듯 했지만 앞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시장개방의 영향은 농가들이 좀처럼 돈을 벌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가고 있다.
결국 생존을 위해 농가들은 규모를 키우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생산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마저도 수입축산물 관세를 추가로 인하하는 FTA 체결로 농가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배추 등 김치의 주재료를 생산하는 농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배추, 고추와 같은 농산물의 관세는 매우 높게 책정돼 있는데 반해 김치와 가공한 양념류의 관세는 낮아 이들 가공품 형태로 수입이 이뤄지면서 국내 배추농가와 고추, 마늘 등을 재배하는 농가들은 가격 하락에 시름하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생산량이 조금이라도 늘면 가격이 폭락하기 일쑤고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상승하면 수입 김치나 가공된 양념류가 들어오면서 농가들이 돈을 벌 기회를 박탈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식량자급률 20%대의 식량 빈국에서 이러한 이유로 배추밭을 갈아엎기를 반복하고 축산물 소비촉진, 암소도태니 하는 비상상황이 반복해 일어나는 아이러니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수입축산물과 경쟁 결과는
우리 축산물 시장은 세계 축산선진국들의 각축장이 된지 오래다.
각종 소나 돼지의 뼈, 머리, 내장, 삼겹살과 같은 기름이 많은 부위는 축산선진국들은 소비를 하지 않거나 소비가 잘 되지 않아 수급조절에 애를 먹는 품목이다.
그들이 사료나 폐기물로 처리하거나 아주 저가에 판매하던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고가에 거래가 되는 품목들이다.
우리는 소나 돼지의 다양한 부위를 활용해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소비해 왔던 민족인지라 축산 선진국들 눈에는 우리 시장이 자국 축산물 수급을 조절하고, 또 추가적 이익까지 얻어 낼 수 있는 시장으로 분류되고 있고 너도나도 국내 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 축산물과 그들의 수출품목은 애초 가격 경쟁력을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격 경쟁력을 갖춰 수입축산물과 경쟁하자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경쟁력을 높여 시장개방을 우리 농축산물의 수출기회로 삼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여름 2.1조원 규모의 영연방(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국가와의 FTA에 대비한 대책을 내 놓았다. 미국, EU 등 주요 선진국가 FTA가 체결될 때마다 경쟁력 강화, 생산성 향상 등을 명목으로 한 대책을 쏟아 냈지만, 실제 이들 돈이 쓰여 농가들의 경쟁력이 향상됐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없다.
정부는 규모화 된 외국의 농장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 농민들을 독려해 농장의 규모 키우기로 대항했지만, 우리 소비자들은 야박하게도 우리 축산업을 공장형 축산이라 규정하고, 도리어 축산물 소비를 줄여버리는 상황까지 도래하고 있다.
품질고급화를 해야 한다며 기름기 많은 고급육을 생산하고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 와서 건강에 좋지 않다며 기름 많은 우리 축산물을 안 먹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조직화를 해야 한다며, 수직계열화에 몰두했지만, 농가들이 자본에 종속돼 생활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자본의 눈치를 보며 축산물을 키워야 하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시장개방 20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달려온 시간, 진지하게 시장개방에 따른 결과는 무엇이고, 농업이 생존하기 위해 도입해야 하는 정책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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