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계 농가는 앞으로 닭을 키울 수 있을까”
“청정계 농가는 앞으로 닭을 키울 수 있을까”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4.12.12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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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회사 따라 바뀌는 농가 처지 개선 필요

청정계 부도로 사육보수를 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농가들이 앞으로 계속 양계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육계산업은 산업이 도계장과 사료회사 중심으로 수직계열화 된 이후, 계열사들이 원자재와 출하처를 독점하고 있어 농가는 병아리를 구입하는 것도 쉽지 않고, 닭을 키워 시장에 내다 팔 곳도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정계의 부도로 당장 닭을 키우지 못하고 있는 100여 농가는 앞으로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2008년 신명․우림 농가는 어디로
닭계열회사가 도산한 경우는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닭고기 가격이 장기간 좋지 못하거나, 원자재인 사료가격이 폭등했을 당시 여러 회사들이 부도가 났고, 거래하던 농가들이 일정 기간 닭을 키우지 못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던 적은 부지기 수였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당진의 ‘매산’이 문을 닫았고, 2008년에는 호남의 ‘신명’과 ‘우림’도 부도가 난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밀린 사육료를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가지고 있던 닭을 처분해 어느 정도 손해를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장 상황이 속속 정리되면서 인근 계열화업체와 농가들이 하나둘 계약을 맺으며 다시 닭을 키울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충남 당진이나 호남지역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수위를 다투는 하림, 동우 등의 거대 닭계열사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닭고기 시장이 안정되면서, 시일은 걸렸지만, 다시 닭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경기 북부 육계의 불모지
이와 달리 청정계 농가들은 상황이 다르다. 경기북부지역에는 마땅한 계열회사가 없다.
정우식품, 청정계, 마니커의 도계장이 위치해 있었으나, 정우식품은 산란성계와 토종닭을 주로 도축하는 회사들이고, 마니커가 유일한 대안이지만 마니커의 상황도 매우 좋지 못해 100여 농가를 수용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도가 난 청정계를 누군가 인수해 이들 농가들을 흡수한다면 모를까 현재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개인이나 회사들은 없는 상황이다.
아마도 사육시설이 좋은 몇몇 농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농가가 장기간 닭을 키우지 못하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잘못인가?
이번 청정계의 부도 문제는 누구의 잘못인가?
아마도 거래하는 회사가 부도가 났다고 해서 농가들이 함께 부도를 맞는 사례는 아마도 국내에서는 닭고기 분야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품목은 특정 회사 한 곳에 목을 매고 살지 않고 여러 주체에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거래하는 회사가 망하고 농축산물 대금을 받지 못한다 해도 당장은 손해를 입지만, 언제든지 출하처를 바꿔 다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닭고기만은 수직계열화라는 독득한 구조로 인해, 계열사 없이 닭을 키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지역에 거래를 할 만한 회사가 없다면, 닭을 키울 수 없게 돼 있다.
더군다나 이번 청정계의 부도에 농가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본인들이 닭을 키우지 못하게 된 상황이 자신들의 행위가 아닌 외부에서 일어난 닭고기 공급과잉이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책임은 대책 없이 닭을 입식시키고 있는 국내 거대 닭고기 계열사들의 잘못이고, 이들 업체들의 앞뒤 안 가리는 영업행태 그리고 경쟁 속에 약한 업체와 거래하는 농가들은 본인들의 경쟁력과 상관없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뒷짐만
이러한 구조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낙농의 경우 유업체가 망해 거래할 곳이 없어진 낙농가들을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 거래할 수 있는 업체를 만들어 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은 원유가 남아돌아도 못 파는 업체 한 곳이 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그 리스크를 전체 농가 그리고 전체 유업체들이 나눠 질 수 있도록 시스템도 만들고 있다.
결국 지금과 같은 공급과잉 상황에도 농가도 회사도 보호를 받고 있지만, 닭고기만은 회사도 농가도 공급과잉에 따른 위험에서 보호받을 만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인천축협의 유가공공장을 인수해 유가공사업에 뛰어 들었던 동서식품이 고름우유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사업을 철수할 당시 동시식품에 납유하던 농가들을 서울우유를 비롯한 다른 유업체와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직접 관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농가와 유업체가 직접거래 하는 대신 정부가 만든 공공기관인 낙농진흥회를 통해 거래 할 수 있도록 낙농진흥법 등을 만들어 대처하기도 했다.

■회사의 경쟁력이 농가의 경쟁력
양계협회를 비롯한 관련단체들도 과거의 사례 등을 가지고 이번 사태에 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수급조절과 농가와 닭고기회사들의 안정을 위한 유통구조 개선책 마련에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닭계열화사업은 농가의 경쟁력과 무관하게 경쟁력 있는 회사와 거래하는 농가들이 돈을 더 버는 구조로 되어 있다.
경쟁력 있는 회사는 하림 등 4개 회사 정도가 손에 꼽히고 있는데,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이미 60%를 넘어서 과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사업계획에 따라 나머지 회사와 거래하는 농가들이 키울 수 있는 닭의 양이 결정되거나 또는 닭을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육계사육농가 간 지역별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새로운 갈등으로 번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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