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모래 위 양계‧오리산업, 종자부터 다시 시작해야
[이슈분석] 모래 위 양계‧오리산업, 종자부터 다시 시작해야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5.01.12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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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고병원성 AI가 발병하면서 국내 육계업계가 장기적으로 병아리 수급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발 AI가 국내 축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심층 분석해 본다. <편집자 주>

■ 양계산업 미국 의존도 너무 높다
 
이번 AI 발병으로 미국에서 생산된 가금육과 가금류의 수입이 중단되면서 당장 신선육은 브라질 등으로 수입처가 바뀌면서 다변화될 것으로 보여 가금류 수급에는 별 영향이 없어 보인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에서 도입되는 종계와 원종계가 국내로의 도입이 늦어지면서 내년 하반기 육용 및 산란용 종계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2016년 상반기에는 병아리 공급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축산환경은 우리나라와 달리 가금류 사육농장이 밀집돼 있지 않기 때문에 AI가 우리나라에서처럼 전국으로 확산되는 등의 일은 없겠지만, 수입금지 조치가 장기화 될 경우 종계 및 원종계 도입이 늦어지며 국내 닭고기 및 계란 수급에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 양계산업은 미국의존도가 매우 높은데, 하림과 삼화육종, 한국원종 등이 도입하고 있는 육용원종계가 모두 미국에서 들여오고 있고 국내 산란계 시장의 70% 점유하는 산란원종계도 미국 품종이다. 다만 산란종계의 경우 프랑스와 독일, 덴마크 등에서 대체 품종을 이미 수입하고 있어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육용종계의 경우는 사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 종계수급 악영향 2007년과 동일
 
2007년에도 프랑스와 영국, 덴마크, 독일 등 유럽전역에서 고병원성 AI가 발병하면서 유럽에서 종계를 주로 수입했던 국내 채란업계와 육용오리업계가 병아리를 제때 공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이번 미국발 AI로 미국에서 원종계를 전량 수입하고 있는 국내 육계산업도 같은 전처를 밟게 된 것이다.
 
2007년 유럽에 AI가 광범위하게 확산될 당시 그나마 미국에서 종계수입이 가능했던 국내 양계산업은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었지만, 프랑스와 영국 두 곳에서 육용종오리를 수입했던 국내 오리 산업은 병아리를 제때 수급 받지 못해 사실상 고사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오리업계는 F1인 실용오리를 종오리로 사용했는데 종란의 생산성과 부화율 등은 물론 육성률까지 좋지 않아 많은 손실을 입었지만, 종오리를 수입할 수 없었던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이후 축산분야 종자주권 문제가 크게 대두됐지만, 유럽의 AI 발병이 잠잠해 지면서 더 이상 이슈화되지 못했다.
 
■ 종자주권 논란이란?
 
종자주권문제가 가장 먼저 제기 된 때에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국내 굴지의 종자회사들이 외국 기업에 팔려 나가던 때였다.
 
국내 종자 산업은 1970년대 일본을 급속히 추격하더니 1980년대 중반 들어 일부 품종에서는 일본을 앞도 하는 우위를 점하게 됐고 1990년대 고추 등 몇몇 품종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 품질을 보이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수출하는 효자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외환위기 당시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국내 종자회사들은 정부 등에 긴급히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국가 부도 사태에 챙겨야 할 산업이 많았던 정부로서는 국내 종자업계까지 지원을 하지 못했으며 국내 유전자원이 외국으로 헐값에 넘겨지고 있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어할 수 없었다.
 
이후 우리 정부가 품종보호협약에 가입하고, 품종 로열티 문제가 불거지면서 종자주권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외환위기 당시 다른 산업보다 종자업체를 정부가 먼저 챙겼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2000년 초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때의 종자주권 이야기는 원예용 종자가 주를 이뤘는데 대부분을 자급하던 식량종자나 로열티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국내 과수산업과 달리 채소류는 민간 기업으로부터 농가들이 종자를 전량 구매해 사용했기 때문에 농가들은 비싼 로열티를 물어가며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이후 우리 정부는 종자에 대한 투자에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됐고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딸기, 버섯, 화훼 등의 고부가 종자 개발과 보급에 박차를 가했다. 원예용 종자 로열티 문제가 계속 대두되던 시점에 터진 유럽발 AI는 축산업계에도 충격을 주고 말았다.
 
■ 양계 종축산업의 후퇴
 
국내 가금분야는 가장 먼저 전업화됐고 1990년 후반부터는 기업중심으로 계열화가 이뤄지면서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1980년대까지 활발했던 국내종계 개발과 활용사업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효율을 중시했던 기업들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국내산 원종을 개발하고, 개발된 품종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노력대신 외국에서 이미 검증된 품종을 도입해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쪽으로 업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수십 년 쌓아온 국내 양계분야 유전자원 개발 역사는 1990년 중반 들어 맥이 끊겼고 점차 미국 등 주요 가금류 유전자원회사들에 국내 양계산업은 종속돼 갔다.
 
■ 골든씨드프로젝트 사업 중요도 크게 부각
 
이번 미국발 AI로 양계업계의 안정적 유전자원 확보 문제가 다시 이슈화 될 예정이다.  우리 정부는 2011년부터 ‘골든씨드프로젝트’라는 국가 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종자의 자립과 함께 수출산업으로 육성을 꾀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축산분야 그중 닭과 오리분야도 포함돼 있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에 가금분야 종자개발사업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최근까지 설사 국내산 원종이 개발된다 해도 이를 국내 업체들이 활용할 것인가에는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뒤 늦게 개발에 뛰어 든 데다, 수입 품종에 비해 뛰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반 미국발 AI는 이러한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원예 분야의 경우 로열티 때문에 종자 값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종자를 돈만 주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지만 가금분야는 99% 외국회사에 종축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AI와 같은 질병이 발병하면, 돈이 있어도 원종을 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 닭과 오리의 원종이나 종오리의 수입이 2~3년 정도 중단될 경우 국내 양계산업과 오리 산업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만큼 종자를 소유하지 못한 국내 가금 산업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골든씨드프로젝트’사업의 가금분야 종자개발이 어느 품목보다 중요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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