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문제, 운동체적 성격 복원에서 시작 돼야”
“농협문제, 운동체적 성격 복원에서 시작 돼야”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5.03.03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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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사업체적 역할 강조하다 협동조합 정체성 상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월 24, 25일 양일간 전국 관할 선관위에서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 나갈 후보자 등록을 완료한 결과 총 3522명 후보가 등록, 평균 2.7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가운데 본격적인 조합장 선거전에 돌입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돈으로 후보자나 유권자를 매수하는 등의 불법 탈법 선거운동이 난무하면서 선관위에 적발되거나 검경에 긴급체포 된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농수축협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농업분야의 협동조합은 본래의 긍정적 이미지와 달리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러한 부정적 모습이 단지 잘못된 선거문화 때문일까? 농어업분야 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의 형성과정을 집중 분석해 본다.

■ 농협의 부정적 이미지

사실 농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조합장 선출과정의 불법 말고도 농협 등 협동조합 관련 사건 사고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역대 농협중앙회장은 임기 중 비리 혐의로 옷을 벗고 실형을 받았고 최근에는 농협은행의 전산마비 사태, 대포통장문제 등 농민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눈에도 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 집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영리목적의 법인 중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은 이러한 사건사고가 반복되면서 비리의 온상으로, 또 협동조합장의 직위가 봉사가 아닌 개인의 명예나 부 축적의 자리로 변질되면서 금품이 오가는 혼탁한 자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농수축협은 농어민이 생산한 농수축산물을 공동판매하거나 원자재를 공동구매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당초 예상된 이익보다 농민에게 더 큰 이익을 배분해 줄 수 있어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하면서 여러 차례 타의에 의한 개혁요구까지 받았으며 현재의 협동조합을 해체해야 할지 고쳐써야 할지에 대한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최근 농업 이외의 분야에서는 협동조합 운동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다양한 협동조합이 여러 분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경쟁과 이익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민주적으로 그리고 구성원간의 연대 그리고 평등이 강조되는 협동조합 정신의 매력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은 경제적으로 열세에 위치한 농민이나 중소 상공업자, 일반 소비자들이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재화나 서비스를 공동으로 구매·판매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인적 구성체를 말한다.

협동조합의 특징을 설명할 때 주식회사로 불리는 자본구성체와 비교를 하게 되는데 주식회사가 1주 1표로 자본을 많이 투여해 주식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의 의사가 크게 반영되는 것과 달리, 협동조합법인은 조합원 또는 조합원이 선출한 대의원들이 1인 1표로 결정함으로써 기업의 민주적 운영을 가능케 한다.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금융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창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으며 2012년 이전에는 농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과 같은 각 부처별 개별법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이 대부분이었다.

■ 협동조합의 의미와 가치

협동조합은 본래 인류의 경제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시작했다.

협동조합은 자조·민주주의·평등·공정·연대를 표방하고 있는데 이것을 협동조합의 기본 가치라 부른다. 협동조합 조합원은 이러한 가치에 따라 성실·공개·사회적 책임·타인에 대한 배려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데 이를 협동조합의 윤리적 가치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를 실행에 옮길 때 지켜야 할 지침을 협동조합원칙이라고 한다.

협동조합의 평가는 해당 조합이 돈을 얼마나 벌고 또 농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환원하고 배당했느냐만 따질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가치와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느냐도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성공한 협동조합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가치와 원칙을 조합원과 조합이 고용한 노동자 즉, 활동가들 사이에 토론과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공유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면서 자신들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분배해 나가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구조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협동조합은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협동조합의 가치가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 농업 협동조합 운동의 관제화

농협은 조합원의 수, 조합수, 직원수, 사업영역, 매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협동조합이고 한국 협동조합 운동사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해방직후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봉암 선생이 주도한 농협은 이후 수차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성격이 달라졌으며 자생적 성격이 강했던 초기 농민운동, 협동조합 운동은 이후 정부의 관리와 감독이 강화되면서 운동체적 성격을 상실한 체 관제화됐다.

대표적인 관제화 사례는 농수축협 임원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이다. 중앙회장을 정부가 임명하고 또 이 중앙회장이 개별 회원조합의 대의원이 복수 추천한 조합장 후보 중 1명을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중앙회장의 정부 임명 그리고 정부에서 임명한 중앙회장이 사실상 회원조합장을 임명하는 방식의 임원선출제도를 둠으로써 농수축협은 정부 통제 하에 놓이게 됐다.

농협은 농민들의 경제적·사회적 권익을 향상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정부의 농정을 대행하는 하나의 정부 기관화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7년 민주화 물결을 타고 이 임시조치법이 폐지되면서 농협은 민주화됐고 협동조합 운동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농협은 농민들을 조직화하고 공동구매나 공동판매를 실시해 농민들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은 이러한 사업보다는 리스크가 적은 신용사업에 치중하면서 농협에 실망한 선도농가와 전업농들의 이탈이 시작됐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전업농 이상의 농업인들은 영농조합, 농업회사법인 등을 만들어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 농협의 개혁 또 개혁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협동조합 민주화의 기초를 마련했지만, 여전히 농협직원들은 관료적 성격을 버리지 못했고 정부도 농협 통제 관행을 고치지 못했다. 농민조합원들도 협동조합 가치 실현을 위한 철학과 가치를 공유 하지 못해 자조와 협동의 가치를 추구하기 보다는 단순히 정부의 한 기관처럼 농협을 대하면서 불만을 쏟아낼 뿐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농협의 관료적 성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농민이 소속된 지역농축협과 품목농축협이 자율성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하도록 해야 한다는 규범을 정하고 중앙회 슬림화를 농정의 목표로 제시했으며 이를 위해 농협, 축협, 인삼협 중앙회를 하나로 통합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앙회 통합 이후 단행돼야 할 중앙회 사업장의 회원조합 이관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3개 협동조합 중앙회의 합병으로 농협중앙회가 더욱 비대화되는 일이 발생했다.

참여 정부시절에는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가 화두로 떠올랐으나, 자본금 부족 문제로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후임 이명박 정부는 이를 곧바로 실행에 옮겨 농협 금융지주와 경제지주, 중앙회 3개 법인으로 분리가 이뤄졌다.

이를 통해 농협은 협동조합 운동을 위한 농민교육과 지원은 중앙회가 도맡아 하고 경제지주는 판매농협이라는 슬로건 아래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기능 강화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 협동조합 운동체적 성격의 상실

이렇게 농협이 개혁의 대상이요. 선관위가 나서지 않으면 선거조차 제대로 치루지 못하는 조직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많은 분석과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필자는 협동조합에 대한 몰이해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 이후 사회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협동조합 운동은 많은 협동조합 운동가들이 도처에서 나왔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와 달리 농협은 농민도, 정부도, 직원도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협동조합을 운영해 왔다.

사실상 협동조합 운동을 주도한 정부는 협동조합의 가치와 본질은 뒤로하고 협동조합을 농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왔고 협동조합 개혁을 단행할 때마다 협동조합 운동을 강화하기 보다는 사업체적 성격을 강화하는 구조개혁과 자금지원으로 일관했다.

결국 농협이 제 길을 가기 위해서는 거창한 사업계획의 제시보다는 운동체적 성격 복원에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농민 중 협동조합 운동가를 양성하고 직원들도 협동조합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을 선발해 길러내야 한다. 상부상조의 협동조합 정신으로 뭉친 조합원과 직원들이 다수의 구성원을 차지하는 정예화된 협동조합은 덩치만 큰 모래알과 같이 결속력이 떨어지는 현재의 협동조합보다 큰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조합에 무엇을 요구하기 보다는 무엇인가를 함께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들이 나타나고 봉사의 정신, 이타적 삶을 살아온 협동조합 운동가를 조합의 대표로 잡음 없이 선출하는 문화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과 관련된 대다수의 문제는 조합구성원이 협동조합 운동가, 활동가를 길러내고 또 그러한 사람들을 리더로 세우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이다. 지금이라도 농업에서의 협동조합 운동이 시작되기를 조합장 동시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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