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수의매매, 일본은 되고 우리는 안 되고?
정가수의매매, 일본은 되고 우리는 안 되고?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5.04.20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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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조직화 차이 도매시장 거래제도에 영향

■ 일본 상대매매 모델, 경매제 탈피한 거래제 도입

정가·수의매매의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 상 예외조항으로만 존재했던 정가·수의매매를 경매·입찰과 동등한 거래방식으로 허용했다. 투명성 중심의 도매시장 운영 패러다임을 ‘효율성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유통환경에 대응하겠다는 이유에서다.

2010년 배추파동으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편법거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가수의매매라는 처방전을 제시했지만 당시 유통인들은 같은 품목에 서로 다른 거래방식이 적용될 경우 혼란을 초래한다며 농안법 개정에 맞섰다.

결국 정부는 상대매매가 활성화 돼 있는 일본 사례에 초점을 두고 법 개정을 밀어붙였고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 정부가 예약식 정가수의매매인 상대매매를 모델로 한 이유는 일본이 도매시장법을 상대매매를 허용하는 쪽으로 개정하면서 농산물 가격진폭을 줄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약거래를 통해 유통 효율을 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일본, 상대매매 허용 후 가격진폭 축소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경매·입찰 거래가 원칙이었다. 일본의 장기적 경기침체와 맞물려 유통환경이 소비자 위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특히 유통비용을 줄이기 위해 산지와 직거래하는 대형유통업체비율이 높아졌고 산지에서도 적정한 가격을 원하는 조직화된 출하처들의 요구가 늘어나면서 1999년 일본은 도매시장법을 개정해 상대매매를 허용, 거래방식 다양화에 나섰다.

이후 일본 중앙도매시장에서는 경매·입찰거래 비율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한편 상대거래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본 농림수산성 데이터집에 따르면 경매 비율이 1995년 55.5%에서 2008년 18.7%로 급감하는 등 경매제가 전체 농산물 유통물량의 1/4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쇠퇴를 거듭했다.

과거부터 도매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경매방식이 무너지고 실수요자 요구에 적합한 위탁집하, 상대매매 등의 가격발견 방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유통환경 요구로 법개정···법인 구조조정 촉발

현재 일본은 상대매매 비율이 전체 농산물 유통의 70~80%를 차지하게 되면서 점진적으로 가격의 진폭이 줄었다. 또한 우리나라보다 잘 조직된 산지는 적정한 마진으로 생산비를 보장받고 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는 경매제 위주의 거래방식으로 가격 등락폭이 컸으나 농협을 중심으로 산지 조직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규모화됨에 따라 적정마진을 요구할 수 있는 교섭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도매법인들도 적정한 가격을 요구하는 대형 소매유통이 늘어나고 안정적인 거래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자연스레 상대매매 비율을 늘릴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었다. 일본의 도매법인들은 가격발견 방식이 경매제에서 상대매매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과거 수수료에 의존했던 사업방식이 크게 변화했다.
 
특히 영업활동을 위해 0~2%의 수수료를 받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과거 경매제에 안주하면서 서비스 전환에 성공하지 못한 법인과 중도매인들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수입산 비중 높고 경매와 연동
 
우리나라 정가수의매매 정책의 현실은 어떨까.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도매시장의 정가수의매매 비중은 2012년 8.9%, 2013년 9.9%, 지난해는 14.1%를 기록하는 등 수치상으로는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국내산 수의물량에 대해 시장사용료를 기존 0.5%에서 0.3%로 인하했고 저온창고 시설 사용료도 완전히 감면해 주는 등 인센티브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2016년까지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이를 위해 1.5%의 저금리정책자금 320억원, 도매법인의 매수·겸영 사업 시 결제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에 50억원을 추가 배정하면서 정가수의매매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의 의도대로 이 제도가 활성화 되고 있을까.
 
도매시장 현장에서는 수치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매사는 “정가수의매매에서 아직까지 수입과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지방도매시장 채소류의 경우 법인을 대신해 중도매인이 직접 수집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가수의매매 가격도 아직 국내 여건상 경매가격과 연동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영세한 출하자들이 경매에 붙여 달라는 요구가 많아 정부가 추구하는 예약식 정가수의매매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경매사의 인력부족도 정가수의매매 활성화에 큰 짐이다. 대아청과 최윤준 경매사는 “현재 경매업무와 대외영업까지 병행하는 데는 시간적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대아청과에서는 정부정책에 맞추기 위해 하루 들어오는 농산물의 일정부분 비율을 배정해 정가수의거래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유통조성처 시장지원부 윤도언 부장은 “예약형 정가수의매매를 유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산지에서 잘 따라주지 않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정가수의에 대한 출하자들의 인식이 전환되면 점진적으로 정가수의매매를 선호하는 출하자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를 위해 aT에서는 예약거래정보 시스템을 곧 오픈할 예정이고 6월경 유통업체 식재료 업체를 대상으로도 설명회를 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해 가락시장 정가수의매매 물량과 수입산 비중. (자료제공=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거래방식 다양화보다 산지조직화가 우선

우리나라는 일본의 도매시장처럼 정가수의매매 비중이 단기간 늘어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농협을 중심으로 이미 산지가 규모화돼 시장교섭력을 가질 수 있었고 소매 유통에서도 상대매매에 대한 요구가 맞물리면서 법개정을 통해 폭발적으로 정가수의매매가 늘어날 수 있었다.
 
도매법인들도 상대매매 중심의 유통시장 재편에 따라 자연스레 경매사를 늘리고 영업력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거꾸로 법개정을 통해 정가수의매매 활성화를 꾀하다 보니 산지가 규모화되지 않은 환경에서 쉽사리 정가수의매매 거래를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통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예약거래에 초점을 맞춘 정부정책은 어느 정도 수긍은 가나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aT 유통연구소 배상원 교수는 “오히려 산지 조직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주력한다면 도매시장의 거래방식은 어떠한 형태가 됐던 따라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될 것”이라며 “정가수의매매에 진입하기 가장 꺼리는 부분이 바로 가격변동성에 대한 리스크이므로 완벽한 정가수의매매를 고집하기 보다는 좀 더 완화된 방식으로 가격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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