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탕박 기준거래 정착 가능할까?
등급‧탕박 기준거래 정착 가능할까?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5.08.0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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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돼지 산지 거래 기준 마련시급

산지 유통되는 생돈 가격 결정방식의 개선이 추진된다.
그 동안 '지육무게×음성공판장 박피경락가격×지급률'로 이뤄진 돼지거래가격의 문제점을 돈육가공업계가 꾸준히 제기해온 가운데, 생산자인 한돈협회‧농협양돈조합장협의회, 수요자인 한국육류육통수출협회가 합의안을 도출해 낸 것이다.

합의안에는 산지에서 유통되는 돼지의 가격 결정시 기준가격을 박피가공돼지에서 탕박가공 돼지가격으로 전환하고 등급에 따라 정산을 하기로 양측이 합의하고 협약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양 단체의 합의안은 구속력이 없는 것이어서 한돈협회가 요구해온 등급 간 가격결정, 유통협회가 요구해온 탕박가격 적용이 실제 현장에서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박피 대표성 없어
돼지를 산지에서 구매해 가공 판매하는 돈육가공업체들은 그 동안 가격 변동이 전체 수급상황과 관계없이 나타나면서 소매업체와 수요자들의 반발을 사고, 주요 거래처 중에 하나인 외식업계가 국내산 돈육 사용을 기피하게 됐다며 전체 도축물량 중 극소수인 박피 물량 대신 탕박 물량을 기준 가격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현재 전체 돼지 도축물량 중 축산물공판장과 도매시장에 출하되는 물량은 전체의 10%를 밑돌고 있고 그 중에서도 박피 물량은 전체 돼지 도축물량의 3% 미만으로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는 약 90%의 물량이 전체의 3% 물량의 경락 가격에 휘둘리고 있는 실정이다.

박피 가공을 한 돼지의 상장 자체가 잘 되지 않다 보니 가격의 변동성은 클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전체 돼지수급에 큰 이상이 없음에도 돼지고기 가격의 오르내림은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육류유통업계는 상대적으로 상장물량이 많은 탕박 처리 돼지 경락가격을 기준가격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을 수년째 제시해 왔고, 한우와 같이 등급에 따른 정산을 요구해온 한돈협회 측가 수차례 협상 끝에 등급제와 탕박적용을 함께 추진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한 것이다.

■ 합의는 했지만 탕박적용 강제성 없어
하지만 이번 탕박 적용 합의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 현장에서 곧바로 적용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농가들이 박피가격 활용을 고집할 경우 한돈협회나 육가공업체로서는 이번 합의안을 가지고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을 사용할지는 거래 당사자가 협의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도매시장 출하비중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 상황도 문제다. 현재 박피시설을 갖춘 도매시장 내 박피 상장물량은 탕박물량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진 가운데, 도매시장의 이용률이 더 감소할 경우 탕박 가격 또한 대표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도매시장 출하물량 상당수가 비규격 돈이라는 것 등을 고려하면 얼마 후 도매시장의 가격 대표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는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이번 합의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산지조직화가 필수로 양돈농협이 계통출하되는 물량에 대해 정산기준을 일률적으로 탕박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쉽게 적용이 가능하겠지만, 현재 국내 한돈산업의 산지조직화율은 30% 미만으로 대부분의 물량이 직거래되고 있고, 조합을 통해 거래되는 물량도 박피를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 등급 기준 정산도 산 넘어 산
탕박 적용과 함께 추진되고 있는 등급에 따른 정산은 현장에서 바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이 또한 미지수다.

등급 간 거래가 활성화 돼 있는 한우의 경우는 대부분의 물량이 도매시장에서 상장되어 거래가 이뤄지고, 등급을 확인하고 가격이 책정되는 시스템이지만, 돼지산지 거래는 등급판정을 하기 이전에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설사 나중에 도축 후 등급이 확인된다 해도 등급에 따라 추가 정산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현재 돼지의 등급제의 경우 냉도체 판정이 완전히 정착이 되지 않은 관계로 등급에 대한 신뢰성 크지 않고, 시장에서도 등급에 따른 차별화 보다는 부위별 차별화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도매시장에 출하되는 돼지 상당수는 비규격돈으로 품질이 규격돈에 비해 떨어지고 규격돈과는 다른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도매시장 내 중도매인들도 등급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경매에 참여하고 있어 등급 간 가격차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도매시장 기능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매시장에 의존한 직거래물량의 가격결정은 시장을 왜곡시켜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 대수의 법칙을 따르자
지난해 본지에서는 소수의 법칙과 대수의 법칙 설명을 통해 현 돼지가격 결정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우선 모집단이 크면 클수록 실제 시장 상황을 더 잘 반영하게 되고 가격의 변동폭도 크지 않아 가격 하락이나 상승은 점진적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런 대수의 법칙 특성을 감안 할 때, 육가공업계가 박피보다 탕박에 기댄 가격 체계의 요구는 합리적이지만, 탕박 기준도 도매시장 물량 그중에서도 음성공판장의 물량으로 전체를 대변하기는 무리가 있어 도매시장을 벗어난 새로운 가격 결정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등급제도 또한 도매시장에서 등급에 따른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감안해 우선 소매단계에서 등급표시와 함께 홍보를 강화하고 그래도 시장 반응이 없다면, 돼지의 등급제는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등급에 따른 가격차가 크게 나타날 경우 자연스럽게 양돈농가들은 등급을 확인하는 거래를 선호하게 될 것이고 점점 약화되고 있는 도매시장의 출하비중이 한우와 같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돼지거래는 도매시장의 기능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상황인 것을 감안할 때, 우선은 도매시장을 벗어난 가격 결정시스템을 연구하고, 그 안에서 등급제 정산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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