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구제역! 청정국 지위 그림의 떡인가”
“또 구제역! 청정국 지위 그림의 떡인가”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6.02.29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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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안막나 못막나’ 가축질병 상재화

스탠드 스틸(Stand Still) 해제 5일 만에 충남 공주·천안서 발생
백신 접종·긴급 방역조치로 “확산 가능성 낮지만 국지발생 우려”
구제역 청정국‘골든타임’ 3~5월···올 봄 놓치면 재발 가능성도

▲ 구제역 가상방역 현장훈련(CPX)을 하는 모습.

“어디서 돼지 키운다고 말도 못합니다.”
 
충남 시내에서 어렵게 만난 김종웅(가명)씨는 연신 눈치를 살폈다. 전남에서 돼지 1천여두를 키우고 있다는 김 씨는 최근 죄짓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구제역 탓에 일시 이동중지 명령이 떨어지고 해당 지역의 농가, 도축장, 관계시설 출입차량 등 축산에 관련된 모든 시설이 ‘올스톱’ 돼서다. 전남지역은 아직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아 이 같은 조치를 피할 수 있었지만 구제역 이슈만 터지면 돼지 농가에게로 이목이 쏠리는 탓에 돼지 사육이 가슴속에 ‘주홍글씨’처럼 다가온다는 게 김 씨의 속내다. 김 씨는 지난해 겨울부터 백신 접종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다만 백신 접종 부위에 발생하는 육아종으로 인해 접종이 꺼려진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육아종이 발견되면 이상육으로 구분돼 상품성이 떨어져 경영수익에 직결되기 때문. 그는 추가 백신접종을 고려하고 있지만 접종 시 소요되는 비용과 이상육 발생이 그를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구제역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김 씨와 같은 축산농가가 늘고 있다. 설 명절 전인 1월 11일과 13일 전북 김제와 고창에 소재한 돼지농장에서 구제역이 발발하면서 연초부터 농가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초동방역팀과 역학조사팀, 중앙기동방역기구를 긴급 투입해 발생농장과 반경 3km 이내 우제류 농장에 대한 이동제한을 실시해 급한 불은 껐지만 문제는 설 이후였다.

민족 대이동으로 구제역 발생이 확산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 방역 당국에서는 설 명절이 끝난 후에도 구제역 추가 발생에 대한 보고가 없자 안심하고 이동조치 제한을 풀었지만 2월 17일 충남 공주시와 천안시 소재 2개의 돼지농장에서 구제역이 재발하면서 공주 956두, 천안 2140두의 돼지가 땅에 묻혔다. 정부는 2월 19일, 24시간 동안 충남과 인접한 대전광역시와 세종특별자치시 전역을 대상으로 다시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처럼 구제역이 시시각각 터지자 농가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14년 5월 백신 청정국에 이름을 올렸던 것이 무색해지는 몇 년이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구제역이 터져 나오면서 만성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재난으로 불렸던 2010년 구제역과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당시 구제역 대책은 살처분과 수매에 모든 행정력과 예산이 집중되면서 2010년 1월부터 11년 4월까지 3조원에 가까운 국고가 소요될 정도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됐다. 당시 살처분 된 가축만 해도 소 16만4627두, 돼지 335만9525두, 염소·사슴 1만1640두가 목숨을 잃었다.

재난 수준이던 당시 구제역에 농가들도 속수무책 이었지만 정부도 큰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했다. 결국 살처분 등 각종 비용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백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후 전국에 예방접종을 실시하면서 구제역 양상은 소규모 지역화 특성을 띠게 됐고 점차 소강상태를 거치면서 진정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결국 3년 후인 2014년 5월 29일 세계동물위생기구(OIE) 총회에서 ‘FMD 예방접종 청정국’ 인증을 받았다.

 
■ 집단 면역의 중요성

청정국 지위를 얻은 지 불과 2개월 만인 2014년 여름 다시 구제역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2011년 경북 영천에서 발생한 구제역을 끝으로 3년간 모습을 감춰왔던 구제역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3년간 찾아온 평화가 농가들의 방역의식을 느슨하게 했다. 백신 특성상 꾸준한 관리와 접종이 지속돼야 했지만 백신을 접종하는 데 따른 각종 소요비용에 대한 부담과 안전 불감증이 다시 구제역을 불러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문가들은‘우리 농장만 안 걸리면 된다’며 백신 접종에 소홀할 경우 큰 화를 자초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집단 내에 질병에 대한 면역이 있는 개체(백신 미접종)가 없으면 감염축과의 접촉확률이 2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1, 2, 4, 8과 같은 식이다. 초기에 백신을 접종해 감염확률을 줄이면 집단 전체의 면역이 커지는 효과가 발생해 소위 말하는 유행(Pandamic)을 막을 수 있다.

나는 백신을 맞지 않았는데 주변사람 모두가 백신을 맞았다면 감염자와 일대일 접촉만 피할 경우 확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천연두(small pox)가 집단 면역으로 소멸된 사례다. 백신 접종으로 인한 집단면역이 중요한 이유다.
 
 
▲ 집단면역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도표. 왼쪽은 백신을 맞은 경우이며 오른쪽은 그렇지 않은 경우다. 검은양(감염), 회색양(면역), 흰색양(비면역). <출처=journal.frontiersin.org>
 

중국 등 인접국가 정보공개 꺼려 역학조사 난항
지정학적 리스크로 ‘백신 비접종 청정국’은 무리
비육말기 돼지에서 주로 발생, 접종횟수 늘려야
이상육 발생 · 백신비용 등 농가 지원대책 필요

■ 지정학적 위치 질병 노출위험도 높아

외국은 어떨까. 구제역은 1514년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 시작된 이후 19세기 전 세계적으로 만연했으나 다양한 근절정책으로 현재 많은 나라에서 발생하지 않고 있다. 특히 축산 선진국인 덴마크, 뉴질랜드, 호주 등은 백신 비접종 청정국으로 OIE에 인정을 받은 지 오래고 2010년 통계에 따르면 구제역 청정국은 전세계 66개국에 이르고 있다.
 
다만 아시아지역에서는 2007년 이후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아프가니스탄 등이 구제역 상시 발생국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에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위치를 꼽는다. 인접국가인 중국은 2010년 북경시, 광동성, 강서성 등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했고 현재까지 비공식적으로 구제역이 만연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몽골, 대만, 홍콩, 일본 등도 2010년 구제역을 경험한 데다 이들 국가와의 수출과 수입 등 교역량이 많은 국내 특성상 구제역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국내 역학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2010년 이후 구제역 발생에 대한 원인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해외유입을 추정하고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주변 국가의 질병발생 원인파악 공개와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구제역 원인을 밝히는 데 어려움으로 지적되고 있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질병이 발생하면 유전자 서열 등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국가에서는 질병이 발생해도 결과발표 자료가 미흡해 역학조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일례로 2013년 고병원성 AI(H5N8)가 국내에서 발명했을 때도 1년 후가 돼서야 중국 측에서 유전자 서열을 공개하면서 밝혀진 바 있다.
 
■ 구제역 잠복기간 길어···백신 2회 접종 필요

구제역 잠복기간이 긴 특성도 구제역이 지속되는 한몫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구제역은 건초에서는 200일 이상 생존하며 사료 12~20℃에서는 52일간, 2~5℃에서는 70일간 생존이 가능하다. 퇴비에서는 냉장 시 66일, 냉동 시 168일, 밀짚에(2℃)서는 232일이나 생존력을 유지한다. 특히 겨울에는 262일 생존이 가능할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백신접종이 꾸준히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현재 국내에서는 DOE(Double Oil Emulsion) 부형제를 백신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제품의 특성은 항체가가 빨리 나오는 반면 비육 말기가 되면 항체가가 사라진다. 비육말기 돼지들에서 주로 구제역이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원인 때문이다.

김현일 옵티팜 대표이사는 “일단 구제역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돼지들의 면역력이 충분히 부여돼야 하지만 DOE는 비육말기에 가서 항체가가 급격히 소멸된다”며 “항체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2회 접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가들이 1회 접종을 고집하는 이유는 비용도 부담이지만 접종 부위에 화농 발생 등 이상육이 발생하기 때문. 김 대표는 일단 백신 청정국을 목표로 고통을 감내할 필요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SOE(Single Oil Emulsion) 백신은 DOE와 달리 항체가가 빠른 시간 내에 생기지는 않지만 1회 접종으로 항체가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며 “일단 구제역을 진정시킨 후 SOE를 사용하는 게 합리적이다”고 진단했다.

■ 단기간 구제역 사멸에 사활 걸어야

결국 구제역 재발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대비와 집단 백신접종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구제역이 뜸해지는 3~5월에 효과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올 겨울 다시 구제역이 재발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 올 봄이 구제역 재발방지의 골든타임이란 것이다.

김준영 ㈜비전FLC 대표이사는 “많은 예산이 들더라도 정부와 한돈협회는 머리를 맞대고 구제역을 막을 필요가 있다”며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페널티를 줄이고 자발적인 신고시 보상을 해줄 수 있도록 하는 게 장기적으로 볼 때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전했다.

한 백신 전문가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우리나라는 상시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백신 청정화로 가는 길이 경제적”이라면서 “구제역은 사회적 경제적 파장이 매우 큰 가축 전염병이므로 전 축산농가의 역량을 모아 단기간에 구제역 사멸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승교 농림축산식품부 방역총괄과 사무관은 “2010년처럼 구제역이 대규모로 확산될 개연성은 적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번 백신이 항체가가 높아 농가에서 제대로 접종하고 정부의 노력이 들어간다면 충분히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백신에 대한 농가 인센티브나 이상육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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