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물 가격결정 `시장`서 `테이블`로 이동
농축산물 가격결정 `시장`서 `테이블`로 이동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1.08.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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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자율 결정 유명무실…사실상 정부고시

원유가격 현실화를 위한 낙농가와 유업체간의 협상이 마무리됐다.
177원 인상을 요구했던 낙농가들과 80원을 고수하던 유업체간 공방은 정부가 중재한 130원 인상안을 양측이 수용하며 5월 9일 낙농육우협회·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가 낙농진흥회에 목장 원유가 협상위한 이사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 협상이 4개월여 만에 마무리됐다.
이 기간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대규모 낙농인대회가 개최되고 곧바로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이 생애 세번째 단식에 돌입하는 등 협상안 관철을 위해 투쟁이 시작됐다.
2010년대 들어 처음 실시된 원유가격 조정은 많은 의미와 과제를 남겼다.
먼저 원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생산비를 인정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데 있다.
2004·2008·2011년 모두 대규모 낙농가 집회 그리고 이승호 회장의 단식이라는 극한의 투쟁이 함께 했다.
낙농가들이 생산원가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이 이번 원유가격 협상에서 다시한번 확인 됐다.
낙농진흥회 출범과 함께 정부가 가격고시를 했던 원유는 민간자율결정체계로 전환을 했다.
정부의 통제가 아닌 생산자와 유업체가 시장상황에 따라 가격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이상적으로 보였지만 최대한 납품단가를 인상하지 않으려는 유업체와 원가와 적정마진을 보장받으려는 낙농가와의 갈등으로 이어지며 쉽게 원유가격을 조정할 수 없는 구조가 돼 버렸다.
특히 원유가격의 민간 자율 결정은 낙농진흥회를 통해 추진했던 집유일원화 사업과 맞물려 말은 민간자율 결정이지만 정부가 낙농진흥회를 통해 언제든지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이번 원유가격 현실화를 위한 유업체와 낙농가와의 협상도 결국은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납유거부 등 극한의 상황까지 치달은 가운데 정부가 중재안 형식으로 원유가격을 제시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정부 중재안 제시 후 협상은 정부제시가에서 1원도 조정이 되지 않은 채 타결됨에 따라 이번 원유가격은 민간이 협상을 통해 결정했다기보다는 정부고시를 낙농가와 유업체가 수용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2008년 원유가격 조정 때도 마찬가지로 정부가 막판 중재안을 제시함으로써 밤샘협상, 마라톤협상을 무색케 했는데 결국 정부가 초기부터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청취하고 원유가격 안을 제시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현재 우리 농축산업은 낙농-유가공 산업과 같은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생산한 가축을 도매시장에 출하해 가격을 인정받는 구조에서 육가공업체 또는 축산계열화사업자와 계약에 의해 가축을 생산해 공급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채소나 식량작물도 이러한 계약재배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으로 농식품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대비 올해 가을배추 계약재배 물량이 전년대비 7배나 늘어날 정도로 점차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변화하는 유통구조에 맞는 가격 결정체계를 마련했느냐에 있다.
농축산물의 가격 결정이 시장에서 테이블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합당한 가격 결정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낙농-유가공업계 간 갈등과 혼란처럼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수요자 양측이 협상을 대등하게 해 나갈 수 있는 힘의 균형 또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느 한쪽이 협상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다든가 힘의 불균형을 만회할 제도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농가나 업체 중 한쪽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현재 낙농-유가공부분과 같은 방식으로 축산물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육계와 오리 그리고 채소의 계약재배가 여기에 속한다.
그중 육계부분은 농가와 계열화사업체간 갈등이 심해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받고 있다.
육계부분의 갈등은 농가가 계열화사업자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서 거래가 이뤄지며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힘의 불균형을 만회할만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농가들이 산업에서 대거 이탈하면서 생산기반이 불실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가칭 축산계열화사업법과 지난 6월 출범한 대한육계축협은 육계농가들의 이러한 고민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직거래라는 새로운 유통시스템을 정부가 만들어가고 있다면 그에 걸 맞는 가격 결정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현재 낙농진흥회는 매년 가격 조정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곳뿐만 아니라 직거래 형태의 신유통체계가 도입되어 있는 부분이라면 새로운 가격 결정체계와 제도 마련에 정부가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가격 결정 구조는 생산자, 가공 및 유통업자, 소비자가 농산물 생산과 유통 과정 중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 받고 부담을 공평하게 나눠지는 구조가 돼야 한다.
이러한 대원칙에 준해 낙농부분의 가격 결정 시스템, 축산계열화사업법이 마련돼야 하고 더 나아가 직거래가 추진되는 각 부문마다 표준화된 거래 시스템 마련에 정부가 관심을 갖고 임해야만 농산물 가격이 시장에서 테이블로 이동하는 과도기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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