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임명 유감
[사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임명 유감
  • 김영하 대기자
  • 승인 2017.08.0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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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난달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과시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통상교섭본부를 둘 수 있도록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4년 이전 통상교섭본부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통상교섭본부는 통상 관련 의견을 총괄, 조정하고 대외 통상 교섭을 진행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으로 1998년 3월 3일 발족했고 2013년 3월 23일 폐지됐다. 당시 소관 업무는 과거에 맡고 있던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됐다.

당초 통상교섭본부의 설립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과정에서 부서간의 교류와 협력이 부족해 쌀시장개방을 포함한 핫 이슈가 제대로 교감되지 않았다는 반성의 토대위에 김대중 정부 초기에 설치된 것. 통상교섭본부장은 직제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아래의 차관급이지만, 대외적으로는 통상장관(Minister of Trade)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장관급 위상을 가진다.

그러나 농민들 입장에서 통상교섭본부는 반농업․반농민적이란 트라우마가 있다. UR협상에서 쌀시장이 개방된 것은 물론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김현종 본부장이 정부입장에서 FTA의 맨 마지막 협상이던 한미FTA를 칠레와의 다음인 두 번째로 밀어붙여 협상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칸쿤협상 이후 WTO/DDA협상이 브릭스국가들의 반대로 진척이 어려워지자 선진국들이 택했던 것이 바로 양자간 협상인 FTA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선진국들과 함께 추진했던 기관이 통상교섭본부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통상교섭본부장에 김현종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을 임명했다. 농민단체 대표자들의 귀를 의심케 할 그 이름, 김현종 당시 본부장이 다시 새정부의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된 것이다. 그는 당시 통상부서가 가장 나중에 교섭할 대상인 미국을 가장 먼저 FTA 대상으로 선정해 협상을 시작했으며, 협상과정도 국회에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 협상내용도 나중에 확인해보니 국가투자자소송제(ISD), 비위반제소, 역진방지조항 설치, 헌법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조항설치 등 상대국들이 좋아할 10개가 넘는 독소조항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참여정부 때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한 인사를 다시 임명한 것이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출범부터 이명박 정부시절 최종 합의문 서명까지 이끌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한·미 FTA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해 협상추진을 관철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협상 기간 내내 그는 국민의 이익을 대표해 미국과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기반한 개방과 세계화 논리를 국민에게 가르치려는 오만한 행태를 보인 바 있다. 그가 왜 그랬는지, 국민은 이후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통해 알게 됐다. 그는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미국을 위해 죽도록 싸웠던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2007년 한미FTA에 항거해 허세욱 노동자가 협상장 앞에서 분신 사망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여졌고 김현종이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을 맡고 있던 2005년에는 농민집회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경찰의 폭력에 사망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는 물러난 후 삼성의 입장을 반영한 통상협상을 진행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삼성그룹에 입사해 호가호식을 지속했다. 김 본부장의 임명을 농민들이 받아들이란 말인가? 차관급이라 청문회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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