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쌀 자동시장격리제’, 전향적으로 생각하자
[사설] ‘쌀 자동시장격리제’, 전향적으로 생각하자
  • 김영하 대기자
  • 승인 2017.08.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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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선제적 장치를 슬슬 준비해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시장격리 물량을 쌀 수확시기에 정확히 맞추고 물량조차도 정확하게 맞춰 격리했는데도 연말을 지나 올해 봄까지에도 하락했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면 쌀값과 관련한 메시지를 시장에 확실히 줘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 정치권과 농업계가 요구하는 대책은 바로 ‘쌀 자동시장격리제’이다. 이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수확기 쌀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뾰족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5년 중 쌀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해는 2015년인데 수확량이 432만7000톤에 달했다. 이는 정부가 추산한 햅쌀 수요량 397만톤보다 35만7000톤을 웃도는 물량이다. 당시 풍년 여파로 쌀값이 뚝뚝 떨어지자 농민들은 수요량을 넘는 물량을 전부 격리하라고 요구했다. 농식품부는 기재부를 설득, 수확기에만 20만톤을 사들여 격리했지만 쌀값이 잡히질 않자 이듬해 3월 14만3000톤을 추가로 격리했다.

하지만 산지에서 계속 쌀은 쏟아져 나왔고, 결국 2016년산 햅쌀이 막 출하되던 2016년 10월 정부는 2015년산 구곡 1만4000톤을 더 격리해야 했다.

정부가 3차례에 걸쳐 격리한 2015년산 쌀 35만7000톤은 결국 정부가 추산한 햅쌀 수요량을 초과한 총 물량에 달하고,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해도 6272억원에 달했지만 산지 쌀값은 20여년 전으로 후퇴했다. 더구나 2016년산 쌀값은 생산량이 2015년보다 감소했는데도 더 하락했다.

이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0월 초에 발표되는 통계청 예상생산량을 토대로 계획물량의 절반만 우선 격리한 뒤 11월 중순 최종생산량이 나오면 나머지 물량을 격리하자는 방안을 내놨다.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도 최근 국회에 제출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서 수요량을 웃도는 물량을 전부 법에 따라 자동으로 격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소비량과 수입량을 고려한 햅쌀 수요량을 산출한 뒤 이보다 더 생산된 쌀을 정부가 모두 사들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입장이 다르다. 우선 기획재정부가 재정부담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기본적으로 자동격리제를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쌀 생산촉진 효과가 발생해 자동격리제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 도입에 신중한 모습이다. 정부가 수요량을 초과하는 물량을 매년 알아서 격리해주면 쌀농가들의 쌀 재배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산 쌀값과 관련된 것만 계산하더라도 그 비용은 3차례에 걸친 시장격리에 6000여억원, 비축미 관리에 3000여억원, 쌀값하락으로 사라진 쌀의 자산가치 1조1215억원, 쌀직불금 지원액까지 합친다면 2조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 사라졌다. 정책으로 농민에게 혜택이 간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 분해됐을 뿐이다.

해외원조, 대북지원, 공공급식확대, 가공식품 확대 등 쌀 소비처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생산조정을을 겸하면서 ‘쌀 자동시장격리제’를 도입한다면 우려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적극적인 도입을 검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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