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에그포비아 확산 <上> 양계 산업 도미노 타격
[이슈분석] 에그포비아 확산 <上> 양계 산업 도미노 타격
  • 김재광 기자
  • 승인 2017.08.24 06:5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 일주일만에 국민 뇌리에 깊게 박혀버린 에그포비아(Eggphobia·달걀공포증)로 양계산업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계란은 국민대표 먹거리에서 삽시간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정부가 발표한 산란계 농장 일제 전수조사 결과 부적합 52개 농장 중 친환경 인증농장이 31개소에 달해 국민적 배신감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살충제 계란에 대한 위해성도 정부와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 견해가 달라 논란이 되고 있다. 혼돈과 혼란의 늪에 빠진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인한 양계 산업의 피해와 해결방안을 찾아본다.

● 살충제 검출 4%의 잘못 인정

   96%가 감당하기 버거운 '뭇매'

“이번 계란 파동은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라 쓰나미가 일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산업을 위해 몇 억, 몇 십억의 손해를 감수하며 이 상황 진전되기를 기다리는 농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번 살충제 계란 논란은 이유를 불문하고 농가들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것이 채란인들의 목소리다. 정부의 관리 시스템 부재, 미흡한 제도 등 지적되는 사항은 많지만 문제의 발단인 살충제를 사용한 것은 농가이기 때문이다. ‘애그포비아’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국민적 공포가 커지는 동시, 산란계 업계인들 전체가 비양심 농가로 매도당하자 농가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조심스럽게 터져나오고 있다.

익명의 업계 전문가는 “타 축종과 같이 도축단계 검사가 없이 농가의 양심에 맡겨졌던 계란에 대해 전수조사 결과 불과 4% 정도의 부적합률이 나왔다. 이는 산란계 농가들이 생각보다 양심적인 농장 운영을 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충남의 한 산란계 농장주는 “살충제를 뿌린 일부 농가들이 잘못이지만 정부 부처 간 조사도 엇박자를 보이며 국민이 등을 돌리게 된 것 같다”며 “96%의 신선하고 안전한 계란이 유통되는데도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주요 언론과 매스컴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안영기 계란자조금관리위원장은 “국내 계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지금과 같이 정부가 외국 계란 수입을 지속할 경우 지난해 99.8%에 이르던 국내 계란 자급률은 올해 말 92%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소시지, 햄 등의 원료육으로 쓰이던 산란 성계(노계)의 경우 도계장에서 도계를 꺼려하고 육가공 업체에서도 산란 성계 반품요구가 빗발치는 등 원료육이 교체되기 시작해 사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후보 계군도 올라오는 상황에서 농가는 산란 성계 처리에 대해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산업 폐기물 처리도 쉽지 않다. 랜더링(열처리)을 하더라도 하루 최대 1만5000수를 처리하기 버겁다. 이를 처리 가능한 업체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농가들의 주장이다. 

22일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열린 닭진드기 산란계 질병교육에서 안영기 계란자조금관리위원장이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과 관련 현황과 대응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계란·육계 소비 외면 심각

  산지도매·병아리가격 폭락까지

번복되는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로 신뢰성을 잃은 소비자들은 대형마트의 '정부의 조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은 계란만을 판매하고 있다’는 팻말에도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주요 대형마트 3사도 23일부터 계란 가격을 500원에서 최고 1200원까지 인하했지만 소비가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대한양계협회 시세정보에 따르면 계란 파동이 일기 전인 11일, 산지 계란 가격은 169원에서 22일 127원으로 약 25% 가량 하락했다. 최근 계란 가격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해도 지난해 같은 기간 144원보다는 12%가량 낮아진 가격으로 산업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한 대형마트 축산물 담당자는 “예상보다 소비외면 현상이 심각하다”며 “정확한 집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절반정도는 줄어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닭고기 또한 이번 계란파동에 이어 DDT논란으로 닭고기에 대한 불안감도 가중돼 소비 위축이 가시화되고 있다. 대형마트를 방문한 이보현(35·주부)씨는 “아무래도 닭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고 오늘 DDT검출 뉴스를 접해 당분간 닭 구매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육계 산지가격은 1000원대마저 무너졌다. 충북 진천에서 육계 농장을 운영하는 김수혁(가명)씨는 “사육과정을 봤을 때 최소 육계 시세가 1600원 정도는 돼야 한다”며 “이번 계란 파동으로 육계까지 여파가 상당한 것은 물론 양계산업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피력했다.

한국육계협회(회장 정병학)는 소비자들이 닭고기 소비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지되자 자료를 배포하고 "육계 사육농가에서는 닭 진드기 구제를 위한 살충제의 사용이 근본적으로 불필요하기 때문에 닭고기는 살충제로부터 안심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종계부화업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종계 농가 중 60%이상이 9월~10월 경 납품 대행사 또는 계열사와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 체결 시 기준 병아리 가격은 다음해에 고정된다. 육계의 경우 1회전마다 다르지만 종계부화업계의 경우 이 시기에 체결하는 계약에 따라 향후 1년의 단가가 결정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원가 이하로 시세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종계부화업인들의 설명이다.

● 엉터리 발표에 울분 토한 농가

  역대 정부에 사전검사 제시 ‘묵살’

지난 17일 정부는 애꿎은 농장을 살충제 검출 농장 명단에 포함해 발표했다가 부적합 농장 명단을 하루에 두차례나 번복 발표하는 등 물의를 빚었다.

농식품부 잘못된 명단 발표로 비양심 농장으로 낙인찍은 농가는 10곳으로 충남 아산, 경기 양주와 파주, 전남 광주, 경남 창녕 등 다양하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유감의 뜻을 밝히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해 사과했지만, 정부의 착오로 살충제 성분 포함 농가로 발표돼 비양심 농가로 오명을 쓴 해당 농장주는 계란유통상인들로부터 거센 항의전화와 반품이 쇄도했다고 전했다. 일부 농장은 이름 변경을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산란계 농가들이 억울한 측면도 있다.

대한양계협회는 광역단위 계란유통센터(GP) 건립에 대해 역대 정부에 지속적으로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시절인 2012년, 대형유통센터 건립 추진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농협과 한국계란유통협회 등 업계인들로 T/F팀까지 구성됐다. 정부가 계란유통센터 건립에 예산을 투입할 것인지 불투명한 가운데서도 업계에서 먼저 활발한 논의가 시작됐던 것이다.

계란유통센터 건립으로 계란유통구조 개선을 유도하면, 산란계 농가 수익을 향상시킬 수 있고 GP로 모이는 계란에 대해 사전검역체계를 도입해 위생적인 계란을 공급하기에도 용이하다는 판단에서다.

또, 계란운반차량이 농장을 드나드는 일도 미연에 방지해 차단방역에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대한양계협회는 정부와 국회를 오가며 계란유통센터 건립에 사활을 걸었다.

2014년 6월, 농축유통신문과 대한양계협회는 '바른계란유통의 길' 계란유통구조개선 위한 좌담회를 개최하고 계란유통센터 건립에 대한 학계·업계·생산자·유통인·농협 등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정부에 제시했으나 당시 농식품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식약처의 묵살로 흐지부지된 바 있다.

또한, 2015년도 한국양계농협의 난가공공장에서 일부 계란가공품에 폐기해야할 재료를 혼합사용하는 등의 문제가 제기된 때도 계란유통센터를 건립하고 이 센터에서 도축검사에 준하는 계란의 안전성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정부의 움직임은 없었다.

생산자를 포함한 관련 업계와 소통을 하지 못한 정부가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를 초래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적폐 청산을 주장하고 있지만 관료주의를 깨지 못한 공무원들의 행태로 농가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책임 또한 농가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내놓은 정부의 계란 살충제 안전관리 대책은 규제 강화 일색으로 무장해 21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근본적인 축산업 체질개선 대책 마련'에 못 미치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기도 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재광기자팬 2017-08-31 21:23:28
김재광기자님 항상 좋은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