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김영록 장관의 첫 카드, ‘닭고기 가격 공시제’
[진단] 김영록 장관의 첫 카드, ‘닭고기 가격 공시제’
  • 김재광 기자
  • 승인 2017.09.13 18: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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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일부터 닭고기의 유통단계별 원가를 확인할 수 있는 ‘닭고기 가격공시제’가 시행됐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틈을 타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한 데 따른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첫 작품이다. 과연 김영록 장관이 내민 첫 카드가 닭고기 업계와 소비자 모두에 유익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 농식품부의 기대

그동안 닭고기는 소나 돼지 청과물처럼 현물을 거래하는 도매시장이 없기 때문에 유통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지적과 함께 가격에 대해서도 많은 의혹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제는 축산물품질평가원 홈페이지에 마련된 ‘닭고기 가격 공시’메뉴를 통해 일반 소비자들도 최근 닭고기 가격을 매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닭고기 가격 공시는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등 9개 육계 계열회사업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뤄지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이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닭고기 가격이 공시됨으로써 소비자에 올바른 닭고기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다.

소비자의 눈이 치킨프랜차이즈의 가격 인상을 제어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정부가 생각하는 가격 공시의 순기능 중 하나다. 정부는 닭고기에 대한 일련의 가격 흐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투명성을 확보하고 가격 인상 제어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공시제 실효성 논란

공시제 도입 배경에 대해 치킨의 기습 가격 인상에 따른 정부의 제어 수단으로 정리할 수 있다. 치킨 가격 인상이 공시되는 납품 가격과 연동된다면 제도 도입에 성공적인 평가가 이어지겠지만 닭고기 가격이 치킨 가격 상승을 견인하는 것은 아니다.

치킨값의 주요 인상 요인은 닭고기 가격보다 인건비, 광고비, 배달비, 임대료 등 부수적인 변동폭이 영향을 미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공시제를 통해 알 수 없다.

또한, 소비자는 생산·도축·가공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염지비·절단·포장 등이 얼마인지, 얼마의 유통마진이 붙는지 역시 알 수 없다. 즉, 치킨값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빠져있어 소비자들이 ‘공정한 가격’을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공시제를 통해 농가나 중간 유통업체에게 이익이 되는가에 대해서도 원자재인 병아리, 사료 등의 가격이 공시되지 않는 이상 가격 상승에 대한 억제책이 될 수 있어도, 가격이 하락할 때는 보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제도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뒷받침한다.

산업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제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되는 것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정부가 시장 메커니즘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가격 공시가 생닭과 치킨 가격안정에 별 효과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은 치킨 가격의 변동은 생닭가격보다 임대료나 배달서비스의 문제가 크다고 꼬집고 있다.

◆ 객관성, 신뢰성 문제로 오히려 반감

현재 육계산업은 95%가량이 계열화 사업자에 소속돼 있다. 이 가운데 유통단계별 가격이 공시되더라도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동시에 거론되는 문제다.

가격공시에 참여하는 9개 계열업체의 매출액 50%이상 차지하는 20개 대리점에 판매하는 가격이 블라인드 처리돼 공시되다 보니 표본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도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평균가에 불가한 수준에 계열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업로드해주는 가격을 공시하다보니 소비자들은 의구심을 갖는다. 단적으로 11일 기준, 닭고기 공시제에 따르면 도매가 2411원짜리 닭이 1만6000원짜리 치킨으로 뻥튀기 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원가가 공개되자 치킨값이 비싼 것 아니냐며 닭 소비를 주저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치킨의 배신 시즌2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인들이 투명한 유통가격 공개로 소비자들을 이해시키고 가격을 둘러싼 논란에서 해방되리라 기대했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앞서 실효성 문제와 같이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채 서둘러 시행한 까닭에 역효과가 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닭고기 가격 공시제를 보면 생계 유통시세는 생산비 이하의 가격으로 납품되고 있다. 병아리 가격이 500원인데 반해 거래되는 생계 가격은 700원선까지 추락한 상황.

◆ 공시된 가격 바른 가격인가

위탁생계가격은 계열업체에서 소속 농가의 닭을 수매하는 가격으로 거의 변동이 없어 사실상 공시가 의미 없는 수치로 볼 수 있다. 반면 생계유통가격은 최하 789원에서 1489원까지 들쭉날쭉하다. 이 가격이 거래처 판매가격을 흔들고 있어 산업의 안정성이 훼손되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지난해 육계 생체 10kg당 생산비는 1만2439원으로 1kg당 1243원인 셈이다. 최근 3개년 생산비를 살펴보면 2015년 1277원, 2014년 1340원 수준이다. 12일 기준 축산물품질평가원에 공시된 생계유통 가격은 789원. 올해 생산비를 기준이 아니더라도 변동폭이 크지 않았던 최근 3년 동안의 농가의 육계 생산비를 빗대어 볼 때, 지금 납품되는 생계들은 모두 생산비 이하로 거래되고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닭고기 가격 공시가 과연 올바른 가격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수십년동안 개선되지 못한 육계산업의 어두운 민낯을 기반으로 대형마트, 치킨프랜차이즈, 대리점 등 거래처 가격이 정해지고 있고 이를 토대로 소비자들은 닭고기 가격에 대해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 투명한 유통가격 담으려면

현재 닭고기 공시제는 기존 시스템을 소비자도 볼 수 있도록 공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공시제에 드러나지 않는 산지유통인의 DC가격기준으로 생계 가격이 결정되는 불합리한 구조를 더욱 공고히 다져놓은 아이러니한 제도다. 즉, 공정한 가격대를 형성해 소비자를 이해시키고 투명한 유통구조를 만들겠다는 닭고기 가격 공시제도 도입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시장에서 절대 권력자들은 계열업체도 생산농가도 아니다. 이 제도가 올바르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유통단계별 마진에 대해 소비자들이 촘촘히 들여다보고 감시할 수 있도록 설정돼야 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병아리 가격이 500원인데 700원짜리 닭들이 움직여지고 있다”며 “현재 육계산업은 날개 없는 추락을 이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인들은 가격공시 시작이 생계가 아닌 도계육 가격으로 기준을 잡아야 한다고도 입을 모은다.

현재 우리나라는 닭고기 거래물량 중 단 5%미만의 생계가격이 닭고기 가격의 기준가격이 되는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다. 공시제를 통해 투명한 유통구조를 개선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닭고기 가격 결정구조에 대한 업계의 논의가 선행됐어야 한다.

건국대학교 김정주 교수의 ‘한국의 닭고기 가격 결정 시스템’이라는 논문은 관행적으로 생닭기준으로 결정되는 닭고기 가격 결정시스템을 바꿔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2013년 한국농식품미래연구원의 ‘닭고기 산업 발전방안 연구’에서도 현재 생계시세를 유지할 경우 가격결정의 왜곡 등 불안정한 시장환경을 조성해 닭고기 산업 발전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짚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올해 2분기 축산물 유통비용률 조사에 따르면 닭고기는 57.5%로 쇠고기·돼지고기·계란 등 축산물 중 가장 높다. 닭고기 가격 공시제는 이 비용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설정돼야 하며 닭고기 가격 결정구조와 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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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2017-09-13 22:16:12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