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허가 축사’라는 사형선고에 사생결단 나선 사람들
[르포] ‘미허가 축사’라는 사형선고에 사생결단 나선 사람들
  • 김재광 기자
  • 승인 2018.02.13 0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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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축산대란 우려
축산 농가 폐업 속출, 축산업 기반 붕괴
사생결단 의지…정부·국회와 전면전
축산 단체의 국회 농성장 24시간
결국 궁극적인 피해자는 '국민'

축산농가 사이에서 소위 ‘사형선고’라고 불리는 날이 있습니다. 가축분뇨법이 개정되면서 상당수 축산농가들이 미허가축사(무허가축사)로 규정돼 사용 중지 또는 폐쇄 명령 조치를 받게 될 운명에 놓인 3월 25일입니다. 축산업의 근간이 휘둘릴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미허가축사 적법화 기한은 야속하게도 40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 가운데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축산관련단체협의회 소속 단체 관계자들의 하루를 동행취재 했습니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진행된 삭발식.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진행된 삭발식.

<오전 10시> 축산단체가 길거리로 나온 이유는

미허가 축사 보유농가는 전체 축산농가 중 절반이 조금 넘는 6만190가구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중 적법화된 농가는 전체의 13.4%인 8066가구에 불과하다는 게 축산업계 분석이지만 정부와 집권 여당의 생각은 달라 보입니다.

농식품부는 적법화를 마친 농가는 8066가구(17.8%)이고, 진행 중인 농가는 1만3688가구(30.2%)로 이미 절반정도가 적법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약간의 상향 수정을 거쳤지만 현장과 엇박자를 보이는 정부 통계와 해석을 토대로 환경부와 여당이 요지부동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환경부와 집권 여당의 태도 전환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식과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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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오후 6시> 피해 호소 숨가쁜 행보
뼛속까지 파고드는 영하권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번 겨울은 축산인들에게 유난히 춥고 고통스러웠던 겨울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삭발식으로 결연한 의지를 보인 축산인들은 기자회견 이후 곧바로 국회의사당역 3-4번 출구 사이에 위치한 천막농성장에 들어와 몸을 녹이고 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번 투쟁에서 전면에 나서고 있는 단체장들뿐만 아니라 각 단체 실무진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책임을 다하는 무명의 영웅들입니다.

오늘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자유한국당 간사가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미허가축사 적법화 기한 연장을 당론으로 채택한 자유한국당에서 특히 큰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임이자 간사와 축산단체장들은 문재인 정권과 여당은 축산농가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있지만, 이제 축산농가들의 처절한 외침에 정부와 여당이 응답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기자회견 이후 다시 국회 앞 천막 농성장으로 복귀한 단체장들은 수많은 격려방문을 맞이했습니다. 바른정당 유승민 당대표와 정병국의원, 권오을 최고위원, 성병화 전문위원 등도 방문해 미허가 축사 기한 연장에 대한 공감대를 표하고 당론 채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농식품부 김종훈차관보, 김태환 축산경제대표이사, 농협사료 김영수 대표이사도 농성장에 방문해 축산인들의 요구사항을 청취하고 단체장들을 격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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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9시>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시간
저녁 7시. 많은 사람들은 가족 또는 동료와 하루를 마감하며 추위를 녹일 시간이겠지만 단식 농성에 돌입한 단체장들은 감잎차와 생수, 죽염으로 차갑고 쓰린 속을 달랩니다. 오늘 국회 농성장 담당 축종은 한국토종닭협회와 대한양계협회지만 축산업의 명운을 좌우할 그야말로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한국육계협회, 한국낙농육우협회, 전국한우협회 등 직원들도 늦은 시간까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천막은 총 2동이 펴 져 있습니다. 각종 농성 물품을 보관하는 곳과 생활을 하고 있는 이곳의 환경을 둘러보고 본격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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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다가 오고 있는 시각이지만 축산단체장들은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오후 10시-새벽 1시> 축사 적법화 안된 이유는
평소와 같았다면 이 자리엔 막걸리와 소주가 있었겠지만 오늘 단체장들은 감잎차를 들고 현재 겪고 있는 현장의 어려움을 토해냈습니다.

문정진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한국토종닭협회장)은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문 회장은 “무허가 축사라는 표현은 농가가 불법을 저지른 것처럼 오인될 수 있어 아닐 ‘미’를 적용해 ‘미허가 축사’라는 용어로 변경했다”며 “허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으나 절차상 또는 잘못된 법률로 하고 있지 못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한 연장에 대한 당위성을 이미 용어에 함축한 셈입니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은 “농식품부·환경부·국토부가 합동으로 무허가 축사 개선대책을 2013년 2월에 발표했으나 실시요령을 2년 9개월이 지난 2015년 11월에 마련했고 구제역·고병원성 AI에 대처하느라 실질적인 적법화 추진 기간이 부족했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적도 상에서는 자기소유지만 GPS 측량 오차로 남의 땅이 된 축사의 경우 이 땅에 대한 용도폐기 또는 사용허가에 소요되는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입니다. 또, 언론을 통해 미허가 축사 문제를 알게 된 땅 소유주는 매입가를 천정부지로 높이기도 합니다. 그린벨트(개발제한제한구역)이나 학교 등지에 설정된 교육환경보호구역, 군사 보호지역 등 국공유지도 입지제한이 있기 전부터 축사가 있었으나 대책은 전무합니다. 결국 관련 부처의 행정처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합니다.

하태식 대한한돈협회장은 “일선 시·군에서 관계법령에 정하지도 않은 주민동의서를 요구하거나 적법화를 거부하는 곳도 있고 각기 다른 유권해석으로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26개 관련 법률이 얽혀 지자체에서 수용불가 방침을 내리는 곳도 16개 지자체 중 10여개 지자체에 이릅니다.

축산 농가들은 정부 정책기조에 동참하고 적법화 과정을 추진하려 했지만 신청 서류조차 접수할 수 없었던 이같은 상황들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관장약을 배분하고 있는 낙농육우협회 박희상 사원과 톡톡히 알람 역할을 해주고 있는 횡단보도, 본 기자의 취침현장.
관장약을 배분하고 있는 낙농육우협회 이희상 사원과 톡톡히 알람 역할을 해주고 있는 횡단보도, 본 기자의 취침현장.

<새벽 2시-오전 6시> 악조건 속에서도…
아직 할 말이 많지만 단식투쟁 장기 레이스를 치러야 하기에 천막 한켠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전국한우협회 최명호 과장에게 신호등 소리에 잠을 설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날에도 시각장애인들의 보행권 보장에 도움을 주는 음향신호기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6시,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이 가장 먼저 눈을 떴습니다. 물론, 토종닭협회 김현태 차장과 양계협회 김동진 국장은 일찍이 기상해 다음 일정을 체크하면서 감잎차를 준비합니다. 전날 낙농육우협회 이희상 사원이 배분한 관장약과 함께 만약을 대비한 기저귀도 준비됐습니다. 대한양계협회 이홍재 회장과 대한한돈협회 하태식 회장은 간단한 세면도구를 챙겨 지하철 화장실로 이동합니다.

기상 후 담소를 나누는 문정진 회장과 김홍길 회장, 다음 담당 축종에 농성장 인수인계를 위해 정리를 마치고 2일차를 알리고 있는 한국토종닭협회 김현태 차장과 출근길 행렬.
기상 후 담소를 나누는 문정진 회장과 김홍길 회장, 다음 담당 축종에 농성장 인수인계를 위해 정리를 마치고 2일차를 알리고 있는 한국토종닭협회 김현태 차장과 출근길 행렬.

<오전 8시-오전 10시> 축산단체 요구사항은
새벽에 못 마친 무거운 이야기들을 이제 막 눈을 뜬 단체장들에게 재촉했습니다. 본 기자도 출근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죠. 그들의 요구는 명확했습니다. 가축분뇨법 및 건축법 시행령 개정과 적법화 특별법 제정입니다.

김홍길 전국한우협회장은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정부의 안일한 행정이 주된 원인이고 가축분뇨법과 건축법을 구분해서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괄 적용해 불가능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도 “농가들이 감정에 호소하며 떼 쓰는 것이 아닌 적법화 불가요인으로 지목된 입지제한, 지자체 비협조 등의 난관을 타개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축산업은 언제나 희생돼 왔습니다. 그 피해를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를 나왔다기 보다 정부가, 사회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한미FTA체결에서는 자동차와 철강 등 주요 국내 강세 품목의 수출을 늘리는 대신 말도 안 되는 세이프가드 기준이 설정돼 한우 농가수는 그새 반토막 났습니다. 

정부는 효율과 생산성을 추구하고 국민은 저렴하고 맛있는 축산물을 원합니다. 그러나 밀집사육에 동물 학대자라는 따가운 눈총과 가축분뇨와 악취 등 환경오염 민원이 빗발치는 등 축사에 대한 님비현상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축산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의 희생과 피해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 보지 않습니다. 거리로 내몰리고 난 뒤에야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침낭도 온기를 잡아주지 못하는 매서운 추위와 맞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호소하고 있지만 여당과 환경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축산 단체장들은 축산대란을 우려해 범정부 차원의 접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무총리실 주재 미허가 축사 특별대책 TF팀 구성이 그것입니다. 당장 절반 이상의 농민들의 생업을 잃게 된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국민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국내산 축산물의 가격이 상승해 우리 식탁이 수입축산물에 점령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곧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는 단식투쟁 1일차인 2월 7일 국회 농성장 취재를 바탕으로 24시간 현장의 이야기를 구어체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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