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업인시리즈⑬] 이베리코 저리갈 ‘프리미엄 흑돼지’ 꿈꾸는 김동찬 씨
[청년농업인시리즈⑬] 이베리코 저리갈 ‘프리미엄 흑돼지’ 꿈꾸는 김동찬 씨
  • 김재광 기자
  • 승인 2018.09.20 08: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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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없는 친환경 양돈장 축산인 귀감…열린 체험 농장 계획
흑돼지들이 톱밥에서 뒹굴다 기자를 반겨주고 있다.

[농축유통신문 김재광 기자]

돌멩이가 많은 골짜기 석곡(石谷). 석곡은 예로부터 돌실 토종 흑돼지 요리가 일품이라고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의 옛 이름이다. 국내 양돈산업이 산업화의 길을 걸어가면서 규모화된 일반돼지 사육농가가 늘어났고 제주 흑돼지, 남원 흑돼지 사이에서 조용히 명성을 잇던 석곡 토종 흑돼지는 자취를 감춰갔다.

그렇게 저물어 가던 석곡 흑돼지 명맥을 잇고 있는 농장이 있다. 고을의 옛 이름을 딴 ‘돌실한약먹인흑돼지영농조합법인’이다.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농장 부근에 도착했다. 기자를 맞이한 건 곱상한 외모를 가진 후계 한돈인 김동찬(26) 씨다. 그는 이제 막 초보농부 딱지를 떼고 어엿한 한돈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흑돼지 사육 4년차 청년농부다.

냄새 없는 친환경 축사

“다른 양돈장도 취재 많이 가보셨나요? 저희 농장가시면 많이 놀랄 거예요.”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와 당찬 걸음으로 농장을 안내했다.

단순히 흑돼지 사육 명맥을 잇고 있는 농장이 아니다. 흑돼지 품질과 맛이 훌륭해 입소문이 자자하다. 일반 돼지보다 쫄깃한 식감은 흑돼지를 찾는이들의 입맛을 돋군다. 식당에선 추가 주문율이 높아 일반돼지보다 1.5배 이상의 가격으로 납품하고 있다.

흑돼지들에게 쌀겨가루와 누룩을 발효시켜 매실과 수용성 칼슘 등을 섞은 ‘보약’을 먹인다. 실제로 아버지가 농장을 운영할 땐 한의사였던 작은 아버지 약방에서 보약을 만들다 남겨진 재료들을 모아 줬다고 한다.

김 씨의 농장은 친환경·무항생제·HACCP 인증 농장이다. 동물복지 농장 인증 요건도 갖춰가고 있다. 전남도청은 체험형 돼지농장 운영도 권해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등 견학과 체험을 두루 할 수 있는 코스 구성도 계획중이다.

지역 축산농가들의 현장교육을 비롯해 인근 유치원에서는 때마다 견학도 나온단다. 돈사 냄새가 익숙한 기자에겐 낯선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으레 맡아왔던, 때론 숨쉬기도 거북했던 축사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축사 냄새가 안 나는 비결은 왕겨와 톱밥을 자주 갈아주기 때문이다.

개방형 축사 앞뒤로는 넓은 흑돼지들의 운동장과 함께 견학코스로도 활용된다.

미래 꿰뚫은 아버지의 혜안

‘돌실 한약 먹인 흑돼지 영농 조합법인’은 2010년 친환경 농장으로 출발했다.

“2008년 아버지는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의 석곡면 권역사업에 참여했는데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소규모 친환경 축사로 콘셉트를 잡고 다가올 미래는 우리 농장이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셨었어요.”

아버지의 선견지명(先見之明)과 혜안(慧眼)으로 10년이 지난 지금, 아들의 미래도 밝게 비추고 있다. 김동찬 씨는 학창시절 농장일은 아빠일로만 생각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가업을 이어받기로 결정하고 곧바로 한국농수산대학 중소가축학과에 진학한다.

“저는 실습을 미국으로 갔습니다. 규모화된 시스템을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곳에선 돼지사육과 출하를 끊임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반복적이고 기계 부속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생각이 많이 달랐죠. 우리나라는 내 자식, 생명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담담하게 풀어내는 김 씨의 이야기는 짧은 경험 속에서도 축산은 생명산업이라는 가치가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록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김동찬 씨, 흑돼지를 생육과정을 관찰하며 추가 적용한 스톨과 사양관리를 설명중이다.

사고뭉치에서 어엿한 한돈인으로

농장생활과 시작과 동시에 아버지는 농장을 전적으로 동찬 씨에게 맡겼다. 동찬 씨 농장은 모돈 100두, 전체 사육규모는 약 1000마리정도다. 배워왔던 이론과 실습, 대한한돈협회를 비롯한 각 사료사 양돈세미나에 참석하며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과정에서 터득한 자신의 사육철학을 농장에 적용하기도 했다. 의욕이 너무 앞 섰던 걸까. 한 그룹의 돼지가 모두 유산되기도 했다. 깜빡하고 미처 분만사로 옮기지 못해 막 태어난 새 생명을 찬 바닥에 잃기도 했다.

“흑돼지만의 특성이 있는데 일반돼지들의 평균적인 이론을 접목해 여러 아픈 경험을 했어요. 산자수를 좋게 하려고 야위게 사육했더니 출산 에너지가 부족해 무더기 유산을 하더라구요. 기록관리를 잘못해 근친으로 기형돼지가 나왔던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저런 사고로 매출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실패를 예견하고도 묵묵히 지켜봐주시고 해보고 실패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한 마리 한 마리가 정말 소중합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더욱 견고해지고 있는 김동찬 씨. 4년차를 넘기면서 이제는 안정감을 찾고 있어 매출도 회복하고 있다고.

철저한 기록은 생명과도 같다. 스마트폰 어플로 바로바로 정보를 입력하고 어플로 살펴본다. 농장 돼지 폐사율 1%미만. 생산능력은 국내 한돈농가 평균에 조금 못미친다. 그러나 조급하진 않다. 흑돼지만의 특성을 살리면서 자체 품종 개량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성적은 차츰 나아지고 있다.

국내산 돈정육 함량이 무려 82%다. 사진 상 너비아니와 소시지가 각각 세트에 만원.

“좋은 환경이 좋은 돼지를 만든다”

잘 먹고 잘 뛰어 놀고 주변 환경이 깨끗하면 면역력이 높아 질병에도 강해진다는 지론을 펼치는 김동찬 씨. 포유기간(어미 젖을 먹이는 기간)을 일반 돼지보다 10~14일 늘려 자돈의 면역력을 키운다. 어려서부터 튼튼해야 커서도 잔병이 없단다. 톱밥 때문에 구충만은 출하하는 시점까지 해준다. 기침하는 돼지가 없다. 일교차가 제법 커진 날씨에 개방형 축사인데도 호흡기 질환(PRRS)을 앓는 돼지가 없다.

“10년, 20년후 쯤엔 흑돼지 농장 브랜드화를 이루고 싶어요. 프리미엄 국내산 돼지고기로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차곡차곡 경험과 꿈을 키우겠습니다. 훗날 이베리코 열풍처럼 수입육 바람이 불더라도 가뿐히 잠재울 수 있도록요.”

최근 환경과 동물복지형 사육 등 국내 축산업계를 향한 부정적인 시각을 풀 수 있는 농장으로 꼽히는 ‘돌실한약먹인흑돼지 영농조합법인’. 청년농업인에 향한 따가운 시선에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도시사람들은 아버지 농장 승계라고 할 수 있는데, 맞죠. 그러나 축사 신규 허가도 안 나는 상황에서 축산은 후계 농업인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커요. 그분들 입장에서 저는 큰 혜택을 받고 시작하는 것이고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청년농부로서 성장과정과 노력들이 거름이 돼 신선한 농축산물이 도시로 찾아간다는 점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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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부남 2018-09-26 19:51:33
화이팅입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식당에 고기는 이집고기만씁니다 ^^.. 흑돼지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