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밀 자급, 이제는 구체화하라
[사설] 밀 자급, 이제는 구체화하라
  • 김영하 대기자
  • 승인 2019.03.11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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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유통신문 김영하 대기자]

밀은 경로우대증을 받지 않은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밭에서 볼 수 없었던 작물이다. 한국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미국이 잉여농산물로 식량 원조했던 것이 바로 밀이다. 그래서 전후에서 1960년대까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다니던 세대는 원조식량인 밀을 배급받았고 학교에서 밀빵을 직접 받은 경험이 있다.

식량이 부족했던 당시로서는 식량을 감지덕지 받아들였지만 잉여농산물의 유입으로 우리의 밀자급기반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동안 전국적으로 생산자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경남 합천에서 한 농부가 밀 종자를 보유, 재배하고 있었는데 한살림이 우리밀사업을 전개하면서 조금씩 늘어났다. 그래서 이를 살리고자 민간이 뭉쳐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1991년 설립돼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농촌 밥상살리기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됐어도 자급률은 지금까지 2%를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국산 밀의 가격경쟁력 향상은 외치면서도 정작 문제 해결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밀산업 중장기 발전대책은 그동안 소외돼왔던 밀 연구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1984년부터 중단됐던 '우리밀 수매 비축제'가 올해부터 재개된다. 정부 수매비축은 밀 생산농가에 활력을 주고 품질등급제 도입은 고품질 밀 생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대책은 국산 밀 품종연구 지원이다. 고품질 밀 품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계적인 다국적 종자기업은 수십 억 달러를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밀 생산 선진국에선 한 대학에만 수십 명으로 구성된 육종연구팀이 꾸려져 신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국가적 투자와 산학연의 연구개발 의지를 뒷받침해줄 적절한 지원이 부족했다.

이제 고품질 국산밀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 이에 따라 우리는 국내 환경에 맞는 유전자원을 다양하게 확보하고 첨단 육종기술을 빠르게 적용해야 한다. 국내에는 밀 유전정보의 총량이 빈약해 유전적 다양성이 결핍돼 있다. 국내 밀가루 수요의 약 30% 이상이 면에 쓰이는 경질밀을 요구하는 데 반해 지금까지 개발은 중간질·연질밀 등 박력분용 품종에 집중돼 있었다. 지난해 72300여명의 전세계 과학자들이 밀 유전체 해독을 13년에 걸쳐 완료한 만큼 국내 밀 연구도 이를 활용한 과학적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연구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밀 신품종 육성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고 조직적 연구가 요구된다. 논문 실적을 중시하는 학계의 분위기는 육종을 기피 경향이 있어 신품종 개발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연구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

아울러 차별화된 국산밀 정책과 가공업체·생산자·연구자간 단합된 열정이 필요하다. 지금껏 명맥만 유지돼왔던 밀 육종연구는 정부의 지원으로 산학연이 경질밀 육종연구를 시작하고 농촌진흥청이 밀 연구팀을 출범시키며 동력을 얻었다. 경질밀을 개발하면 국민들은 바다를 건너오며 신선함을 잃은 수입밀보다 고품격의 맛과 신선하고 국민건강을 책임질 국산밀을 먹을 것이다. 그 다음은 밀 자급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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