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산란일자 표시제, 모두가 ‘혼란’…관리 구멍 ‘숭숭’
계란 산란일자 표시제, 모두가 ‘혼란’…관리 구멍 ‘숭숭’
  • 김재광 기자
  • 승인 2019.04.11 16: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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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서 산란일자를 확인하며 계란을 고르고 있는 한 소비자의 모습.
대형마트에서 산란일자를 확인하며 계란을 고르고 있는 한 소비자의 모습.

[농축유통신문 김재광 기자] 

계도기간 이후 양계업계 대혼란 예상
“소비자단체, 과연 소비자 대변하나” 불만

“정부에게 농민들은 어느 의원 막말처럼 개돼지인가봐요.”(경기도 한 산란계 농장주)

정부가 소비자단체를 업고 밀어 붙였던 계란 산란일자표시제도가 2월 23일부터 시행됐다. 오는 8월부터는 모든 계란을 언제 낳은 건지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산란계 농가들의 대표 단체인 대한양계협회는 계란안전성과 유통환경 개선이라는 정부의 취지와는 달리 많은 혼선이 불가피하다며 반대해 왔다. 오히려 별도의 제도 없이 냉장온도관리와 유통기한 표시로도 정부의 목적달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제도 시행 50여일이 지난 현재 현장에선 정부의 의도대로 산란일자 표시제가 잘 정착되고 있을까.

기자는 산란일자표시 의무화가 시작된 2월 23일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4월 7일까지 서울·경기·수도권의 대형마트와 중소형 마트를 중심으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취재과정에서 현장의 실태를 점검하고 다양한 소비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 “산란일자가 뭐예요?”…제도 홍보 미흡

기자는 지난 50일 간 주 1회(주말) 오후 3시에서 8시 사이에 각 현장을 점검했다. 산란일자표시제도가 시행되고 하루 뒤인 2월 24일. 대형마트들은 제도 시행일에 맞춰 계란 껍데기에 산란일자를 마킹한 상품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간혹 아직 산란일자표시가 안 된 상품도 눈에 띄었다. 

“이건 써져(산란일자가) 있고, 이건 왜 없는 거예요? 그럼 이건(산란일자 미표시 상품) 불법이에요? 근데 그 제도가 뭐예요?”

3월 3일 서울시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 계란 판매대에서 취재 의도를 설명하자 김수현 씨(37)가 기자에게 이같이 물었다. 김 씨가 지목한 상품은 포장지를 열어 봐야 산란일자 확인이 가능했다. 다른 상품은 포장지에 산란일자까지 표기된 것도 있었다. 기자가 직접 열어줬다. 그리고 제도가 잘 정착할 시간을 주기 위해 6개월의 계도기간이 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아니…포장지에 쓰도록 의무화 하는 게 낫지. 번거롭네요.”

기자는 투명한 케이스에 담긴 계란 상품을 들어 이런 포장은 난각에 표시된 사항을 직접 확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 씨는 “이 포장은 재활용이 어렵다던데,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만든다고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그럼 모순되는 것 아닌가”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이 모든 것이 소비자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원해서 만든 제도라고 하자, “도대체 소비자단체의 의견수렴은 어디서 하는 것이냐”며 “전화여론조사나 시청률 조사처럼 정말 궁금하다”고 말했다.

포장재를 열어야 산란일자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손을 거치면서 계란의 품질 저하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포장재를 열어야 산란일자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손을 거치면서 계란의 품질 저하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지막으로 취재했던 4월 6일에도 이어졌다. 기자가 난각을 지목하며 이 번호가 뭔지 아느냐는 질문에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사는 박소현 씨(46)는 “살충제 계란 조회하는 번호 아니냐”고 했다. 판매대 위에 설치된 산란일자표기 안내문구를 가리키자 “아~뉴스 본 것 같아요. 농민들이 시위하는 거”라며 “그럼 어제 나온 것 없나”하고 판매대를 휘저었다.

주말에 함께 장을 보러 나온 김독광(66)·김미지(59) 씨는 계란판을 들고 눈에서 멀리 떼다가 가까이 대는 과정을 반복했다. 작은 계란 안에 많은 정보를 기입하다 보니 글씨가 작아 읽을 수가 없어서다.

기자가 다가서서 인터뷰를 요청하자 부부는 “허허…혹시 계란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어디에 번호를 조회할 엄두가 안 나네요.”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중형마트. 기자가 취재를 요청하자 소비자는 산란일자 표시된 계란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소비자들이 최근 산란일자 상품만 집어간 모습. 하루차이에도 선택은 냉정했다.
소비자들이 최근 산란일자 상품만 집어간 모습. 하루차이에도 선택은 냉정했다.
할인판매 대상인 산란일자표시가 없는 계란들의 인기가 좋다. 중소형 마트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굳이 알을 낳은 날짜를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할인판매 대상인 산란일자표시가 없는 계란들의 인기가 좋다. 중소형 마트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굳이 알을 낳은 날짜를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 동네 중소형 마트는 ‘사각지대’

대형마트에선 대체로 산란일자가 표기된 상품만 진열됐다. 100% 표시된 상품만 진열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중소형마트에서는 반대 상황이 연출됐다.

새학기가 시작돼 한창 계란소비 특수 기간인 3월의 끝자락 3월 30일, 서울시 서초구의 한 중소형 마트. 특란 할인행사가 눈에 들어왔다. 판매대를 찾아 마트로 진입했다. 냉장관리 시스템은 전혀 적용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계란이 쌓여 있는 곳엔 산란일자가 표시된 CJ, 풀무원 등 브랜드란을 제외하고 다른 한 공간은 난좌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란일자표시가 안 된 상품들이다.

마찬가지로 한 곳만 파인 판매대는 대형마트에서도 포착됐다. 최근 산란일자의 상품이 진열된 곳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깊게 파였다. 단 1일 차이에도 소비자들의 선택은 갈렸다.

대형마트 가운데 산란일자가 표시된 상품중 1,2주 이상 선택되지 못한 경우 DC(할인)가격으로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풀무원과 CJ등 대기업들은 난각과 포장재 동시에 산란일자 표시를 하고 있다.
풀무원과 CJ등 대기업들은 난각과 포장재 동시에 산란일자 표시를 하고 있다.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은 이같은 현장 상황을 예견하고 냉장유통환경조성과 유통기한 표시를 요청해 왔다. 또 계란품질에는 차이가 없으나 구입날짜 대비 산란일이 멀어질수록 구매 거부 반응이 일어나 재고량 관리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란일자표시제가 국민 먹거리 안전성과 계란신선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이라면 계란식품의 특성상 온도관리와 유통기한 표시가 주효할 것이란 주장이다.

정부는 주요 방송사와 일간지의 기사 댓글로 여론을 수렴하면서 별다른 지원 없이 농가에게 변화와 희생만을 종용했다. 소비자단체 또한 알권리로 포장한 왜곡된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예견됐던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산란일자를 난각에 표시하는 것이 의무지만 포장지표기도 검토중”이라며 “계란안전TF팀이 운영되고 있으니 다양한 의견을 계속 수렴하겠다”고 전했다.

 

◆ 이웃나라들은 어떻게, 우리의 보완 방향은

계란 안전성과 신선도를 높이는 합리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기자는 50여일의 현장조사를 진행하면서 대한양계협회가 주장하는 계란유통온도관리와 유통기한 표시가 타당하다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계란 생산·유통·소비 단계에서 다양한 온도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선별·포장을 마친 계란은 운송을 포함해 7.2℃를 유지토록 하고 있다. 소매점은 계란 판매 온도 5℃를 지켜야 한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는 품질 유지를 위해 건조한 계란제품만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지난 2월 2일 설연휴 일본에서 구매한 계란의 모습. 상미기한(판매기한)이 적혀있고 계란 난각에는 가식기한(유통기한)이 적혀 있다.
지난 2월 2일 설연휴 일본에서 구매한 계란의 모습. 상미기한(판매기한)이 적혀있고 계란 난각에는 가식기한(유통기한)이 적혀 있다.

계란에 대한 표시는 미국·유럽·일본 등이 비슷하다. 포장재에 포장날짜, 판매(상미)기한, 가식(유통)기한을 표시하도록 돼 있다. 먹을 수 있는 가식기한이 판매기한보다 길게 설정된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 경제거래국은 ‘계란의 표시에 관한 공정경쟁 규약’을 통해 농가가 가식기한과 채란일 등을 표기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일본 소비자단체가 가식기한과 채란일 등을 표기해 달라고 요구한 것을 두고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한 계란유통상인은 “거래처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납품처의 경우 산란일자 3일 이내를 요구하기도 하고 통상 5일을 넘기면 판매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중소형 마트에선 산란일자표시 상품 납품이 더디지만 계도기간이 지나면 요구에 맞출 수가 없어 앞이 캄캄하다”고 성토했다.

‘일단 시행하고 계도기간에 보완하자’라는 식의 정책결정은 국민의 정책신뢰도를 하락시키고 혼란을 야기하기 충분하다. 계란안전TF팀에 거는 기대와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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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투스 2019-04-14 12:31:03
좋은기사네요. 산란일자가 일본서도 예~전에시행되었다가 다시 포장날짜로변경된 사례처럼 결국 혼란만 도래하고 나중엔 없어질것같은 정책같아요

어쩔 2019-04-11 17:45:48
계란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