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든 성배’ 농축산물 가격 결정권
‘독이든 성배’ 농축산물 가격 결정권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2.03.16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 결정은 몇몇 특수품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매시장에서 이뤄지는 경매를 통해 책정된다.
이른바 대표가격이라 해서 꽃은 aT의 화훼공판장, 무배추를 비롯한 과채류·근채류·양념채소와 과실류는 가락시장이, 한우와 양돈 등은 농협의 음성축산물공판장 경락 가격이 대표가격 역할을 하고 있다.
도매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은 일반경제학에 나오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며 수요를 줄여주기도 하고 수요를 늘리기도 하며 또 공급량을 줄이거나 늘리기도 하며 균형공급과 소비로 자원의 낭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농산물이 출하되기 위해서는 짧게는 몇 주, 길게는 3년 가까이 재배하거나 사육해야 하기 때문에 공급의 탄력성이 떨어진다는 것과 수요도 가격이 아무리 내리더라도 먹을 수 있는 양이 한계가 있고 아무리 비싸더라도 생존을 위해 일정량은 먹어야 하기 때문에 가격에 대한 수요의 탄력성도 경직돼 있어 내릴 때는 폭락하고 오를 때는 폭등하는 경우가 많아 물가를 관리하는 정부로서는 보통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고 거래되는 직거래를 유도하고 생산과 유통을 한 주체가 담당하는 수직계열화를 추진해 공급과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은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직거래나 계열화 물량이 전체 생산량 중 시장 지배적 위치에 와 있어도 가격을 거래 당사자들이 협상에 의해 책정하기 보다는 도매시장 거래 가격을 중용하고 있어 가격 변동성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직거래와 계열화 물량이 늘어나면서 도매시장의 기능이 약화되며 가격의 외곡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양돈의 경우 이미 2000년대 중반 도매시장 출하물량보다 계열화나 육가공업체와의 직거래 물량이 주류를 차지했고 품질 좋은 돼지의 경우 육가공업체가 선점하면서 도매시장은 출하물량도 줄고 품질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도매시장에서 중도매인들의 매수세가 줄어들기 시작해 경락가격이 시장상황과 연동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직거래를 하는 농가들은 품질이 우수한 돼지를 육가공업체에 넘겨줘도 가격 왜곡이 심한 도매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정산하다 보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고 도매시장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양돈뿐만 아니라 양계부분에서도 나타나는데 계열화 참여물량이 전체의 9 0%를 넘어선 육계부분의 경우 생산비와 가공비용, 유통비용, 마진 등을 합해 적정 가격을 산출할 수 있지만 양계협회가 조사해 발표하는 비계열화참여 산지육계가격을 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계열화와 직거래가 거래방법의 주류가 된 산업도 가격 결정을 계열주체 등이 하지 않고 시장에 의존할까.

그 이유는 가격 결정권을 쥐었을 때 누릴 수 있는 혜택보다 손실이 많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가격 정산을 시장이 아닌 판매농업인과 매수주체가 협상에 의해 할 경우 더 비싸게 팔려는 농민과 최대한 싸게 구매하고자 하는 유통업자간 줄다리기가 발생하고 누구는 싸게 누구는 비싸게 샀다는 정보가 떠돌아 다니며 거래주체간 불신만 쌓일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최종 소비처와 거래를 하는 유통인과 달리 농업인은 시장 상황에 어두울수밖에 없어 이를 악용하는 사례까지 발생하며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또한 판매농협 구현 등을 통해 산지유통의 50% 이상을 책임지겠다는 농협중앙회의 경우 가격 결정권을 쥘 가능성이 높은데 만약 농협이 가격 결정권을 쥐게될 경우 높은 가격에 사줄 것을 요구하는 농업인과 물가안정을 빌미로 되도록 싸게 판매할 것을 종용하는 정부와 소비자 사이에 끼어 농협의 농산 물 유통사
업은 굴러가기 힘든 지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원유가격 기준 가격을 제시하는 낙농진흥회는 원유가격 인상 때마다 높은 인상율을 요구하는 생산자들의 강한 압박 그리고 인상폭을 낮게 유지하려는 유업체 사이에서 좀처럼 협상 중재를 하지 못하고 있고 원유가격 조정 재료가 생길때마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이 십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원유가 조정도 조정이지만 완제품의 가격 조정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해8월 원유가 인상을 타결 지은 유업체들은 곧바로 제품가에 원가 반영을 하려 했지만 정부의 강한 압박으로 인해 원유가 인상분을 제품가에 반영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결국 농산물 생산과 유통의 주류 자리에 올라서 가격 결정권을 쥐게 될 경우 갖게 되는 부담은 국내 농업현실에서는 ‘독이 든 성배’와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정부가 생각하는 가격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는 시장기능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고 심한 가격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우리 농업현실에 맞게 도매시장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통정책을 꾸릴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