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책마련 없이 개도국 ‘포기’
정부, 대책마련 없이 개도국 ‘포기’
  • 김영하 기자
  • 승인 2019.11.01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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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 압박 92일 만에 굴복


[농축유통신문 김영하 기자]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그동안 정부는 1994년 절대 개방하지 않겠다던 쌀시장을 포기한데 이어 2005년 한미 FTA, 2008년 광우병 발생 미국 소고기 수입허용, 2009~2015년 무차별적 세계 수십 개국 FTA 체결과 쌀 관세화 도입 등 농업계의 간절한 대책 후 협상이라는 명분을 저버리고 스스로 장벽을 허물어왔다.

지난달 25일 정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연 직후 브리핑을 통해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되는 경우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이태호 외교부 2차관 등이 참석했다.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압박한 지 92일 만으로 미국이 정한 시한인 1024일을 정확히 지키려 노력하는 성의까지 보였다.

홍 부총리는 우리 농업의 민감분야는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갖고 협상할 권리를 보유·행사한다는 전제 아래 이같이 결정했다쌀과 같은 농업의 민감 분야는 최대한 보호한다는 전제 아래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포기 결정의 효력이 미래 WTO 협상부터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협상이 시작돼 타결되기 전까지 기존 협상을 통해 확보한 특혜는 변동 없이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도하 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장기간 중단돼 사실상 폐기상태에 있으며 협상이 재개돼 타결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장 농업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고 미래협상에 대비할 시간과 여력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경우 WTO 회원국간 추가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 WTO 회원으로서의 조건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양자간 협상(FTA)을 맺은 국가와는 선진국으로서의 후속협상 등의 과정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은 물론, 농업보조금과 주요 농산물의 관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33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WTO 개도국 지위유지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은 이날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열린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WTO 개도국 지위의 포기는 한국 농업을 미국의 손아귀에 스스로 바치는 것이라며 정부 결정을 비판했다. 이들은 또 정부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당장 피해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며 관련 대책마련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결국 농민단체와의 간담회가 개도국 지위 포기를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음을 여실히 드러냈지만 우리 농민단체들은 어떤 투쟁도 불사할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황주홍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은 정부가 어떻게 이런 반농업적 판단을 할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지난달 17일 있었던 국회 농해수위 결의안에 비춰서도 정부 발표가 매우 잘못된 판단이며 이제라도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 줄 것을 진심으로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무소속의 김종회 의원도 성명서를 통해 식량주권의 최전선에서 생태와 환경을 지키는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제 도입 등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대책도 없이 식량주권을 포기한 행태에 국민의 분노와 불신이 커져만 가고 있음을 정부는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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