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7만톤 무관세 수입 속 숨겨진 메시지
삼겹살 7만톤 무관세 수입 속 숨겨진 메시지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2.04.0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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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농식품부 정책서비스 ‘농민’서 ‘소비자’로 이동

정부가 2분기 돼지고기 7만톤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수입하려던 계획이 양돈농가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관세 수입물량을 2만톤으로 대폭 축소 운영키로 했다.
지난해 국내산 돼지고기 부족을 빌미로 연중 계속됐던 돈육수입이 올 1분기까지 이어지면서 속을 끓였던 양돈업계가 할당관세 적용기간을 또 다시 연장키로 하면서 돼지출하 중단 선언 등 양돈업계가 실력행사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농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다.
양돈농가의 밥그릇 지키기로 폄하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소수 농가의 소득보장·생존권 문제와 다수를 차지하는 소비자를 위한 물가 안정이라는 두 사안이 맞부딪쳤을 때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과거 농림부 시절부터 소비자보다는 농업인 위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수매, 산지폐기, 쿼터제도 도입 등 여러 제도와 기법을 통해 농산물의 가격을 지지하고 농업인의 소득보장을 부처의 핵심가치로 내걸고 사업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농식품의 정책서비스는 서서히 농업인에서 소비자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정권들어 부처 이름에 식품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나서는 이동 속도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각종 정부 인증심사에 소비자단체가 포함되고 미산쇠고기의 갑작스러운 검역위생조건의 완화, 농업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개방확대 등 과거에는 농민의 눈치를 보느라 과감한 정책을 펼치지 못했던 정부가 농민보다는 소비자단체의 눈치를 더 보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수입돼지고기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 계획, 지난해 배추값이 폭락하고 있는 가운데도 수입을 계획하는 등의 물가와 관련된 정부의 선제적 대응은 소수의 농민보다는 다수를 차지하는 소비자에게 더 큰 편익을 제공하기 위한 계획들이었다.
이에 반해 지난해 하반기 가을배추 폭락 사태에도 정부는 배추값 지지를 위해 강력한 산지폐기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색내는 수준에서 사업을 마무리지으며 농가들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지 않았다.
2011년 연초 농업전망부터 소 값 하락이 전망됐고 선제적 수급조절의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주저했고 올해 초 한우협회와 낙농육우협회 등의 강한 반발에 소 뒷걸음 치듯 뒤늦은 대책을 쏟아 낸 바 있다.
즉 일련의 상황들을 살펴볼 때 농식품부를 비롯한 정부의 정책은 탈농업 농민, 친소비자로 중심축이 한참 이동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월 22일 농협안성팜랜드에서 개최된 농식품부와 소비자단체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소비자단체들이 농식품부가 소비자는 등한시하고 농업인 위주로만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오정규 2차관은 “지금까지 농업인이 농식품부 최대의 정책고객이었지만 앞으로는 소비자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농식품부의 정책 기조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 줘야 농민들의 저항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즉, 현재는 정부가 과거의 탄성으로 인해 농업인 위주로 가고 있지만 소비자단체들이 어떻게 역할을 하냐에 따라 소비자 위주의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발언으로 농식품부의 정책 서비스 변화 방향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농업인을 위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행해지는 소비자 위주의 농정은 농민의 희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당장 값싼 삼겹살이 들어와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에 소비할 수 있어 좋겠지만 그 사이 양돈농가들은 돈가하락에 생산비도 못건져 도산하는 농가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농식품부는 농민과 소비자의 이익이 상충되는 사업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문제는 농업인의 수가 계속 줄고 있어 정부가 농민보다는 소비자의 편을 드는 상황이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소비자 위주의 농정을 펼치기 이전에 농업인 소득보장을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농민단체들도 사안별로 단발성 대응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부에 농업인을 위한 안전장치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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