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당신의 농촌은 안녕하오"
[커버스토리] "당신의 농촌은 안녕하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7.03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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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양반 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소

젊은 사람 다 떠나고
이제 농촌은 노인네뿐이라오

진짜 농촌의 문제가 뭐 일성 싶소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

2014년 겨울. 배추 관련 취재를 위해 경상남도 남해를 찾은 기자는 바닷가 근처를 지나다 우연히 시금치를 수확하는 한 노부를 발견했다. 바닷물이 철썩거리는 해안가에 펼쳐진 시금치 밭. 그 한 가운데서 시금치를 망에 담는 광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사진 한 컷 담기 위해 노부의 의사를 타진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기자에게 그는 자신은 76세이며 10대부터 60년 이상 농사를 지어왔다고 소개했다. 농촌에 살다보니 소득이 변변찮다면서 다른 곳은 어떤지 물어왔다. 농업전문 기자가 농촌을 많이 다닐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제 이곳은 ‘노인 투성이’라며 “농민은 안녕하지 않다”고 말했다. “입에 풀칠이나 하면 그만”이라면서도 “농업에 미래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억대 부농, 미래 먹거리 산업.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농업의 모습은 휘황찬란하기만 하다. 매년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신음하는 농민 모습이 주목받긴 하지만 일회용품처럼 한철 기사 소재거리로 쓰이면 그만이다.

이제 국회 앞에서 시위하는 농민의 모습은 국민들의 눈에는 생떼 부리는 어린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십 년간 농촌을 지켜온 농민들은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고 변변한 후계조차 없다. 농촌이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앞으로 30년 안에 전국 시군 단위 3분의 1인 84곳에서 단 한명의 거주자도 없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통계 예측치를 발표했다. 소멸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은 경북 의성, 전남 고흥, 경북 군위 등으로 대부분 농사를 먹거리 수단으로 삼는 지역이다. 

농업계에서는 이제 ‘진짜 미래 농민은 누군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산업이 쪼그라들면서 농민 구조조정이 뒤따른 결과다. 시장 개방,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농민의 절반은 우리 눈에서 사라졌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정부는 국내 농업의 경쟁력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농촌에 이식했지만 성공한 정책은 손에 꼽는다. 문재인 정부도 농정의 패러다임 변화를 공언한 이후 4년이 지났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는 정책은 없다.

국내 제조업 중 1등부터 줄 세우면 농업은 늘 ‘꽁지’를 도맡는다. 국내 식량 안보라는 거창한 구호도 빛을 바랜다. 정부는 시장개방 국면에서 농업을 지렛대 삼아 협상을 벌이기도 하고 기획재정부는 농업 예산에 유독 짜게 굴기도 한다. 홀대받는 농업.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농업의 진짜 문제는 어떤 것일까.

본지는 언론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는 농업 부문에 주목한다. 농민을 추적하고 농업을 데이터로 짚어보겠다는 의미다. 다만 절망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희망도 찾아본다. 기약 없는 특집을 시작하는 이유는 2004년 만났던 노부의 한 마디다.

시금치 농사를 짓던 노부를 취재한 지 7년이 지난 2020년 7월, 당시 남해를 방문했던 기자는 당시 76세였던 제종영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82세. 아직도 농사를 짓는다는 그는 기자를 무척 반가워했다. 아직도 시금치 재배를 하고 있다는 그는 “입에 풀칠은 한다”며 “아직 건강하다”고 전해왔다. 

“이곳 농촌은 아직도 노인네뿐인데 다른 곳은 안녕하답니까. 그런 거 취재하는 게 일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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