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예능으로 푼다" 청년 농부 유튜버들의 '희희낙락'
"B급 예능으로 푼다" 청년 농부 유튜버들의 '희희낙락'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7.06 1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업 진입 장벽이 높고 세대 갈등 깊지만
흙 속의 진주처럼 재밌는 얘깃거리 한가득
톡톡 튀는 아이디어 가진 청년 농부 많아
농업 예능으로 승화···
유튜브 플랫폼 활용


유튜브 채널인 ‘농사직방’을 찍고 있는 강영수 씨는 농업도 예능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튜브 채널인 ‘농사직방’을 찍고 있는 강영수 씨는 농업도 예능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 

'빅뱅' '쌈장찍어' '아프로밧사' '드셔보라' '천지창조' '남자의자격'. 농자재 기업에서 출시한 각종 농약과 종자 이름이다. 웃기는 농약·종자 이름 콘테스트. 청년 농부 3명은 유튜브에서 연신 깔깔대고 농업을 안주 삼아 즐긴다. 심각하기만 한 농업은 사절. 그들이 만드는 디지털 세상은 다채로운 기획으로 차고 넘친다. 콘텐츠는 재밌으면 그만이다. 아이디어는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번뜩 떠오른다. 술자리가 될 수도 있고 티타임 시간도 가리지 않는다. "이거 재밌겠다", "요거해볼까"가 그들의 모토다. 농촌을 그리는 그들의 방식은 가볍지만 유튜버 3명이 주는 울림은 상당하다. 이들이 생산한 콘텐츠는 조회 수만 수만 회에 이른다. 청년 농부 3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농사직방'은 그들 스스로 'B급 농촌 예능'이라 낮춰 부르지만 농업을 알리는 데 이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농튜버(농업과 유튜버의 합성어)가 디지털 세상에서 구현하는 농업은 진지함은 쏙 빼고 해악과 위트로 가득하다.


농업 관련 콘텐츠로 유튜브 진출
예능 프로 참고하며 편집에 집중


강영수(42), 유경호(31), 서종효(34) 씨는 대구 수성구에서 ‘희망토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들이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인연이 닿아 농업에 관한 ‘썰’을 풀던 중 “이렇게 재밌는데 유튜브를 해보자”라는 단순한 호기로 시작해 이제는 명함을 내밀만 한 유튜버가 됐다.

2017년 1월 첫 방송을 시작으로 4년 차에 접어든 '농사직방'은 당시 게임이나 먹방, 뷰티, 키즈로 한정돼 있던 유튜브 시장에 농업이라는 콘텐츠로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유튜브에는 농업 관련 콘텐츠가 빈약한 탓에 농업을 예능으로 풀어낸 ‘농사직방’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으나 문제는 ‘롱런’이었다.

현장의 생생함과 독특한 콘텐츠는 기본이고 재밌어야 했다. 편집을 담당하는 유경호 씨는 "예능 프로인 신서유기를 많이 참고한다"며 "어떻게 편집하면 재미가 있을지 원본을 돌려보고 또 돌려본다"고 말했다. 1시간 30분 남짓한 촬영 시간이면 5~6시간은 편집을 위해 돌려보는 수고는 기본이라며 유 씨는 예능을 좋아하는 취미가 여기서 발휘될지는 몰랐다고 말한다.
 

자율 농기계 위에서 컵라면 '한 사발'
톡톡 터지는 웃음 포인트 찾는 게 관건


3분 남짓으로 구성되는 영상 클립에서 구독자의 시선을 끄는 건 찰나에 결정된다. 기사를 읽을 때 제목에서 끌리지 않으면 기사 본문을 읽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독학으로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공부했다는 유 씨는 웃음 포인트를 집어내는 순간을 가장 어려운 편집 과정으로 꼽았다. 동영상 프로그램의 화려한 잔기술은 없지만 시청자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기획한다는 게 유 씨의 설명이다.

"강영수 씨는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농업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어 시청자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호소력이 좋아요. 소위 '썰'을 잘 푼다고 하죠. 아저씨들이 '애재 개그'하며 동네 포장마차에서 수다 떠는 느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짧은 영상 속에도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하잖아요."

가령 자율 주행 농기계를 시연한다고 하면 시청자들에게 '혼자 다한다', '편하다'라는 설명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작동하고 있는 농기계 위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적확(的確) 해진다. 시청자는 설명을 듣지 않고도 같이 즐기면서 부지불식간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짧은 영상의 힘이다.

"대동공업의 자율 주행 농기계를 시연할 때 고민했거든요. 작동 방법만 주구장창 설명하면 재미없잖아요. ‘움직이는 농기계 위에서 컵라면 한번 말아볼까’라는 우스갯소리를 행동으로 옮긴 거죠."

자연스러운 진행과 흥미로운 설정에 기업도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대동공업은 농기계 사용설명서와 같은 영상 제작에 농사직방팀과 협업해 영상 클립을 제작하고 직원 교보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농사직방’ 유튜브 채널 캡쳐.
‘농사직방’ 유튜브 채널 캡쳐.

농업의 일상화가 농촌 청년 유입 출발점
농업 힘들다 'NO' 재밌다 'YES'

3명의 청년 농부들이 농촌 예능을 한다고 해서 농업의 어려움과 심각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농촌 현실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전국 청년 농부들과의 끈끈한 네트워크도 이들이 지속적인 콘텐츠를 발굴하는 힘이 된다. 급격한 산업화와 첨단 ICT 기술이 공존하는 지금의 농촌은 세대 간 골이 깊다. 강영수 씨는 농업 농촌에 젊은이의 유입이 없는 이유에 대해 ‘진입장벽’이 높아서라고 해석했다.

"지금의 농촌은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아버지 세대와 핸드폰을 제 몸처럼 여겼던 후계자들이 공존하고 있는 시대잖아요.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죠. 아버지 세대는 기존 농사기술을 고집하고 청년 세대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해요. 후계자뿐만 아니라 농업에 진입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에게도 문턱이 있죠. 과거에는 ‘할 일이 없으면 농사나 짓자’라는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의 농업은 전문 기술이 필요한 산업이 됐고 땅을 빌릴 수 있는 자본도 있어야 하잖아요."

강 씨는 ‘농업의 일상화’가 청년 세대가 농업에 진입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농업의 예능화로 무장한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중의 하나다. 친숙하면 관심이 생기고 재밌으면 하고 싶어진다. 그들이 농촌에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재밌어야 관심을 갖는다'이다.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 품은 철학은 제법 진지하다.

농업·농촌의 가치 알릴 것

그들은 지역 방송국에서 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도시 청년들을 불러 모은다. ‘행복을 모르는 도시 청년’과 ‘청년이 필요한 농촌 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자는 취지다. ‘청춘구 행복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집 신청을 한 결과 15명 모집 인원 중 76명이 지원해 뜨거운 경쟁률을 기록했다.

강 씨는 “도시 청년들이 농업·농촌에 관심이 많고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면서 “도시의 생활에서 벗어나 아침에 새소리를 듣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작은 노력이 젊은이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농촌에 대한 생각과 농업의 가치에 대해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