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억 원 훌쩍 넘는 농기계. 자동차처럼 왜 리뷰가 없죠"
[커버스토리] "1억 원 훌쩍 넘는 농기계. 자동차처럼 왜 리뷰가 없죠"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7.17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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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계 곳곳에서 청년들이 활약하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패기로 무장한 그들은 농업에 새로운 활력이 된다. 농업계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청년들은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다. 불편하면 고치고 어려우면 소리친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긴 농촌은 그들의 목소리만으로도 힘이 된다. 농업을 이야기하는 청년들은 새로운 콘텐츠와 철학으로 무장하고 지루한 농업은 거부한다. 농업에 새로운 주석을 붙이기도 하고 독특한 번역으로 관심을 끈다. '농업은 어렵고 힘들다'는 편견을 '신선하고 재밌다'로 해석해 도시 청년들에게 매력을 어필하기도 한다. 농축유통신문은 농업계에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청년들을 찾았다. 그들은 밝고 유쾌하지만 제법 진지했다. "고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농업에 우리 청년들이 일당백이 되어 새로운 농업을 그려 보겠다"는 청년들을 만났다. <편집자 주>


농기계 전문 유튜브 ‘파밍머신’ 운영
솔직한 제품 후기 시청자 반응 ‘후끈’
‘농기계 쇼룸’ 지향 구매 길잡이 역할
첨단 기계와의 공존···청년 역할 강조

김준연 씨가 대동공업에서 제공한 자율주행 이앙기를 영상에 담고 있는 모습.
김준연 씨가 대동공업에서 제공한 자율주행 이앙기를 영상에 담고 있는 모습.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 

"A사 제품은 농기계의 끝판왕이죠. 농기계의 벤츠라 불릴 정도니까요. 반면 고장 나면 손댈 수가 없어요. 수리는 엄두도 못 내고요. 작업기 편의 장치도 다 빠져있어요. B사 제품은 만들다 말았어요. 인간의 신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나쁜 디자인에다 가격까지 나쁘죠. C사 제품은 화가 나요. 싼 맛에 사면 모를까."

농기계 품평이 적나라하다. 불만투성이다. 솔직함을 넘어서 공격적이다. 경상북도 봉화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김준연(38) 씨는 수입과 국내산을 가리지 않고 농기계에 대해 연신 비판을 쏟아낸다. "직접 사용해보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선을 넘었나요"라며 웃는다. 농기계 작업 영상을 찍는 김 씨는 농기계 전문 유튜버다. 대학교에서 자동차학을 전공할 정도로 기계에 관심이 많아 '기계꾼'으로 불린다. 불만 많은 청년 농부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는 하나다. 농기계에 대한 솔직한 후기를 찾아볼 수 없어서다.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는 자동차 리뷰도 많고 비판 글도 꽤 있잖아요. 심지어 자동차 브랜드 ‘팬덤’까지 생겨날 정도로요. 농기계는 당최 찾아볼 수가 없는 거예요. 기껏해야 대리점을 찾아가 장점만 나열돼 있는 팸플릿 보는 정도랄까. 회사별로 동급 기종을 비교하기도 힘들고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살 수 있는 가격도 아니잖아요. 트랙터는 1억 원이 훌쩍 넘기도 하는데. 농기계야말로 리뷰가 필요하다 생각했죠."

김 씨는 차고 넘치는 불만을 유튜브에 구현했다. 솔직한 심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렇다고 비판만 하지 않는다. 좋은 제품은 호평 일색이다. 2018년 ‘파밍머신’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농기계를 다루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다만 농기계사용설명서는 아니다. 농민이 농기계를 사용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는다. 자동차 쇼룸처럼 일종의 ‘농기계 쇼룸’을 지향한다.

청년 농부의 솔직한 후기에 시청자 반응은 뜨겁다. 정보가 없어 농기계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나름 ‘고급 정보’가 된다. 소비자들이 제품 설명서를 믿기보다 후기를 보고 구매 결정을 하듯 실제로 유튜브를 보고 농기계를 구매했다는 농민이 나올 정도다.

“구독자는 약 2,400명 정도지만 콘텐츠 소비는 꽤 되는 편이에요.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한 클립도 있고요. 농업계에서 유튜브로 활약하는 농민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브이로그(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영상 콘텐츠) 형식이더라고요. 농업계도 많은 분야에서 전문 유튜버들이 배출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농업계 유튜브 시장은 아직까지 걸음마 수준이다. 취미로 하는 유튜버가 대다수인 데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수익을 내는 이는 드물다. 김 씨는 청년 농부들이 유튜브 시장에 진출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날을 손꼽는다. 농업계 유튜브는 관련 콘텐츠로 묶여 시청자에게 다양한 농업 관련 콘텐츠 소비를 장려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시장이 레드오션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농업계 영상 콘텐츠는 아직까지 블루오션으로 유튜버끼리 ‘윈윈’할 수 있는 구조다.
 

김 씨가 유튜브를 시작할 때만 해도 “헛짓거리 한다”는 핀잔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봉화에서는 최초로 농약 살포를 드론으로 할 때도 “장난감으로 농사가 되나”라는 동네 어르신의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첨단 기계가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병해충 방제에도 톡톡한 역할을 하자 김 씨의 활동을 응원하는 농민들도 늘고 있다. 

“요즘에는 자신이 보유한 농기계를 유튜브로 찍어달라는 농민들도 있어요. 주로 불만사항이긴 한데 어르신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지죠. 나이 지긋한 농민들도 장난감으로 생각했던 기계가 농사일도 척척해내는 것을 보고 감탄하시거든요. 청년들의 역할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첨단 기계와의 자연스러운 공존을 이뤄내는 일 아닐까요.”

농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농기계 회사에 대한 아쉬운 점도 많다. 농기계 테스트를 안정된 조건에서만 하는 통에 현장에서는 늘 말썽이 나기 때문이다. 들쭉날쭉한 농업 환경에서 다루는 농기계는 척박한 환경에서 테스트를 거쳐 한다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신제품에 대한 갈망도 있다. 주위에 오래된 농기계는 넘쳐나지만 쉽게 신제품을 접하기는 어려워서다. 간혹 지역 대리점에서 신제품을 대여해 주거나 농기계 구매자를 수소문해 영상에 담는 식이다. 최근 대동공업에서는 김 씨의 유튜브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보다 비싼 농기계에 대한 날것의 정보를 알려주는데 만족해요. 일본 제품을 리뷰하면 가끔 댓글에 욕도 달리거든요. 톡 까놓고 제품만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농민들에게 길잡이 역할이 꿈입니다. 책임감도 있어요. 제 유튜브를 보고 제품을 샀다는 농민도 있거든요. 진중하고 객관적인 농기계 리뷰어. 그게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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