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급과 연봉 협상하는 농민에게 시장논리가 웬 말
[사설] 수급과 연봉 협상하는 농민에게 시장논리가 웬 말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7.17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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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쌀 자동시장격리제를 도입하자 일각에서는 퍼주기 아니냐는 보도와 수급조절에 미흡하다는 여론이 공존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1월 개정된 ‘양곡관리법’ 시행(오는 30일)에 맞춰 쌀 수급안정장치 운영을 위한 세부 기준안을 마련하면서 농업계와 비농업계의 온도차가 제법 크다.

정부가 마련한 세부안에는 '수요를 초과하는 생산량(초과 생산량)'이 생산량의 3%가 넘어설 경우와 초과 생산량이 3% 미만이더라도 단경기(7~9월) 또는 수확기(10~12월) 가격이 평년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 초과 생산량의 범위에서 미곡을 매입할 수 있게 했다. 즉, 생산량이 많거나 가격이 떨어졌을 때 수요보다 초과 생산된 쌀을 자동으로 정부에서 매입할 수 있도록 수급안정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경제지에서는 퍼주기 아니냐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금도 쌀 생산이 과잉인데 정부가 쌀값 하락을 막아 소비자 이익을 침해한다는 논리다. 해당 보도는 농업과 식량안보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소비자 vs 농민' 대결구도 프레임이다. 소비자가 볼 수 있는 이익을 마치 농민이 보는 양 호도하고 정부 예산을 펑펑 사용하는 것처럼 보도하는 악질적인 행태다. 

수급안정장치는 농민의 생계와 직결돼 있는 중요한 농업 정책이다. 날씨가 좋으면 월급이 많고 날씨가 흐리면 봉급이 적어지는 근로자 있다는 상황을 가정하면 근로자의 안정된 생계를 위해 회사에서 적립금을 쌓아 흐린 날이 반복될 때 상여금을 주는 일종의 월급 안정장치 효과를 내는 것과 비슷하다. 

대다수의 농민에게 한해 농사는 연봉과 같아 매년 수급과 연봉 협상을 벌이는 처지다. 간혹 연봉 협상에서 소위 ‘대박’을 치는 경우도 나오긴 하지만 타 산업에 비해 대다수 농민의 연봉은 짜디짜다. 젊은 청년들이 농업에 줄을 서지 않는 이유도 결국 자본이 몰리지 않아서다.

정부의 수급 조절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가 한우다. 한우 가격이 폭락한 2013~2015년도에는 불과 3년 만에 5만 7천 농가가 한우 사육의 길을 접고 간판을 바꿔 달았다. 당시 정부가 한우 번식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해 설계한 ‘송아지생산안정제’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잘못된 조항으로 인해 작동하지 않으면서 15만 한우 농가 중 절반 가까이 폐업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때문에 수급조절 안정장치는 농축산물 급등락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농민에게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엄격한 시장논리를 적용해도 지금의 쌀값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지난 40년 통계를 살펴보면 커피 한잔 가격이 약 21배가 상승한 반면 쌀값(4Kg 환산 기준)은 같은 기간 3,000원에서 9,500원으로 고작 3.2배 오른 수준이다. 


식당에서 밥 한 공기 가격으로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는 없다. 소비자들이 싼값에 밥 한 공기 먹을 수 있는 국내 먹거리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하다. 정부의 수급 조절에 대한 노력과 농민의 희생이 뒤따른 결과다. 

코로나로 인해 비행기 길이 막히고, 앞으로도 국가 간 장벽이 높아질 거라는 예상에 힘이 실리면서 전 세계가 식량에 대한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견고하지 못한 농업 정책에 대한 비판은 훌륭한 농정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지만 ‘퍼주기’와 같은 맹목적인 정부 비판의 부메랑은 결국 우리 국민이 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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