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뒤통수치려다 딱 걸린 '농협손해보험'
농민 뒤통수치려다 딱 걸린 '농협손해보험'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7.31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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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재해보험 가입했지만 보상 요원
쥐꼬리 보상금 안 주려고 농민과 밀당
비전문가 손해사정인 판단에 '좌지우지'
피해농 "독소약관 삭제·개정 필요" 호소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양병운 연내골농장 대표는 저온으로 인한 이상 기후로 사과나무 300주 이상이 괴사해 큰 피해를 입었다. 농협손해보험에서 운용하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보상 범위를 조율하는 손해사정인의 고무줄 판단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양병운 연내골농장 대표는 저온으로 인한 이상 기후로 사과나무 300주 이상이 괴사해 큰 피해를 입었다. 농협손해보험에서 운용하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보상 범위를 조율하는 손해사정인의 고무줄 판단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 

농작물재해보험의 엉성한 보상관리체계에 농심이 멍들고 있다. 비전문가인 손해사정인이 보험사 입맛에 맞게 보상범위를 판단하면서 농민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해당 보험을 운용하는 농협손해보험(농협손보)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이 폭주하면서 농작물재해보험 운용을 정부가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15년 가까이 사과 농사를 지어온 양병운(51·연내골농장 대표) 씨는 기온 이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올해 3~4월 경 저온으로 인한 동해 피해로 사과나무 750주 중 절반가량이 말라죽은 것이다.

나무 밑동 표피가 갈라지고 썩어 들어가면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사과나무는 앙상한 가시만 남아 초토화됐다. 초록색으로 수놓아야 할 풍성한 사과밭이 마치 겨울을 맞은 듯 가시밭으로 뒤덮이자 15년간 농사를 지으며 처음 입은 피해에 양 씨는 눈물을 떨궈야 했다.
 

동해 피해로 한꺼번에 괴사한 사과나무의 모습.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동해 피해로 한꺼번에 괴사한 사과나무의 모습.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한 가닥 희망은 농작물재해보험이었다. 해당 보험에 가입한 양 씨는 "보상을 받더라도 피해 입은 농장의 완전한 복구에는 못 미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 씨의 기대는 헛된 희망에 불과했다. 피해를 호소하고도 4개월 후 나타난 손해사정인은 동해가 아닌 부란병(腐爛病, 사과나무 병충해) 진단을 내린 것이다.

양 씨에게 부란병 진단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양 씨가 가입한 '종합위험 나무손해보장' 보험의 특별약관 '보상하지 않는 손해'와 관련된 제4조 4항에 '병충해 등 간접손해에 의해 생긴 나무 손해'라는 독소 조항이 담겨서다. 즉, 병해충으로 인한 피해가 겹칠 경우 보상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양 씨는 해당 판단을 내린 손해사정인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객관적인 피해 입증을 위해 양 씨가 동해 피해 후 지속적으로 전문가들의 진단을 받아온 터라 가능한 일이었다. 지역원예농협은 물론 농업기술센터 과수연구팀장으로부터 동해 피해 사실 확인서까지 받아든 양 씨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당 손해사정인은 "참고사항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양병운 씨가 받은 동해 피해 사실 확인서 일부.
양병운 씨가 받은 동해 피해 사실 확인서 일부.

손해사정인이 비전문가라고 판단한 양 씨는 해당 보험을 판매한 농협에 문제를 제기했고 농협에서는 또 다른 손해사정인을 파견했지만 돌아온 답은 가관이었다. 농장을 둘러본 손해사정인은 "동해 피해도 있지만 부란병이 40~50% 정도 되니 조율을 해보자"고 말한 것이다. 양 씨는 전문가들의 동해 피해 사실 확인서는 물론 기상청 온도 자료까지 수집해 동해가 맞다고 반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양 씨는 다시 문제를 제기했고 본지 취재가 시작된 후 파견된 손해사정인은 "동해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무줄처럼 바뀌는 손해사정인의 판단에 양 씨는 "비전문가인 손해사정인의 판단에 따라 보상 범위가 바뀌는 농작물재해보험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면서 "보상금을 받는다고 해도 다시 농장을 재건하는 데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매년 3천만 원의 피해가 예상된다. 그나마 정부에서 권장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농작물재해보험이 유명무실해지는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보상금을 주지 않으려고 농민과 밀당하는 농협손보에 큰 실망을 했다"며 "농민들이 무심코 넘겨볼 수 있는 독소 약관은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씨처럼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경우 간혹 피해 보상에 길이 열리기도 하지만 초보 농사꾼의 경우 문제 제기 자체가 힘들다는 게 현장 반응이다. 같은 지역에서 3년째 사과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변근형(41) 씨도 같은 시기 530주의 사과나무 중 200주 이상의 나무가 괴사하는 피해를 입고 농작물재해보험에 구제를 요청했지만 같은 이유로 "동해 피해가 아니라 부란병이니 빨리 뽑아내라"는 답변이 손해사정인의 입에서 나왔다.

변 씨는 "저 같은 초보 농사꾼은 부란병이라는 병명조차 몰랐다"면서 "주위의 도움이 없었다면 문제 제기나 보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 씨는 현재 농협손보 측에 또 다른 손해사정인을 요청해놓은 상태다.

농협손보의 행태에 일각에서는 농작물재해보험의 공적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농작물재해보험에 정부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농협손보가 아닌 정부에서 관리해야 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농민은 "농협손보가 농민들의 뒤통수를 치며 이익을 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면서 "올해처럼 냉해 피해가 극심할 경우 손해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도 이런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농작물재해보험 개선 위원으로 활동했던 문성호 농업마이스터대학 주임교수도 "전국의 농민들이 농작물재해보험 문제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면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 입장에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조항들은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뚜렷한 법적인 근거와 올바른 평가 기준 없이 비전문가로 구성된 손해사정인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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