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민 눈높이에 맞는 농작물재해보험이 필요하다
[사설] 농민 눈높이에 맞는 농작물재해보험이 필요하다
  • 농축유통신문
  • 승인 2020.07.3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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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상 기온으로 전국의 농촌이 냉해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가 독려한 농작물재해보험이 힘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보험사 입맛에 맞는 보상 규정으로 제때 보상받지 못하는 농민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보험 계약서에 숨어 있는 독소 약관은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있는 대표적인 예다. 재해를 입으면 보상해 준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에 보험사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약관에 그들의 속내를 집어넣는다. ‘냉해가 발생해도 병해충이 겹치면 보상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보험사의 규정은 칼같이 명확한데 현실은 두루뭉술해서 발생하는 일이다.

냉해가 발생하면 작물은 약해지고 병해충이 침투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실에서는 확실한 냉해 피해인지 냉해 피해로 병해충이 발생했는지 아리송해진다. 손해사정인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결국 보험사 이익에 맞게 보상 범위를 산정한다. 손해사정사가 두루뭉술한 현실을 칼 같은 규정에 쑤셔 넣는 셈이다.

비전문가 손해사정인의 경우는 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농업에 대한 식견이 없어 제멋대로 평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보험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보험에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보험의 경우 난폭운전을 하는 운전자만 보험에 드는 경우다. 성실한 운전자가 존재해야 사고에 대한 리스크를 공동 부담할 수 있지만 사고 낼 위험이 큰 운전자만 넘쳐날 경우 보험의 생명력이 짧아진다. 보험회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력을 따진다. 사고를 내면 보험료가 올라가는 방식으로 대처한다. 이 방식은 철저히 운전자의 과실이 반영된 경우다.

논리적이긴 하나 타산업의 보험을 농업보험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농민마다 농사 스킬이 달라 수확량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지만 누구도 보험금에 눈이 멀어 농사를 망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을 경우 1년간 손가락을 빠는 경우가 허다하고 과수의 경우 수년간 농장 재건에 보상금의 몇 배 이상 자본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기상재해로 인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때문에 농업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민간 보험사는 많지 않다. 정부가 국민 세금을 투입해 농업보험을 지원하는 까닭이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농어업재해보험법에 따라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농협손해보험이 독점하고 있다. 농민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잘 돌보기 위해 농업협동조합에 일임한 셈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농협손보 배만 불려주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진다. 비전문가 손해사정인, 갈수록 낮아지는 재해보상률, 농민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규정 등은 재해보험의 취지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올해 2분기 농협손보의 당기순이익이 2배 이상 증가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재해보험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농민들이 농협손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그동안 많은 언론에서 농작물재해보험과 관련된 부정적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지금이라도 현장에서 요구하는 농민 목소리를 반영해 농작물재해보험을 대대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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