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장의 시선] 쌀값 회복기 정부가 찬물 끼얹으면 안 돼
[이 부장의 시선] 쌀값 회복기 정부가 찬물 끼얹으면 안 돼
  • 이은용 기자
  • 승인 2020.09.04 1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은용 취재부장

[농축유통신문 이은용 기자] 

올해는 자연재해 여파로 모든 농수산물 작황이 좋지 못해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긴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올해 쌀 작황은 역대 급으로 안 좋은 상황이라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실제로 조생종 수확 현장을 둘러보면 이 같이 안 좋은 상황을 인식할 수 있다. 벼들이 힘없이 쓰러져 있고, 각종 병해충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다.

지난해에도 태풍의 영향으로 작황이 안 좋아 생산량이 374만 4,450톤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황이 더 안 좋다는 것이다.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쌀 적정 수요량이 377∼380만 톤 정도이니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쌀이 부족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여기에 그동안 쌀 재고량이 많아 정부가 쌀 생산조정제 등을 실시했는데, 현재는 정부와 농협, 민간의 쌀 재고량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지난달 20일 기준 농협 RPC 등 산지 재고량은 작년보다 6만 톤 적은 16만 톤 수준인 것으로 나왔으며, 정부 재고량도 가공용 쌀을 제외하면 FAO 기준(80만 톤)보다 적은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산지 쌀값은 80kg당 19만 원 대를 유지하며 강보합세를 보이고 있으며, 수확기(10∼12월)까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가소득에서 쌀이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크다. 쌀 소득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농가소득도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18년도에는 쌀값이 좋아 역대 최고인 4,207만 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쌀값이 소폭 떨어지면서 농가소득도 4,118만 원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쌀값이 좋으면 외부 압박(물가상승 등)이 들어와 정부가 재고를 풀어 쌀값을 조정하려는 심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미 2010년과 2017년 두 차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쌀값 상승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특히 2010년에는 정부가 재고를 풀면서 쌀 가격이 폭락(13만 원대)한 경우도 발생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을 수립할 때 가격 상승 시 매입한 쌀을 시장에 푸는 기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 기준을 보면 10일마다 발표되는 쌀 평균 가격이 3차례 연속 1% 넘게 상승할 경우에는 매입한 쌀을 의무적으로 방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정부가 명목상 시장에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쌀값을 조정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재고를 풀어 쌀값을 잡겠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쌀 가격은 약세를 면치 못하다가 2018년부터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 일부에서 쌀값 상승이 물가상승의 주범처럼 몰아가는 경향이 나타나 정부가 이에 굴복해 인위적으로 쌀값을 내리려는 행태를 보여 왔던 게 사실이다.

지난 40년 통계를 보면 커피 한잔 가격이 약 21배가 상승한 반면 쌀값(4Kg 환산 기준)은 같은 기간 3,000원에서 9,500원으로 고작 3.2배 올랐다.

이처럼 올해는 농민들이 자연재해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농민들은 모처럼 쌀값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현장과 괴리되는 기준을 적용해 인위적으로 쌀값 내리기에 나선다면 농민들의 분노와 좌절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정부가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을 수 있는 행태를 보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