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급조절 미명 하에 농산물 이미지 먹칠하는 농식품부
[사설] 수급조절 미명 하에 농산물 이미지 먹칠하는 농식품부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9.13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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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계속된 폭우로 각종 농산물 수급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정부가 공급이 부족한 농산물에 한해 정부 비축물량을 시장에 방출한다고 밝혔다.

농축산물 수급은 국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탓에 언론에서도 민감하게 구는 항목 중 하나다. 언론은 가격이 낮을 때보다 높을 때 정부 비판 수위를 높이는데 이를 의식한 정부는 유독 가격이 올라갈 때 가격 안정을 명목으로 발 빠르게 대처한다. 심지어 국민 먹거리 공급 안정을 핑계로 수입까지 늘리며 물가를 잡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농민 입장에서는 정부의 대처가 못마땅하다. 가뜩이나 하향 평준화된 농축산물 가격으로 인해 소득이 변변찮은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주머니를 불릴 기회를 정부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모양새라 더욱 그렇다. 총 농업 소득 중 순수 농사로 돈을 버는 비중이 24% 남짓인 통계를 보면 농산물 가격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수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정부가 시장에 내놓는 정부 비축 농산물의 품질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시장에는 새까맣게 썩은 배추, 썩어 문드러진 무가 정부 비축 농산물이랍시고 반입된다. 상태가 좋지 않은 몇몇 품목이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에는 의도치 않은 속박이가 발생할 수 있다.

저품질의 농산물이 시장에 반입되면 직접적으로 농민들의 소득과 직결된다. 도매시장에 풀리는 정부 비축물량은 경매 가격에 반영돼 가격을 끌어내리는 역할하기 때문이다. 저품위 농산물은 가격 하락의 신호를 보내 유통의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낮은 기준 가격은 유통인과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해 가격 협상 동안 더욱 가격을 끌어내리는 연쇄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정부가 수급에 개입할 때마다 유통인들이 고개를 젓는 이유다.

이뿐만 아니다. 속박이처럼 숨어있는 저질 농산물은 소비자에게 국내산 농산물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 국내산 농산물이라는 브랜드를 믿고 제값 주고 주머니를 연 소비자를 우롱하는 일이다. 

유통인들은 살아있는 생물을 유통한다는 말을 밥 먹 듯한다. 농산물 상태에 따라 온도, 습도, 저장 기간, 포장상태, 운반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소비자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최적의 상태를 유지시켜야 하기 때문에 농산물을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룬다는 뜻이다. 

그만큼 농산물 유통은 꼼꼼하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정부 비축 물량의 품질 관리와 유통 시스템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수급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수급조절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기도 한다. 적은 물량, 쥐꼬리만한 예산으로는 수급조절의 한계가 존재하며, 그 영향도 미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물량이라도 품질 관리조차 되지 않는 비축 시스템이라면 예산이 늘어도 무용지물이다. 시장에 썩은 배추가 넘쳐나는데도 이를 관리하는 농식품부는 오히려 그 존재를 물어올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비축하는 농산물에 대한 관리와 유통 시스템을 꼼꼼히 따져보고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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