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의 고령 일자리 발굴 프로젝트] “청년! 저리 비켜”···농촌 일자리 꿰차는 ‘베이비부머’
[농식품부의 고령 일자리 발굴 프로젝트] “청년! 저리 비켜”···농촌 일자리 꿰차는 ‘베이비부머’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10.07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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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인 강원모 씨가 제초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65세인 강원모 씨가 제초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1958년생 ‘개띠’로 대표되는 ‘낀 세대’ 베이비부머(‘55~’63년생)는 약 711만 명에 이른다.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그들은 도시에서 빈곤층으로 밀려나고 가난한 노동 공간에 숨어 있다. 이들은 ‘노인 빈곤’으로 간혹 드러나지만 청년들조차 적응하지 못하는 일자리 시장에서 대다수는 이격 돼 쉼터나 공원 등 궁색한 음지를 전전한다. 거대한 산업화 물결을 거슬러 온 베이비부머들은 예전과 같이 노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다만 사회는 그들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도시의 일자리는 그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하지만 농촌에서의 대우는 매우 다르다. 최근 60대 귀농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농촌이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 인력시장 레이더망에 좀처럼 잡히지는 않지만 지금의 몇몇 베이비붐 세대는 농촌에서 번듯한 경제활동인구로 암약하고 있다. 농촌에서 그들은 청년 부농 부럽지 않은 소득을 거두기도 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농업의 부가가치를 올리기도 한다. <편집자 주>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 

강원도 춘천에서 호두 묘목을 키우고 있는 강원모(65) 예인호두농원 대표는 8년 전 귀농한 농사꾼이다.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농촌에 발을 들인 이유는 중국의 한 지역에서 만난 호두나무 묘목 덕택이다.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호두나무에서 가능성을 본 강 씨는 국내로 돌아와 강원도 산골에 적합한 호두나무를 직접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묘목 생산을 한다고 해서 묘목만 파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짓는 일은 각 지역에 따라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 강 씨는 전국을 돌며 묘목 애프터서비스(A/S)에도 나선다. 주로 초보 농사꾼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 직접 찾아가 컨설팅 하는 식이다. 그는 “오히려 젊었을 때라면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인생 2막을 산에서 보내다 보니 하루가 짧다”고 말한다.
 

올해 67세인 이성호 씨가 임산물을 수확하는 모습.
올해 67세인 이성호 씨가 임산물을 수확하는 모습.

경상북도 문경에서 산양삼을 재배하고 있는 이성호(67) '자연에 맡기는 삶' 대표도 귀농 14년 차 베테랑 농부다. 직업군인을 천직으로 여기다가 농사에 매료돼 무턱대고 농업에 둥지를 튼 이 씨는 농촌에서는 젊은이로 통한다. 이순(耳順)을 뜻하는 60세를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그가 ‘아이디어 뱅크’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농업에서 찾고 있어서다.

젊은이들이 보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는 이 대표는 아파트에서도 키울 수 있는 ‘새싹삼’을 만들어 불티나게 팔아치우기도 하고 산에서 나는 산나물을 찌개나 육수로 우려낼 수 있도록 ‘산채수’를 개발, ‘포레스트힐’이라는 근사한 명칭을 붙여 특허까지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직접 겪고 부딪힌 농촌에서의 경험담을 나누기 위해 귀농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젊은이를 능가하는 방대한 활동량을 자랑하며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찾는다. 이 대표는 “귀농 강의를 할 때면 귀를 쫑긋 세우는 이들은 젊은이가 아닌 60대”라면서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는 도시에서의 일자리 부족을 농촌에서 찾는다”고 귀띔한다.
 

최근 귀농한 베이비붐 세대 사례 (자료제공=농식품부 농업정책과)
최근 귀농한 베이비붐 세대 사례 (자료제공=농식품부 농업정책과)

이 대표의 말처럼 고령층을 중심으로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귀농귀촌 조사 결과 10가구 중 3가구가 60대 귀농가구로 전년보다 2% 포인트 증가했다. 귀농세대 추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도시보다 생활비는 적게 들고 일자리 기회는 상대적으로 많은 농촌의 특성이 이들 베이비부머의 구미를 당기는 귀농 결심의 이유로 거론된다.

정부에서도 이들을 겨냥한 귀농·귀촌 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시 구직자를 대상으로 ‘농업 일자리 연계 단기 귀농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하고, 올해 6월에는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해 농업·농촌 일자리 정보제공과 귀농교육 통합신청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나 홀로 농부를 예방하는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정책도 고령 일자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사례로 꼽힌다. 능력이 출중해도 농촌에서 농민은 홀로 버텨내기 힘든 탓에 농민들의 연대와 협력은 농업 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꼽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령농이라면 농촌 공동체의 연대가 절실하다. 

충북 제천의 농촌공동체연구소는 고령 여성농업인의 농산물 판로 개척과 할머니텃밭 및 전통시장 내 판매부스 운영을 주도하면서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2011년 서울지역 교사가 제천의 덕산면으로 귀농해 농촌공동체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물꼬를 텄다.

전북 완주의 사회적경제네트워크에서는 발달장애아동과 마을 고령농이 함께 방울토마토와 수박 등을 재배하기도 하고 전북 임실에 위치한 선거웰빙푸드 영농조합법인에서는 마을 노인을 대상으로 야생화, 강아지풀 등을 채집해 보존화, 꽃차 등으로 가공하면서 노인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로컬푸드 정책도 일자리 창출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영세 소농과 고령농에게 고정 판로를 제공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면서 농촌 현장에서 고령농을 위한 정책으로 인기가 높다. 정부에서는 푸드플랜을 통해 급식지원센터, 직매장·레스토랑, 물류, 가공, 관광 등 관련 일자리 창출과 고용을 늘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농업·농촌이 고령인들의 일자리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의 ‘복지농원’에서는 농업 생산과 가공, 판매, 여가, 치료, 재활, 교육 등을 연계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로 무장해 농업의 새로운 롤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일본농림수산성에서는 복지농원 개설에 따른 제반 비용과 농업용 시설을 지원하는 형태로 고령농 일자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개념은 다소 다르지만 미국의 ‘녹색 손길 프로그램(Green Thumb Program)’도 은퇴한 고령농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은퇴한 농업인들의 경험을 활용하는 녹지관리 개념으로 출발해 지금은 고령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저소득 근로자 등의 취업을 목적으로 다양한 직업교육 및 훈련을 함께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전라남도 영광군의 ‘여민동락공동체’가 좋은 사례로 꼽힌다. 여민동락공동체는 마을기업인 ‘여민동락 할매손’을 설립, 영광 특산물인 모싯잎 송편 공장을 운영해 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일자리 제공하고 있다. 모싯잎 송편을 하루 4시간 만들면 월 10~40만 원의 쏠쏠한 소득을 올릴 수 있어 인기 만점이다. 또한 휴경지에서 노인들과 텃밭농사를 짓는 3만㎡에 이르는 마을공동농장을 운영, 마을 노인들은 송편 빚는 일 외에 떡 재료인 모싯잎이나 서리태, 고구마, 고추 등을 재배하는 영농사업단에서도 일하고 있다.

경제학자에서 사과 농부로 변신한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청년농을 육성하는 정부 정책도 좋지만 우리나라 농업 여건상 지속적으로 일선에서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활용하면 농업의 일자리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청년농 중심의 전폭적인 예산 지원보다 농촌에서 일자리 기회를 엿보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에게 맞춤형 지원정책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종수 농림축산식품부 농업정책과 일자리 담당 사무관은 “고령층을 중심으로 농촌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농업 일자리 교육과 정보 제공을 확대하고 농촌에 부족한 서비스를 공급하는 한편, 관련 일자리 창출 및 고용이 높아질 수 있도록 정부에서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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