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4천억 원 경마산업 붕괴 초읽기···축산업 전체로 ‘불똥’
3조 4천억 원 경마산업 붕괴 초읽기···축산업 전체로 ‘불똥’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11.12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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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경마 중단재정 절벽 마사회
매년 1,500억 원 내던 축발기금 출연 불가
온라인 마권 발매가 탈출구 업계 요구 봇물


지난 10월 19일 축산경마산업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와 국회에서 '온라인 마권발매'의 조속한 입법을 주장하는 피켓 릴레이 시위를 진행했다.
지난 10월 19일 축산경마산업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와 국회에서 '온라인 마권발매'의 조속한 입법을 주장하는 피켓 릴레이 시위를 진행했다.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 

존폐 위기요그냥 죽으란 얘기죠
코로나19 여파 경주마 생산 기반 위협
 
올해 10월 제주도 경주마 경매장. 경주마 82마리가 상장돼 마주의 선택을 기다리며 경매장 곳곳을 서성인다. 눈만 껌벅거리는 말 사이로 마주들이 돌아다니지만 수십 마리 말들은 끝내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날 경매장에서 낙찰된 경주마는 단 두 마리. 경주마 경매는 분기별로 열리는 데 경매가 진행되면 약 30~40%인 25마리 이상이 낙찰되지만 경매장에 때아닌 한파가 불어닥쳤다.

마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건실한 경주마들이 생산자들의 손에 이끌려 다시 농장으로 회귀한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생사를 보장할 수 없는 게 현실. 경주마 1마리 당 월 80만 원의 유지비가 소요돼 경주마 생산자들은 경매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눈물을 머금고 경주마를 도태하거나 다른 곳에 팔 수밖에 없다.

경매장에 불황이 찾아온 것은 올해 2월. 코로나19 여파가 이곳까지 불어닥쳤다. 코로나로 문을 닫은 경마산업은 마권 수입이 사라지자 경마 상금을 삭감했고 마주들은 말을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권광세 한국내륙말생산자협회장은 “경주마 생산농가들은 제가 아는 곳만 이미 3~4곳이 폐업을 했고 빚을 떠 않게 됐다”면서 “농가들에게 지금의 현실은 존폐 위기가 아닌 그냥 죽으라는 것”이라고 흐느꼈다. 이어 자신도 월 1천만 원의 빚이 쌓이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경마산업이 사행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경마 열리지 않으면 경주마 떠돌이 신세
한 마리 생산에 연간 3천만 원···빚더미 전락
 
경주마 생산농가들이 어려움에 처한 건 경마산업 특유의 시스템 때문이다. 경주마 수요는 대부분 경마를 통해 발생하는 데 경마가 중단되면 경주마는 떠돌이 신세가 된다.

경주마는 어미 말이 뱃속에 11개월을 품고, 어린 말은 태어난 후 6개월 이면 젖을 뗀다. 태어난 지 24개월, 즉 만 2세가 되면 경마장 입성 자격이 부여되는 데 이 기간만 족히 3년. 경주마 생산농가들은 경주마를 경마장에 입성시키기 위해 자식처럼 애지중지 돌본다. 한 마리의 번듯한 경주마를 생산하기까지 드는 비용은 연간 3천만 원.

농가 당 적게는 3~4마리 많게는 40마리까지 보유하고 있어 전문적인 경주마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은 사료비, 관리비, 훈련비 등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전국에서 사육·운용 중인 경주마는 약 8,000두. 현재 이들의 사육 기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게 관련업계의 전언이다.

김창만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장은 “경주마는 일반 산업동물을 키우는 것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면서 “끊임없이 훈련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유지비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농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말 중 20~30%는 능력이 떨어지는 말들로 매출의 20~30%는 이들의 교체 비용으로 들어간다”면서 “수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경주마 생산 특성상 현재 농가당 약 2억 원 이상의 매출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마산업 붕괴되면 재건에만 수십 년
관련 종사자 2만 3천여 명 실직 위기

 
전문가들은 경마산업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지금의 경주마 산업은 그야말로 전쟁터”라면서 “한번 경주마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 다시 재건하는 데는 수십 배의 비용이 투입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륜이나 경정과 같은 산업은 사람이 주체가 되지만 경마는 말과 사람이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하는 산업인 탓에 경마가 재개와 폐쇄를 반복하다 보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마산업 붕괴 위기로 관련 종사자들은 일자리까지 위협받고 있어 생존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경마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력은 어림잡아 2만 3,000여 명으로 경주마 생산자, 마주, 조교사, 기수, 조련사, 경마정보사업자, 유통업자, 매점·식당 운영자, 전문지 판매소 운영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현재 문을 닫는 목장과 승마장이 줄을 잇고 있어 정부의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관련업계의 입장이다.

김형석 축산경마산업비상대책위원회 간사는 “말산업은 1·2·3·4차 산업이 융복합 되어야 완성되는 6차 산업으로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 특성이 있다”면서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여파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간다"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경마 진행에 차질이 생기자 지금 대부분의 축산경마산업 관련 종사자들은 실직과 폐업, 파산으로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 전례 없는 대공황 상태”라고 덧붙였다.

또한 경마를 운용하고 있는 마사회의 경영악화로 국내 체육계의 취약 종목 지원도 끊길 위기에 처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사회 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운영하던 유도단과 탁구단 등 취약 종목 지원도 끊겨 올림픽 꿈나무들의 소중한 꿈들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위기”라고 말했다.
 
마사회 매년 1500억 원 축발 기금 출연
경영악화로 3~5년간 납부 불가 전망
 
더 큰 문제는 경마산업 위기가 축산업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다. 경마를 운영하는 주체인 한국마사회는 매년 축산발전기금(축발기금)을 출연하는 데 그 역할이 절대적이다. 마사회는 매년 당기순이익의 70%를 축발기금으로 출연한다. 지난해까지 축발기금 조성액은 9.8조 원. 지난해까지 마사회는 이 기금의 31%인 3조 원을 납부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매년 조성되는 이자수입 등 이전 수입의 재원도 마사회가 과거부터 납부한 축발기금을 모태로 하고 있어 축발기금 조성에 있어서 마사회의 역할은 절대적”이라면서 “축발기금은 명칭 그대로 축산업 발전에 사용되는 소중한 재원”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축발기금 전입 현황을 살펴보면 한미FTA 지원금 등 정부 출연 한시적 특별전입금을 제외하면 마사회 납부금의 축발기금 충당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46%를 차지한다. 마사회는 연평균 1,500억 원의 축발기금을 납부하고 있다.
 

마사회 연도별 축발기금 납부현황(단위 : 억 원).
마사회 연도별 축발기금 납부현황(단위 : 억 원).

하지만 마사회는 내년 이후를 축산발전 기금 출연의 데드라인으로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2020~2024년 재정 관련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올해 마사회 순손실이 3,448억 3,700만 원으로 추정됨에 따라, ‘21년도 한국마사회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전환, 축산발전기금 납부가 불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마사회 내부에서도 사업 운영을 위해 운영자금을 차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코로나19 장기화 등 내·외부 경영 환경 고려 시 향후 최소 3∼5년간 축산발전기금 기금 출연 불가 전망이 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발기금, 축산업 발전 위한 캐시카우
축산단체 온라인 마권발매 법제화 힘 실어
 
문제는 축발기금 재원이 축산업 발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축발기금 중 매년 1조 원 이상이 축산업에 수혈되면서 축산업이 해결해 나가기 힘든 숙원사업이나 예산 때문에 진행하지 못하는 사업의 실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올해 축발기금에서 축산업 발전에 투입되는 예산은 1조 1,235억 원 규모로 △축산농가 사료 구매이자 지원에 3,293억 원 △가축분뇨 자원화 시설 및 장비 지원에 1,012억 원 △조사료 생산 기반 확충에 836억 원 △한우 생산안정ㆍ축산물 수급 안정, 원유 수급조절, 학교우유급식 등에 873억 원 △가축방역에 584억 원을 사용 중이다. 특히 축산물 수급 불균형으로 매년 고통받고 있는 축산농가 입장에서는 그나마 수급 조절의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축발기금은 단비 같은 존재다.

때문에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경마산업 위기 극복에 힘을 실었다. 지난 4일 축단협은 ‘한계에 몰린 축산경마산업 종사자의 생존권 보장하라’는 성명서를 내고 경마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온라인 마권발매 법제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축단협은 성명서에서 “축산농가와 경마산업 종사자들은 온라인 마권발매 법제화만이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경마산업과 축산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호소해왔다”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권이 힘을 모아 코로나19시대 경제 살리기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온라인 마권 발매제를 즉각 시행해 주실 것을 전국의 축산농가들의 뜻을 모아 다시 한번 절절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경마사업 붕괴 온라인 마권 발매로 타개
안정장치 마련 시 불법 경마 양성화도 가능
 
온라인 마권 발매는 경마산업이 회생하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미 경마업계는 최근 몇 년간 매출액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불법 경마 수요 흡수를 위해 2010년 이후 온라인 발매 허용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이 같은 심각성을 인지하고 김승남, 윤재갑, 정운천 의원 등이 온라인 마권발매 관련 3건의 한국마사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 계류 중이다. 온라인 마권 발매가 사행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민 여론을 의식한 탓이다.

하지만 현재 스포츠토토·로또 등은 이미 온라인이 허용돼 코로나19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 정상 운영되고 있다. 전 세계 120여 경마 시행국 중 대부분이 온라인 마권 발매를 시행하면서 자국 내 경마를 비롯한 축산업과 말산업의 기반을 유지 중이다.

축산경마산업비상대책위원회는 “온라인 마권 발매는 사행성 논란도 있지만, 비대면 시대의 세계적인 트렌드로서, 역기능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이 가능하고, 불법 경마 수요를 합법산업으로의 이전이 기대된다”면서 “그동안 합법적 경마사업을 통한 이익금의 70%가 국내 축산업과 축산 농가를 지원 기금으로 사용되는 현실 감안, 경마산업에 대한 합리적이고 형평성 있는 육성과 규제 정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 규모 3조 4천억 원, 고용 2만 3천 명의 축산경마산업의 붕괴를 방치하지 말고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마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길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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