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편집자칼럼] “누가 읽을까 누구에게 읽힐까” 농업 저널리즘의 고민
[신년특집-편집자칼럼] “누가 읽을까 누구에게 읽힐까” 농업 저널리즘의 고민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01.11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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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식 보도로 '자승자박' 
종이신문 몰락에 대비 필요 
포털에만 매몰돼 질적 저하 
농업 쉬운 언어로 번역하는 
전문성 갖춘 기자 양성해야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편집국장] 

“내 편이면 참기자, 네 편이면 기레기”라는 말은 언론사에 몸담으면서 수도 없이 듣는 말이다. 언론이 가진 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한데 이 말 기저에는 언론계의 신뢰도 추락이 자리한다. 언론사가 주창했던 '공정'과 '객관'이라는 키워드가 사라지고 '정파'와 '왜곡'이 그 자리를 꿰차면서 불을 지폈다. 

특히 국내 언론의 신뢰도 하락은 지표로 증명된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1일 발표한 코로나 시대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6명(62%)은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치열한 보도 경쟁, 속보성 기사 전쟁을 치르는 것치고 초라한 결과물을 내놓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차곡차곡 쌓여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농업 전문지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저널리즘의 '권위'는 사라진지 오래고 이슈 선도는커녕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도 숨차하는 언론이 부지기수다. 공산품처럼 찍어낸 백화점식 보도는 마땅한 킬러 콘텐츠 없이 소비자들만 기다리는 폐업 직전의 구멍가게처럼 연명하고 있다면 너무나 가혹한 셀프 비판일까.

농업 현장에서 농산물 포장에 사용되는 종이신문의 현실을 마주하면 농업 저널리즘, 농업 전문지의 생존방식에 한 명이라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종이 신문의 몰락 '부수경쟁클릭전쟁' 
  
1980년대만 해도 지하철을 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신문을 펼쳐보는 직장인들이었다. 과거 종이신문은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증표였는데, 영자신문은 그중에서도 최상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어느덧 종이신문은 '꼰대'의 상징, 시대와 동떨어진 옛날 사람을 대표하는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다. 모바일 기기의 발전과 IT 기술 진보는 개별 뉴스 콘텐츠와 결합하면서 종이신문 퇴보에 일조하면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연말 발간한 '2020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2011년 종이신문 이용률이 44.6%에 육박했지만 2020년 10.2%로 10년 만에 1/4로 곤두박질쳤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1명만이 종이신문을 읽고 있는 것이다. 

종이신문의 퇴보는 언론사 편집국의 영향력도 하락시켰다. 지면에 각 기사들이 가진 메시지를 어떻게 배열할 것인지가 지면신문이 가지는 권력이었다면 언론사에서 생산하는 기사들은 파편화돼 포털에서 소비되고 있다. 

기사의 파편화는 개별 기사들의 과당경쟁을 촉발했고, 뉴스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 과도한 '정파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저널리즘의 강점인 '견제'와 '균형'이 퇴색되고 진영논리에 매몰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부수경쟁'이 '클릭전쟁'으로 전장이 바뀌자 2021년 각 신문사들은 디지털 부서를 확장하는 대대적인 개편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농업 전문지의 종이신문은 타 분야에서 받는 충격보다 덜하다. 농민들이 디지털 세상으로의 전환에 무감각한데다 고령화된 농촌에서는 여전히 신문을 읽는 충성 독자층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또한 지방에 산재된 농업관련 기관이나 농·축협, 농기업의 신문수요, 정부의 보조사업 등이 결합되면서 농업 전문지를 지탱해 주는 젖줄이 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이 소환하는 파고에서 언제까지 전문 신문들이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안정적인 부수가 신문사 내부 개혁을 가로막는 인공호흡기처럼 작동하면서 타성에 젖어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 직면할지 모르는 일이다. 

  
포털 플랫폼이 불러온 전문 신문의 질적 저하 
  
뉴스의 유통을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포털이 전담하면서 생기는 개별 기사의 과당 경쟁은 뉴스의 품질을 하락시켰다.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속보 경쟁은 클릭 수만을 노리는 일부 인터넷 매체의 자극적인 기사들로 도배되면서 정작 차분한 논조의 분석 기사들이 묻히는 기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신문 권력의 집중화를 타파하고 양질의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는 소규모 언론사의 질적 성장을 가져올 것만 같았던 인터넷 포털의 변질은 저널리즘의 위기를 앞당겼다. 농업 전문지들도 포털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다 뒤늦게 포털 진입 경쟁을 벌였는데 불과 8년 전만 해도 1~2개의 언론사만 포털에 검색됐지만 2013년 몇몇 농업 매체들이 본격적으로 포털 진입에 성공하게 된다. 

농업계 언론에 포털이 가져온 파급 효과는 농민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확장성에는 성공했지만 지면에만 담았던 전문지만의 특수성은 상실하면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콘텐츠로의 한계도 동시에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광고 시장에서 압박을 느꼈던 농업계 전문지들로서는 포털 입점이 광고 영업으로 연결되면서 포털 입점에 사활을 거는 계기가 된다. 농업 콘텐츠의 포털 입점이 가속화되자 특수 콘텐츠를 노리는 소위 업자까지 등장하면서 농업계 언론은 포털에 매몰되기까지 했다. 이후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엄격한 심사 기준 반영으로 안정을 찾긴 했지만 포털의 입점은 농업 전문지로서는 양날의 검처럼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전문지 역할론에 대한 고민 시작돼야 
  
몇몇 주요 농업 전문지의 태생은 일반 신문과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띤다. 전문지를 경영하는 사주가 일반 개인이 아닌 농민조직인 경우가 많아서다.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경영권과 편집권의 분리가 지켜진다 하더라도 농업 전문지라는 특수성은 농민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농업·농촌의 발전과 농민들의 목소리가 매번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농민조직마다 이해관계가 달라서 농민단체의 이익이 전체 농업·농촌의 이익으로 반드시 수렴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농업 전문지의 정체성은 사회적 약자인 농민의 입장은 반영하되 농업 발전이라는 큰 대의를 지켜나가는 원칙에서 증명되며, 그 속에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충실이 이행하는 역할에서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농업이라는 산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사양산업으로 농민단체는 열악할 수밖에 없고 그 궤적을 뛰어넘기 힘든 농업 전문지들도 경영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결국 농업 전문지의 정체성과 역할론에 대한 담론은 '한가한 소리'로 전락하고, 신문사의 미래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지지 받기 위한 홍보 경쟁, 광고 수주를 위한 정쟁'만이 남는 환경이 됐다. 

  
친철한 메신저 분석적 칼럼니스트의 부재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은 기자라면 한 번쯤 듣는 얘기다. 하지만 농업계는 유독 쉬운 말에 인색하다. 농업이라는 분야를 낙후된 산업으로 오해하지만 전문적인 용어가 이만큼 난무하는 산업도 드물다. 

늘 써오던 용어를 답습하고 유통하는 건 다름 아닌 기자들이다. 독자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하는 기자라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용어로 번역해야 하지만 시간에 쫓기고 익숙함에 내성이 생기면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이 아는 용어로 착각한다. 단적인 예지만 농업 언론이 보유한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결국 독자들은 단어에 막히면 읽기를 포기하고 재미가 없으면 제목조차 보지 않는다. 농업계 언론에서 생산되는 기사가 유독 열독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다. 농업에 숨어있는 갖가지 정보들을 쉽게 번역하고 재밌게 풀어내는 기자의 필요성에 이제 농업 언론이 생존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분석 기사 또한 마찬가지다. 농업이라는 전문성의 타이틀을 달고 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기사의 부재는 농업계 언론을 모니터링하는 관련업계 홍보 담당자들의 볼멘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라도 인지할 수 있는 사실이다. 

친절한 메신저, 분석적 칼럼니스트 발굴에 소홀한 농업 전문지는 농민뿐만 아니라 대중을 설득할 힘도, 동력도 크게 떨어져 있다. 기자 이름 석 자만 보고 해당 언론사를 찾을 정도의 스타 기자가 손에 꼽히는 일도 농업 전문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때문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인플루언서와 같은 영향력 있는 기자를 배출하는 것도 농업 전문지가 가져야 할 숙명이다. 

  
전문성의 본질 기자 발굴에서 찾아야 
  
아이 한 명을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일은 작게는 마을 전체가 매달려야 할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니다. 걸출한 기자 한 명을 키워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선배 기자들과의 토론, 농촌에서 직접 부딪치는 경험, 자신이 취재하는 문제에 대한 깊숙한 고민 없이 소위 '글빨'이라고 하는 무기만 가지고는 성장하지 못한다. 더욱이 경영난에 시달리는 신문사에서 번듯한 트레이닝 시스템이 부재한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에는 목소리 큰 90년대생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면서 세대 갈등도 수면 위로 표출된다. 지난해 동아일보미디어그룹에서 발간한 ‘동아뉴스룸 혁신 보고서’에 나온 '화성에서 온 기자, 금성에서 온 데스크'란 표현은 이 같은 단상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2010년부터 언론계는 신입 기자를 뽑는 횟수를 급격히 줄이며 경력 기자 채용에만 매달렸다. 반강제든 아니든 이미 스스로 사양 산업임을 체감하고 구조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셀프 수급조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갈수록 기자 풀은 빈약해지고 쪼그라들고 있어 농업 전문지처럼 전문 영역에 속하는 산업에서는 기자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농업 전문지의 살길이 '전문성'이라면 이들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보장하고, 농업계 전체가 이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길 또한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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