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식량위기(下)]‘위기를 기회로’ 안일한 식량인식·정책 대전환
[창간특집-식량위기(下)]‘위기를 기회로’ 안일한 식량인식·정책 대전환
  • 이은용 기자
  • 승인 2021.04.10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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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부족하면 주변국서 수입해다 먹자”는 사고 과감히 버려야 할 때
탁상행정 벗어나 ‘녹색혁명’ 넘는 실효성 높고 구체화된 정책 만들어야 
‘안보 차원에서 식량 문제 접근’…국내 ‘농업 생산 기반’ 확대 등 추진

[농축유통신문 이은용 기자] 

우리 사회도 먹거리가 부족해 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국가를 지탱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40∼50년 전 이야기다. 그 당시 전쟁의 폐허 위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 국민 모두는 힘을 모아 국가 재건에 앞장섰다.

특히 국민들의 먹거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녹색혁명의 바람이 불어 식량에 대한 중요한 가치를 온 국민이 느꼈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먹거리가 넘쳐나 누구나 배불리 끼니 걱정 없이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식량에 대한 가치가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다.

그 누구도 식량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게 됐고, 이는 고스란히 정책에 반영됐다. 서구 선진국들은 식량자급률 100%를 초과해서라도 식량 생산에 전념할 때 우리 정부는 쌀이 남아돌아 경지를 정리하거나 쌀 생산을 막는 감산정책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식량안보 중요 작물 콩 수확 현장
식량안보 중요 작물 콩 수확 현장

잘못된 인식·정책 세계 5대 식량수입국 전락

더욱 문제는 식량정책을 총괄하는 정책 입안자들이 식량이 부족하면 주변국에서 수입해다 먹으면 해결될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경제질서에서 당연시 할 수 있는 사고로 보일 수 있지만 과연 이들의 사고가 정상일까. 그 결과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40%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 5대 식량수입국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와 연이은 자연재해로 인해 우리의 삶은 다시 바뀌려고 하고 있다. 지금의 인식과 정책 변화 없이는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변화의 기회는 있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다. 그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혼란이 일어났을 때 미국 정부는 양적완화를 했다. 대규모로 화폐를 발행한 다음 식량시장에 투자했고, 실제 밀 가격이 100% 올랐다.

여기에 옥수수 가격은 70%, 쌀 가격은 40% 올라 식량수입국에게는 정말 지옥 같은 현실이 돼 버렸다. 실제 애그플레이션으로 인해 38개국이 식량 부족 사태를 겪어야 했고, 몇몇 국가에서는 사회 붕괴 현상까지 겪었을 정도다.

대표적인 국가가 이집트다. 배고픔은 사회불안으로 변했고, 카이로 혁명으로 연결됐으며, 이집트를 비롯해 북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변화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또 다시 기회는 왔다.

코로나19-이상기후로 ‘식량안보’ 인식 높아져

코로나19와 이상기후라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 우리가 직접 느끼는 고통에서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코로나19 영향 관련 도시민 설문조사’를 보면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식량안보가 중요해졌다(74.9%)’고 응답했다. 조금씩 인식의 전환을 해가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식량안보와 관련해 구체적 대책이 없기 때문에 탁상행정이 아닌 실질적이고 실효성이 높은 정책을 하루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농협미래경영연구소가 발간한 ‘글로벌 식량위기 우려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이 30% 미만인 세계 5대 식량수입국이자 식량위기에 아주 취약한 곡물 수입구조를 가지고 있어 안보적 차원에서 식량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앞으로 큰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최근 4개년(2015~2018년) 평균 23%에 그쳤으며, 100%를 웃도는 세계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더 큰 문제는 식량 수입을 미국·호주·브라질 등 특정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며, 비상시 필수 곡물을 해외로부터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사실상 없는 실정이라는 지적이다.

기초 곡물 국내 생산 확대-비축 물량 확보해야

보고서는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자급률이 낮은 기초 곡물에 대한 국내 생산을 확대하고, 비축물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밀과 콩, 옥수수 등 주요 곡물에 대한 안정적인 생산과 판로보장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쌀을 제외하면 정부 비축이 미흡한 게 현실이기 때문에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법제화, 품목별 생산 목표를 구체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아울러 수입선 다변화를 이루기 위해 싱가포르의 사례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2010~2011년 곡물 파동 당시 밀수입이 러시아에 편중됐던 중동 국가들은 식량을 확보하지 못해 정치·사회적 불안에 노출됐으나 싱가포르는 탄력적인 농식품 수입 전략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필요 식량의 90%가량을 수입하면서도 170여 개 국가로 수입선을 다변화한 결과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할 정도라고 소개했다.

노동력 문제 해결 위해 노지농업 스마트화 추진

보고서는 특히 노지농업의 스마트화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노동력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국내 농업부문 고용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력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노지농업 부문의 스마트기술 개발·보급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또 농식품 바우처 사업을 확대하는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정책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농경연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식량안보 위험에 대응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전했다.

보고서에서는 “식량안보를 위해 국내 농업생산기반 확대 및 주요 농산물 비축 확대, 남북농업협력 추진해야 한다”면서 “식량안보 강화, 식품물가 안정을 위해 논 타작물재배 확대 등 곡물 자급률 제고방안 추진, 국가 통합 물 관리 정책에 부합하며 농업인에게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생산기반 구축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정적 국제 곡물조달시스템의 구축을 위한 쌀 이외에도 국내 비축 규모 확대와 이를 위한 비축시설 투자 확대, 장기적으로 한반도 식량안보와 안정적 공급사슬 구축 측면에서 남북농업 협력 촉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업 ‘생산·유통·물류’ 체계 대 전환 필요하다

보고서는 또한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후변화의 글로벌 위험, 환경문제의 악화 등에 최우선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로 농촌 에너지 전환(농촌태양광시설), 저(제로)탄소 경제·사회를 위한 농업 생산·유통·물류 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후변화 대응 농업·농촌 환경보전(공익형 직불제, 환경농업프로그램) 강화, 자원 절약 농업 시스템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농업용 담수호의 수질 개선, 노후화된 저수지 개보수 등 친환경농업이 가능한 양질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지역사회에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비대면 경제사회시스템의 확산, 4차 산업혁명 가속화에 대응 농업·농촌부문 디지털경제 강화와 환경·건강·안전·공동체 등 중시로 저밀도 사회인 농촌지역 가치가 증대하는 것을 활용해 농촌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경제체제에 적합 농정추진체계로 전환 중요

보고서는 특히 국민에 대한 건강하고 안전한 농산물의 공급과 함께 취약계층 중심 먹거리 보장대책(바우처) 강화하고, 비대면 사회도래 등 변화하는 사회·경제체제에 적합한 농정추진체계로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이런 전문가들의 경고에 정부와 국회도 신속한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식량안보 예산을 이전보다 대폭 확충해 밀과 콩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기반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국회에서는 더욱 발 빠르게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량위기 문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식량자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 의원은 현행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은 5년마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을 통해 목표치 등을 포함한 식량자급 추진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지만 품목별 곡물자급률은 목표수치 조차 제시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식량자급의 기반이 되는 경지면적 확보방안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국회도 식량위기 인식전환…관련법 개정 추진

특히 기존 식량자급 정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평가하고 개선책을 새로운 계획에 담아내는 정책 간 환류가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어 법을 개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5년으로 돼 있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의 수립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고 식량자급 목표설정 시 품목별 곡물자급률을 포함하도록 했으며, 농지면적 확보 계획과 기존 추진계획 평가와 개선에 대한 사항을 함께 마련하도록 했다.

서 의원은 “코로나19 발생이후 무기와 비견될 정도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국내 식량자급 제고를 위해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도 조속히 논의돼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식량위기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 기존에 생각했던 안일한 사고와 정책은 과감히 던져 버리고, 위기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단기, 중장기 정책 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때다. 식량위기는 결코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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