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도매시장 DNA는 ‘농민보호’···원칙 반하는 혁신은 ‘금물’
공영도매시장 DNA는 ‘농민보호’···원칙 반하는 혁신은 ‘금물’
  • 김수용 기자
  • 승인 2021.04.09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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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권승구 동국대학교 교수]

  • 도매법인 중도매인 역할·기능 재정립 필요
  • 경매, 유통과정 리스크 농민 전가 저지선
  • 도매시장법인 사회적 역할 고민해야 할 때
  • 출하대금 미지급 사건은 제도에 누수 발생
  • 시장도매인 유통자본에 농민 보호 못할 것

[농축유통신문 김수용 기자] 

공영 도매시장은 국내 농업 유통 분야에서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기준 가격 발견 등 단순히 농산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주는 역할을 넘어 모든 농업 관련 정책과 예산 집행, 그리고 농민의 삶을 지표로 수치화하는 통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농업 전 분야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때문에 그동안 도매시장은 농민뿐만 아니라 유통인,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등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동시에 국민 먹거리를 유통하는 전진 기지로 활약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산지 조직화, 온라인 유통의 발전, 새로운 유통 주체들이 생겨나면서 도매시장 역할론에 대한 이슈가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거래제도 중 하나인 시장도매인제 도입문제가 일부 정치권과 결탁하면서 도매시장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축유통신문은 창간 32주년을 맞아 공영 도매시장의 변화와 혁신을 주제로 권승구 동국대학교 교수와 인터뷰했다. 다음은 권 교수와의 일문일답.

<편집자 주>


Q. 공영도매시장의 역할과 의미는.

A. 1985년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이 개장하고 현재까지 영세한 농민들을 대신해 기준가격을 결정하며 안정적인 대금정산을 이뤄내는 등 산지 교섭력을 높이는 과정은 상당히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장 당시보다 도매시장은 각종 제도가 더욱 견고해지면서 도매시장 설립 목적에 맞게 그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지난 20년간 공영도매시장의 발전을 위한 당면과제를 발굴하고 개선해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장도매인제 도입에 대한 논란에 파묻혀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더 이상 소모성 논쟁을 그만두고 급변하는 유통체계에 대비하는 자세로 나가야 한다.

앞으로 공영도매시장이 나아가야 할 부분은 명확하다. 도매시장법인은 출하자를 보호하고, 상생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경매나 정가·수의매매 등으로 수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도매인은 소비지 시장을 대응하기 위해 교섭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규모화가 동반돼야 한다. 또한 물류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가락시장은 현대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유통 개선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이 해야 할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재정립이 필요하다.

 

Q. 안동사과농가 출하대금 미지급에 따른 시장도매인 제도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이에 대한 생각은.

A. 법적으로는 농민이 패소했지만 농민 입장에서 공영도매시장으로 농산물을 보냈는데 출하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만 보면 황당한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농민들은 공영도매시장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도의적 차원에서 시장도매인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고, 사후 어떠한 책임 있는 행동도 뒤따르지 않아 더욱 실망이 컸을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은 공영도매시장 제도 속에 발생한 누수로 그 책임은 관리자인 개설자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속이려고 마음먹고 달려들면 누구나 사기 당할 수 있다. 지금까지 경매제도에서 없었던 문제점이 발생한 것인데 관리 시스템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시장 내 관리질서를 유지시킬 수 있는 책임 있는 개설자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 시장도매인의 정산시스템이 편리성을 높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결국 공영도매시장으로 반입됐던 농산물 이 크로스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문제는 발생할 수 있고 결국 농민만 손해 보는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Q. 최근 도매시장법인의 공적 역할을 강화하자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데.

A. 일부 언론에서 도매시장법인들의 수익구조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공영도매시장의 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역사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공영도매시장의 개설 취지는 조직화 돼있지 않은 농민을 대신해 교섭력을 발휘하는 등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만든 것이다. 도매시장에 공적 역할을 부여, 도매시장법인에게는 수집을 통한 대리 판매로 생긴 이윤을 취하도록 만들고, 중도매인은 구매한 농산물을 소비지에 팔아 이득을 취하도록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도매시장 내 양 유통주체에게 도매시장법인은 출하자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이익을 취하고 중도매인은 소비지 시장의 상황을 반영해 이익을 취하는 적절한 균형점을 부여한 셈이다.

특히 도매시장법인은 농민의 농산물 수취가격이 이윤과 연동되기 때문에 생산자를 대변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경매제도는 산지와 소비지의 취약함을 절묘하게 보완하고 균형을 맞춰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래돼 공익성을 만들어 가는 상생의 장이다.

다만 공영도매시장이라는 게 공적영역과 공적지원 속에서 영업을 하는 것이기에 사회적인 서비스나 봉사활동을 필요로 한다. 최근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높아진 만큼 그 부분에 있어서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또 현재 공영도매시장은 제도 속에 운영되는 시장이다. 아무리 큰 대기업이 진출한다고 해도 정해진 기준과 원칙에 따라 운영될 뿐 그 이상도 아니다. 그만큼 기준과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공영도매시장을 만들었다. 현재 상황은.

A. 산지 조직화가 되기 전까지 공영도매시장은 대형유통업체로부터 산지를 보호해야할 주체다. 대형유통업체들이 농산물을 수집하기까지 이벤트성으로 직접 집하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벤더 등을 통해 농산물을 납품 받는다. 그 과정에서 중간 상인이 리스크를 떠안게 돼 있고 상인은 농가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공영도매시장은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농가로 전이될 수 없도록 하는 최종 저지선이 되는 것이다.

현재 유통시장은 전쟁터처럼 치열하다.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할수록 압박은 심해져 이를 해결할 차선책으로 일부 유통인들이 시장도매인제도 도입을 말한다. 시장도매인제도로 리스크를 분산시키려는 목적이다. 과연 유통자본이 산지를 지배하기 용이하게 만드는 제도를 도입시켜 농가를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통자본 즉 대형 유통업체는 산지 벤더를 통해 물건을 납품 받는데 산지 벤더가 시장도매인의 역할과 비슷하다.)

시장도매인제도가 무조건 옳다는 전제로 3년간 고민했다. 결과는 이 제도가 유통 자본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시장도매인 도입) 반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통은 수많은 이해 관계자와 이익이 충돌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이론과 현장을 충분히 습득하고 이해해야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다.

농산물 유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지조직화다. 도매시장은 이익을 추구하려는 유통 주체들이 모인 장소인 만큼 산지의 압박이 없는 한 그들의 이윤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산지조직화가 성공한다면 일본처럼 지시가격(판매자가 가격을 정하는 것)을 도매시장에 도입할 수 있고 유럽처럼 최저가격도 설정할 수 있다. 이는 조직의 힘에서 나오는 독점적 출하방식으로 교섭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농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Q. 최근 가락시장 중도매인에게 시장도매인 도입에 관한 찬반조사에서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에 대한 생각은?

A. 대부분의 중도매인들은 법인이 수집하는 농산물에 이윤을 더해 판매하길 원한다. 대형 유통업체도 비용 문제를 들어 직접 수집하는 경우를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영세한 중도매인들이 직접 농산물을 수집하게 되면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반대로 대상으로 분류되는 대형 중도매인들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

또한 최근 들어 유통시장에서의 이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10% 마진을 유통부문에서 취할 수 있었다면 현재는 5~7% 선을 밑돈다. 이윤이 줄어든 만큼 물량 공세로 보존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때문에 마진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소비지와 농민 등 양쪽에서 이윤을 취할 수 있는) 시장도매인제를 주장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중도매인의 직접 수집이 가능하지만 일부를 제외하고 직접 수집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필요한 농산물이 있다면 도매시장법인을 통해 수집을 요청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용 문제다. 결국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집중하는 것이 포인트인 셈이다.

 

Q. 미래 농산물 유통을 위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A. 지속적인 산지조직화의 내실충실화가 필요하다. 2000년도 이후부터 10여 년간 산지유통기반시설(APC)을 정부의 지원 속에 다수 만들었다. 이에 물적 기반은 어느 정도 확충됐다고 본다.

문제는 물적 기반을 통한 마케팅 파워를 만들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조직의 힘을 바탕으로 마케팅을 앞세워 농산물 유통을 좌지우지한다.

사실 공영도매시장에 정가수의매매가 도입된 것도 소비지시장에서 요구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유통에서는 정량, 정가, 정품, 정시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매일 수급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격으로는 이 같은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통의 중심축은 이미 소비지 시장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요구상황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대형 유통자본으로 넘어간 유통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도매시장을 건전하게 운용하고 산지가 이를 따라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Q. 마지막으로 한 마디.

A. 공영도매시장은 산지의 조직화가 되지 않는 농가를 보호하기 만든 곳으로 목적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명확하게 나와 있다. 이 원칙을 지켜나가는 범위 안에서 제도개선을 이뤄내는 것이지 목적을 훼손하면서까지 제도개선을 하려면 안 된다. 공영도매시장에서는 법의 기준과 원칙을 바탕으로 농민과 소비자를 위해 운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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