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장의 시선]옛 기억 속 농활이 필요할 때
[이 부장의 시선]옛 기억 속 농활이 필요할 때
  • 이은용 기자
  • 승인 2021.04.23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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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용 취재부장

[농축유통신문 이은용 기자] 

1999년 한창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 당시만 해도 각 과별로 조를 구성해 조별활동을 많이 했던 시절이다. 특히 4월이나 5월이 되면 농촌으로 농활을 자주 갔던 생각이 떠오른다.

특히 농촌 마을 마다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곳들이 있어 영농철이 다가오면 조를 짜 농촌 마을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농활을 통해 학생들은 농사일을 직접 체험하고, 땀의 소중함을 농민들에게서 배우는 기회가 됐다. 도시에서만 생활했던 학생들에게 농촌을 체험하고 농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이보다 더 값진 경험은 없었다.

그 당시에도 강원도 인제로 농활을 떠난 기억이 난다. 필자를 포함해 학생 10여 명이 옹기종기 간단히 짐을 챙겨 즐거운 마음으로 강원도 산골마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 한참 산 깊숙이 들어가 한 마을에 도착해 마을 이장님과 인사를 나누며 마을회관에 짐을 풀고 인력을 나눠 현장에 투입돼 일손 돕기를 했다. 필자가 일했던 곳은 표고버섯 농가였다.

그 당시 표고버섯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새로움을 경험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표고버섯이 종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생각이 난다.

농촌에 가면 일도 하지만 농민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1999년 당시에도 개방화의 물결이 농촌을 휩쓸면서 농민들은 값싼 수입농산물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농민과 대학생 간 시류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였고, 학생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농업현장의 현실을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기계화가 덜 돼 있어 일손 부족 현상이 심했다. 그래서 농민들은 해마다 학생들이 농활을 하는 것을 반겼고,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대학교 내외에서 점점 농활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만큼 농촌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면서 도시와 농촌 간 괴리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농활을 경험하지 못했던 Z세대에게 농업과 농촌은 더욱 멀어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농활 시절 농민과 대학생들은 ‘운명공동체’라는 용어를 써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알려고 노력했다.

운명공동체는 아니더라도 Z세대도 농업과 농촌을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19로 현재 농촌현장은 일손 부족 현상을 겪으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Z세대가 어렵지만 시간을 내 농촌현장에 가서 농업도 체험하고 농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지금은 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 돼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떠날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농촌현장 가서 직접 체험해보고 농촌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경험해본 것과 안 해본 것은 차이가 크다. 특히 미래세대인 Z세대는 농업과 농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농업·농촌의 미래도 밝아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옛 기억 속 농활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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