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납 농산물 가격 후려치기, 결국 농업을 망치는 길
군납 농산물 가격 후려치기, 결국 농업을 망치는 길
  • 이민지 기자
  • 승인 2021.06.24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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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투성이 군납 급식 업무 개편, 군 장병들과 농민들만 피해 입어


[농축유통신문 이민지 기자] 

“농민 죽이는 군 급식 농산물 가격 결정을 규탄한다!”

지난 21일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다. 얼마 전 2021년도 군 급식 공급용 농산물 계약가격에 대한 조달청 산정 예시단가가 공개됐는데, 적게는 12% 많게는 40% 가까이 낮은 가격으로 산정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예시단가지만, 해당 단가가 확정될 경우 힘들게 지은 농사가 수익은커녕 도리어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현장의 우려다.

 

생산비는 치솟는데 군납농산물 가격은 폭락

경기도는 군사시설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를 받는 지역이다. 군과 지역 재배 농가가 상생하는 방법으로 60% 이상의 농가가 재배한 농산물을 군 급식에 공급하고 있다.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 제2조’에서 정한 시군으로 경기도는 고양, 김포, 파주, 연천, 포천, 동두천, 양주 등 7개 시군이 해당된다. 때문에 이 지역 농가들은 군납이 중요한 수요처로 농민 생계와 직결돼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 군납하는 김상기 농민(경기친농연 회장)은 “농민들과 상의 없이 농산물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현 정부가 농산물가격을 어떻게 결정하고 있는지 단초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현실”이라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인력난, 이상기후로 생산비가 올라가고 있는데 1년간 공들인 노력에 대한 보답이 가격 폭락이란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허점투성이 업무 개편으로 농민들만 피해 입어

이번 사태로 농민들은 농협중앙회를 겨냥하기도 했다.

김영재 농민의길 공동대표(한국친환경농업협회 회장)는 이번 가격 책정 논의에서 농협이 농민을 배제했다며 국방부와의 군납 관련 협상 테이블에 오를 권한을 농민에게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가 책정 방식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군 급식 품목 조달업무가 기존 방위사업청에서 조달청으로 넘어가며 단가 책정 과정에서 협의·조정 과정이 생략됐다는 이유다.

과거 국방부는 ‘농·축·수산물 가격협의 지침’에 따라 농협·수협을 통해 조달하는 농·축·수산물에 대한 계약가격을 농협·수협중앙회와 협의 결정해 각 군에 통보했으나 조달청으로 업무가 이관되면서 가격정보를 산정하는 업무만 있고, 상호 가격 조정업무는 빠져있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농가의 피해와 현장을 고려하지 않고 농산물 가격이 책정되고 있다”면서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업무를 개편했다지만 허점투성이로 농가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상기 경기친농연 회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 내용을 국회 농해수위 비서관실 담당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김상기 경기친농연 회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 내용을 국회 농해수위 비서관실 담당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저가경쟁입찰 제도…부실식재료 공급 용인과 다름없어

지난 17일 국방부는 부실급식 사태 개선 방안으로 ‘주말과 휴일 간편식 제공’과 저가입찰 중심의 ‘학교급식전자조달시스템(eaT) 도입’을 발표했다.

해당 발표에 대해 농민들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군 장병들에게 건강한 급식을 제공해야하는 국방부가 발표한 개선 방안으로는 부실급식사태를 감춰보고자 청년장병들의 선호도를 운운하며 식재료조달의 불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저가경쟁입찰 제도가 도입된다면 저가의 농산물을 내놓기 위해 하위품질을 생산해낼 수밖에 없고, 중국산 같은 싼 수입산 농산물이 시장에 뛰어들어 결국 농민과 군 장병들 모두 피해를 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조완석 전국먹거리연대 상임대표(한 살림 회장)는 “최근 군 부실급식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군 급식에 사용되는 농산물의 원산지, 공급처와 식단이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군납농산물 단가 후려치기…미래농업 망치는 길

“앞으로도 농산물 가격이 일방적으로 낮게 책정이 되면 젊은이들은 더욱 농촌으로 오지 않을 겁니다. 1년간 쏟은 노력이 일방적으로 무시당한다면 어떤 젊은이들이 하고 싶겠습니까.”

경기도 양주시에서 감자와 양파를 군납하는 이남용 농민이 한 말이다. 2021년도 조달청 산정 군납 예시가를 보면 마늘 비생산기인 9월~익년 5월 껍질마늘 1kg은 5,558원, 깐마늘은 5,032원으로 책정됐다. 마늘은 단가가 전년대비 15.6% 떨어졌는데, 원물보다 손이 더 가는 반가공품인 ‘깐마늘’이 일반 마늘보다 단가가 높게 책정되는 가격 역전 현상까지 발생한 것이다.

이남용 농민은 “농산물 가격을 마냥 낮게만 원한다면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농촌 인력난을 더욱 빠르게 악화시킬 것이다. 국방부와 조달청은 지금 현재만 바라보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미래 농업을 위해서 농산물 단가후려치기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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