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장의 시선]복날의 초상(初喪)
[이 부장의 시선]복날의 초상(初喪)
  • 이은용 기자
  • 승인 2021.07.09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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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용 취재부장

[농축유통신문 이은용 기자] 

예부터 복날에는 체력보충을 위해 고칼로리 영양식을 섭취해 왔다. 주로 선호된 것이 고기 요리였으며, 고기 요리 중에서도 수분 보충용으로 국물 고기 요리를 섭취했다. 대표적인 음식은 삼계탕이다. 그래서 복날만 되면 삼계탕 식당 앞은 삼계탕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에 육계업계들은 최대 성수기인 복 시즌을 기다린다. 복 시즌이 1년 매출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닭고기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이 때 장사를 망친다면 1년 농사의 결실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온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소비 부진이 계속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발생하면서 닭고기 가격이 생산비(㎏당 1,500원) 이하로 떨어져 업체들의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실제 최근 몇 년 간 하림을 비롯해 육계업체들의 적자 폭은 매년 커져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고 알려졌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종계와 육계의 생산성이 호전돼 지속적으로 병아리 공급이 과잉상태를 보이고 있어 과잉공급 현상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고병원성 AI 여파로 수급의 균형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반기 입식된 종계가 많아 이들이 병아리 생산에 가담하는 8월 이후에는 닭고기 공급 과잉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8월 이후 닭고기 가격은 공급과잉으로 생산비 이하로 형성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으며, 여기에 초복 주문 물량으로 인한 가격 상승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 하락한 소비 회복이 어려워 보인다.

이와 함께 ‘여름하면 삼계탕’이라는 공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깨지면서 소비가 줄고 있다는 사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식생활 문화가 바뀌면서 기존에 즐겨 먹던 음식들이 주류에서 빠져 나가고 있는 현상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 여름 특수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푸념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수급조절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유통구조 상 과열경쟁 등이 발생할 소지가 크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업계가 추진하는 수급조절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간주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처해 있다.

설상가상 공정위는 조만간 하림을 비롯한 가금업계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막대한 과징금 부과와 형사 고발 조치를 취할 예정이어서 업계 전반의 분위기가 초상집 같다.

연이어 터진 대형 악재 속에 국내 가금 산업은 출구 없는 불투명한 미래로 향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가금 산업은 붕괴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초상집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어떠한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처럼’ 가금 산업의 미래가 새드엔딩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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