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한우협회의 진화로 보는 농민단체의 변화
[특별기획] 한우협회의 진화로 보는 농민단체의 변화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09.13 0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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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한우 1세대. 맨 앞줄 왼쪽부터 이규석 초대 회장, 남호경 회장, 이강우 회장.
지난 2019년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한우 1세대. 맨 앞줄 왼쪽부터 이규석 초대 회장, 남호경 회장, 이강우 회장.

국내에는 수많은 협회와 단체들이 있다. 관련 업계에 몸 담지 않으면 들어보지도 못한 단체들도 부지기수다. 농업계에도 마찬가지다. 굵직한 조직을 꼽아보더라도 어림잡아 50여 개 이상의 단체들이 활약하고 있다. 특히 농업계에는 다양한 협회가 존재한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지도자중앙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종합 단체를 비롯해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전국한우협회, 대한한돈협회 등 품목별로 모인 조직도 있다. 한국특수가축협회도 있어 그야말로 협회 공화국이라 불릴만하다. 농업계 단체들은 과거 종합 단체로 묶여 있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분화돼 각자의 영역 구축이 트렌드처럼 굳어지고 있다. 농민단체들도 과거 철학과 대의를 위해 중지를 모았다면 이제는 품목별로 모인 농민들의 권익 보호와 해당 산업 발전을 위해 뛰는 경향이 강해졌다. 농축유통신문은 전국한우협회의 창립기념일을 맞아 한우협회 조직의 변화를 살펴보고 농민단체가 농업계에 주는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우협 농가들의 열망으로 건립
1세대 한우인의 희생·봉사가 자양분


1999년 결성된 한우협회는 한우 농가들의 열망이 모여 탄생된 조직이다. 축산업에서는 최대 조직을 자랑한다. 9만 호에 가까운 농가를 보유함과 동시에 농가 스스로 걷는 자조금의 규모도 약 330억 원으로 농축업계를 통틀어 상위에 랭크돼 있다. 

한우협회의 탄생에는 농가들의 열망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만 해도 한우 유통의 사각지대가 많았고 수입 개방 파고가 불어닥치는 시기였던 만큼 농가들의 불안이 컸다. 과거 겪었던 한우 파동 트라우마는 농가들의 뇌리에 각인되면서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팽배해진 탓이다. 

당시 한우 1세대 농가들은 자신의 주머니까지 털어가며 협회 설립을 성공시켰고, 그 기세를 몰아 한우자조금까지 도입하는 성과를 이뤘다. 농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한우협회가 설립되고 자조금이라는 든든한 실탄까지 장착하자 협회의 활동은 날개를 달았다. 

수입생우 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원산지 표시제 도입 등 한우 농가들을 위한 각종 정책과 법제화에 열을 올렸다. 한우협회 조직의 근간에는 한우 1세대들의 희생과 봉사가, 한우인들의 열정이 자리를 꿰차면서 지금까지 한우인들의 결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세대 한우인 산업 위기 탈출에 집중
1.5세대 조직력 기반 산업 안정화 주력

한우협회가 제1대 이규석 회장, 제2~4대 남호경 회장을 거치며 한우산업에 불어닥친 파고를 막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면 이후에는 다소 혼란한 시기를 겪는다. 제5대 故 정호영 회장의 급작스러운 사고로 회장직이 공석이 되면서 혼돈의 시기를 겪었던 협회는 제6대 김남배 회장과 제7대 이강우 회장을 거치며 협회를 재정비한다. 

그간 협회 내부 균열을 봉합하고 이후 제8~9대 김홍길 회장을 거치며 새롭게 판을 짠 한우협회는 운동체 성격이 짙은 협회로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올해 김삼주 회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세대교체 신호탄을 올린 협회는 1.5세대가 주축을 이루며 협회 조직력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협회는 과거보다 능숙한 대응 능력과 탄탄한 조직 시스템을 갖춰나가며 한우인들의 열망을 담아내는 주력하고 있다. 


'9만' 인적 인프라, 산업에 대한 관심 장점
정지척 균형 다양한 의견 표출 원동력


한우협회의 강점 중 하나는 전국에 포진된 한우농가 즉 '9만 호'에서 나오는 인적 인프라와 농가들 스스로의 한우산업에 대한 관심이다. 

우선 정치적으로 경북-전북, 경남-전남으로 양분된 정치적 힘의 균형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고,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선거 판세의 불확실성은 지도자 개인의 독주체제를 막는 안전장치가 되고 있다. 타 협회에 비해 지역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정책적 제안이 유독 많은 것도 정치적으로 힘의 균형이 쏠리지 않는데서 나오는 저력으로 분석된다. 

과거 한우 1세대가 뿌린 한우 농민이라는 자부심은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며 다른 단체가 좀처럼 가지기 힘든 자립 의지로도 풀이된다. 지난 2017년 다른 농민단체들이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도 축산 단체 중 유일하게 농협적폐청산을 부르짖으며 농가의 권익 보호를 외친 사건도 한우 1세대가 새겨 넣은 운동체 DNA의 발현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농민단체 확장성 시도 높은 평가
지도부 '전략적 타깃팅'도 주목


농민단체의 새로운 시도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그동안 농민단체는 생산에만 국한돼 각종 사업의 한계를 규정지었다면, 한우협회의 확장성 강화는 농민단체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시도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협회 전용사료 론칭은 사룟값에 민감한 한우 농가들에게는 사료가격 폭등을 막는 안전장치로 작동하고 있으며, 협회 직거래유통망은 음성공판장에 몰리는 유통의 병목현상을 완화해 주는 지렛대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최근 들어 강화하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와의 밀월도 한우 소비촉진뿐만 아니라 한우의 충성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도 풀이된다. 또한 시대 흐름에 편승한 각종 밀키트 론칭, 편의점과의 협업을 통한 한우 상품 기획은 농민단체의 영역 확장과 역량을 평가받을 수 있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의 전략적 타깃팅도 주목할만하다. 전략적 타깃팅이란 집회와 같은 대정부 투쟁, 대정부·대국회 압박, 대국민 설득작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한우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ESG와 같은 사회적 공헌 사업을 지속해 한우산업의 우군을 만들어가는 행보도 지속 가능한 산업을 위한 밑그림으로 해석된다.


독일 프랑스 농민단체 강점 흡수 필요
"축산업 리딩 그룹 형성 먼 일 아냐"


독일의 DBV라 불리는 농민단체는 집단의 이익을 관철시키고 국가와 협력하는 조합주의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은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만 매몰돼 비판받기도 한다. 프랑스는 농민단체 간 경쟁적 상호 협력 관계 속에서 정책 대안을 만들지만 농정의 방향을 선도해나가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한우협회의 행보는 독일과 프랑스 농민단체의 중간 언저리쯤에 무게중심이 놓여있다.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현재 국내 농업은 프랑스의 강점과 독일의 강점을 동시에 가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한우협회가 농민단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전은 긍정적이나 아직까지 산업을 위한 논리 개발이나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필요함도 인식해야 한다. 협회가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정부의 정책 파트너로서, 축산업의 선도하는 리딩 그룹으로의 승격도 먼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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