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약탈적 공영도매시장’이라는 누명을 벗으려면
[편집자칼럼] ‘약탈적 공영도매시장’이라는 누명을 벗으려면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10.29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현욱 편집국장

플랫폼의 약탈적 프레임, 이익 구조에서 기인
유통 약자에 손실 전가 혁파가 개혁의 기본 전제
공영도매시장, 유통 약자 보호 시스템은 마련했지만
플랫폼 간 경쟁 등 혁신·자구 노력 뒤따라야 누명 벗어


공영도매시장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 잘날 없다더니 딱 그 짝이다. 올 초에는 경매 제도가 언론의 먹잇감이 돼 두드려 맞더니, 몇 주 전에는 도매시장에 수백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며 코로나 화마로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잠잠한가 싶더니 시장도매인제 도입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최근 개최한 토론회에서 시장도매인 우호 세력이 일방적인 의견을 쏟아내면서다.
 
가락시장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이슈를 따라가다 보면 늘 시장도매인 도입으로 귀결된다. 가락시장이 운영되는 시스템 누수를 막고 공영도매시장 앞날의 창창한 발전을 도모하는데 시장도매인 도입이 제격이란 얘기인데, 듣고 있자면 만능도 이런 만능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시장도매인 제도를 가락시장에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더니 일부 정치권, 농업 관련 조직까지 화력 지원에 안달 나 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공영도매시장에서 시장도매인이 일종의 표식처럼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좌우를 구분하듯 거래제도 하나가 마치 정치적 주홍 글씨처럼 활약한다. 찬성하면 아군, 반대하면 적군인 셈이다. 거래제도일 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시장도매인이라는 피·아 식별 도구는 너무도 강력해서 찬반에 뛰어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해 주기까지 한다. 필자가 속한 농업 언론계에서도 술자리의 단골 안주가 되고 감놔라 배놔라 훈수질에 언성까지 높아지는 일도 다반사다.
 
시장도매인은 충분히 장점이 많은 제도인 만큼 적절하게 사용되면 좋으련만 가락시장이라는 무대를 배경 삼아 늘 주연으로 부상해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다. 이쯤 되면 당사자도 참 피곤하겠다 싶다. 이번 칼럼에서 시장도매인의 장·단점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시장도매인 논쟁으로 공영도매시장 존재의 취지가 가려져서 그렇지 공영도매시장 본질에 대해 살펴볼 참이다. 개혁의 소용돌이에 직면한 공영도매시장. 플랫폼이라는 관점에서 도매시장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볼 지점이 있어서다.

 
플랫폼 유통 골목서 자릿세 수금 비판 직면
소비자는 만족도 높아 비용 증가도 감내

 
먼저 플랫폼에 대해 살펴보자. 과거부터 존재했지만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하다 서로를 연결해 준다는 중개(仲介)라는 단어가 플랫폼이라는 세련된 단어로 치환되면서 모든 산업에 '치트키(부정 행위 수준으로 강력한 상황 해결법)'처럼 등장했다. 공유 플랫폼인 우버, 배달 플랫폼인 배달의민족, 부동산 플랫폼인 직방, 포털 플랫폼인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연결해 준다는 의미에서 플랫폼 기업이라 불린다. 도매시장도 일종의 플랫폼이다. 농민과 소비자(중도매인)를 도매시장(플랫폼)이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초보 플랫폼은 사용자들로부터 뜨거운 성원과 격려를 받지만 시간이 지나고 걸출한 기업으로 성장하면 공격받기 일쑤다. 재밌게도 최근 승승장구하는 플랫폼 기업 대부분이 부정적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공통적으로 유통 골목에서 자릿세나 수금하는 기업들로 폄하된다. 물건을 생산한다거나 거대한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중개만을 통해 엄청난 불로 소득을 편취한다는 오해에 시달리기도 한다.
 
플랫폼 구조를 살펴보면 한 가지 특별한 구석이 발견된다.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산업 생태계는 파괴되지는 않는 기생적 속성이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배달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냉장고에 붙어있는 광고 전단지를 참고해 왔다. 즉 플랫폼은 없어도 그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배달 앱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 하나로도 다양한 배달 음식들을 경험하게 되자 엄청난 소비자 후생이 생겼다. 비록 배달비용이 높아지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그 비용을 지불할 만한 소비자들이 생긴 것이다.

지금도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매장에 직접 주문하면 할인해 주는 음식점이 있음에도 배달 앱이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애플리케이션(플랫폼)의 효용이 소비자가 지불하는 돈의 가치를 능가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도매시장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효용
소프트웨어 유지도 ‘비용’이 든다

 
물론 플랫폼은 한번 번성하기 시작하면 선점 효과를 무시하지 못한다.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산업계 내 생태계에서 가장 먼저 플랫폼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플랫폼 사업에 치킨게임이 난무하는 것도 초기 투자비용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플랫폼 기업이 저렴한 비용으로 중개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리스크 관리, 고객의 클레임 대응, 중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지원과 보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홍보하는 브랜드 제고 노력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요되는 비용 또한 천문학적이다.

오프라인 매장과 같은 하드웨어 외에도 플랫폼을 구동하게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 마치 플랫폼이 ‘월급루팡(월급을 축내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일정 부분 공감이 가기도 한다.
 
IT업계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한 IT 회사에 수익만을 중시하는 경영진이 부임한 후 필요 없어 보이는 부서를 잘라냈는데, 가장 할 일 없어 보이는 부서가 서버 관리 부서였다는 것이다. 사장은 서버 관리 직원들을 ‘월급루팡’으로 지목하고 서버팀을 모조리 구조 조정해버렸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월급을 주고 서버 관리팀을 재 신설했다. 

서버를 관리하는 데는 바이러스 등 외부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시스템을 수시로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개발자들이 사내 시스템을 점검하는 동시에 인터넷 환경 변화에 맞도록 최신 프로그램으로 교체해야 하며, 서버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각종 프로그램들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심지어 서버 관리실 온도도 관리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일들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결국 효율과 수익에 매몰된 사장은 회사가 구동되는 숨어있는 소프트웨어는 보지 못한 채 정작 자신이 물러남으로써 일단락됐다.
 

도매시장 손에 잡히지 않는 비용 절감
도매시장 소프트웨어 유통 완충지대 역할

 
사장 목이 날아갔다고 통쾌해 할 수 있으나,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사건에서 중요한 시사점 하나가 도출된다는 점이다. 바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비용’과 ‘효용’이다. 여기에는 공영도매시장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많은 언론에서 유통 골목 어귀에서 불로소득을 얻는다고 비판하고, 수익을 독점한다고 약탈적 도매시장이라 비난하나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 생태계를 조금만 뜯어보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절약하고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효용을 충족시켜 준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효용은 가격 탐색 비용이다.
 
가격을 산출하는 소프트웨어로는 경매제도가 있는데 이 시스템 내에서도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이 구동된다. 경매사는 농산물이 상장되면 이를 필요로 하는 중도매인에게 낙찰시켜주는 역할만 할 것 같지만 물량이 많을 때 출하주에게 물량 과잉 시그널을 보내 한없이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하고 구매력 있는 중도매인에게 구매를 독려해 안정적인 가격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유통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또한 수많은 유통 업체들이 가격을 산출하면서 발생되는 비용과 가격 결정 시 벌어지는 소모적인 다툼을 줄여주기도 한다. 제대로 된 가격 산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일부 축산물의 경우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격에 대한 잡음이 나오는 것만 봐도 가격 발견이라는 효용이 어느 정도의 파급 효과와 효용을 가지고 있는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플랫폼 독점 형성하면 ‘약탈적 경제룰’ 적용
생산자와 이익 공유 시스템 설계하면 제어 가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이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 중 결정적인 것은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다른 주체에게 떠넘긴다는 의혹 때문이다. 대부분의 민간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 이용 수수료를 인상함으로써 리스크를 생산자 혹은 소비자에 쉽게 전가시킬 수 있다.

최근 각종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카카오나 라이더를 활용하고 있는 배달업계가 공격받는 이유도 결국 사업을 독점하게 되면 수수료를 올릴 것이라는, 혹은 실제로 올리고 있는 ‘약탈적 경제룰’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출판업계에서 플랫폼을 약탈이라 규정짓는 책들을 쏟아낸 이유이기도 하다.
 
이익은 나의 것으로 환원하고 손실은 타인, 대부분 약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약탈적 자본의 본성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속성상 불법적인 약탈을 제외하고 이를 제어할 방법은 없다. 그럼 결국 의문이 남는다. 약탈적이지 않은 플랫폼은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지금의 민간 플랫폼은 납품하는 자와 소비하는 자 모두로부터 이익을 가져오는 구조인데 플랫폼에 진입하려는 기업이 많을수록(플랫폼이 성장을 거듭할수록) 플랫폼에 유·무형의 상품을 제공하는 진영(납품하는 자)이 약자로 전락한다. 때문에 납품하는 자(생산자)와 플랫폼 사업자를 한배에 태우면 약탈적 플랫폼을 제어하는 안전장치의 하나로 활용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생산자와 플랫폼이 함께 돈을 버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거래 과정은 늘 최저 비용으로 수렴해 나간다. 다만 최저 비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손실은 공공으로 전가되거나 약자들에게 위탁되는데, 약자들에게 위탁되는 과정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약탈적 플랫폼을 제어하는 현실적인 수단이 된다는 얘기다.

 
약자에게 손실 위탁하는 구조 차단해야
플랫폼끼리 경쟁 허용하는 개혁 의지 필요
 

공영도매시장이 그동안 줄기찬 비판에 직면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농산물 유통분야에서 튼튼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점은 이와 같은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들을 장착하고 약자에게 위탁되는 과정을 차단하는 장벽을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경쟁력을 요구받는 각자 도생의 파편화된 시장에서 국가가 제도적 안전장치(농안법)를 마련해 준 셈이다.
 
그렇다면 민간 플랫폼을 그렇다 치고 일정 부분 공적 역할을 하고 있는 도매시장 플랫폼은 왜 공격받고 있을까. 앞서 설명했듯 공영도매시장이 발산하는 보이지 않는 효용들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농민과 도매시장법인이 한배에 타는 이익 구조만으로는 공영도매시장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따라서 플랫폼에 상품을 납품하는 생산자와 플랫폼에서 소비하는 소비자의 후생을 높이기 위해서는 플랫폼 스스로 생산자를 발굴하려는 노력과 플랫폼끼리의 경쟁도 감수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결국 공영도매시장 개혁은 약자에게 손실이 전가되지 않는 시스템 보장 속에서 출발해야 하며 도매시장법인 스스로의 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약탈적 도매시장이라는 누명을 벗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