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년이 실패할 수 있는 농촌이 필요하다
[사설]청년이 실패할 수 있는 농촌이 필요하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10.29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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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농촌의 대표적 문제 중 하나는 지방 소멸 문제다. 최근 농업계에 다양한 심포지엄이 개최되는 데 가장 활발하게 토론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쪼그라드는 농촌에 대안은 있는가이다. 지방 소멸은 결국 청년 문제로 전이되고 농촌에 청년을 이식할 수 있는 정책 구상으로 파생된다.

그동안 정부는 농촌에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다양한 청년 정책과 예산을 기획해 왔다. 그중 롤 모델이 될 만한 사례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도시로 귀환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돈을 펑펑 쓰고도 정작 농촌에 정착하는 젊은이들이 없다는 논리다.

농촌에 정착하는 젊은이들의 숫자만으로 정책 효과를 판단해야 할까. 언론이나 정책 당국은 청년들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보통 청년을 농촌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거주지와 안정된 일자리를 떠올리지만 그들이 매력을 느끼는 일이 정작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는 '농촌 살기'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젊은이들의 경쟁률이 꽤 높다. 수 십대 일의 경쟁률을 보이는 곳도 허다하다. 이는 농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려는 시도도 있을 것이고, 실패를 묵인해 주지 않는 도시에서의 경쟁에 지쳐서 일 수도 있다.

농촌에서 태어난 젊은이들 중 대다수는 '농촌을 떠나는 법'을 고민한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최대한 농촌에서 해방되는 일이 성공의 바로미터로 생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작 토착 청년들도 떠나는 마당에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불러들인다는 발상 자체가 아이러니하지만 거꾸로 젊은이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그 이상의 매력이 농촌에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들 젊은이들에게 농촌이 해줄 수 있는 근본적인 일은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걸출한 농업 기업 중 실패를 맛보지 않은 기업은 없다. 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수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농촌에 정착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의미 없다. 한 곳에만 거주하라고 독려해서도 안 된다. 그들이 농촌이 ‘힙’하다고 느낄 때, 그리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와 격려가 농촌에서 나올 때 비로소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농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무대만 만들어준다면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청년들의 몫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청년 스타트업의 요람이 된 이유는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민간 기업들은 그들이 노력과 시도를 '펀딩'으로 응원했다. 실리콘밸리라는 상징적인 공간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스타트업 생태계다.

정부나 지자체 주도 하에 청년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농업 콘텐츠를 고민하는 일보다 실패할 수 있는, 실패해도 되는 농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청년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농촌이 부상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농촌이라고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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