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산책] 공영도매시장 고차방정식 어떻게 풀어야 할까
[가락산책] 공영도매시장 고차방정식 어떻게 풀어야 할까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11.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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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편집국장

최근 가락시장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거리가 넘쳐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조만간 공영도매시장 공공성 강화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 내 도매시장법인들의 지정조건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의견 수렴 중이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는 시장도매인을 도입하기 위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고 대아청과는 8개 품목으로 제한된 품목을 해제해 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이 모두 공영도매시장의 경쟁력 강화와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고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가락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편집자 주>


내수에 만족해 쇠락한 일본 통신 산업
갈라파고스 신드롬 신조어 탄생

갈라파고스 신드롬이 있다. 갈라파고스란 외부와 접촉을 끊고 수천 년 스스로의 생태계를 간직한 갈라파고스 섬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은 외부 충격 없이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이뤄 살아있는 과학적 사료로도 활용된다. 이곳은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이 진화론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갈라파고스가 고유종 보존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라는 부정적 이슈에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통신 산업이다. 2000년 일본은 전자기기, 전자결제 등 전 세계를 호령하는 뛰어난 통신 기술을 자랑했지만 내수 시장에 만족, 새로운 외부 기술 습득에는 소홀해 세계 표준과 멀어지면서 경쟁력이 급락했다. 

‘소니’나 ‘파나소닉’ 워크맨을 자랑삼아 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면... 아득히 먼 과거이긴 하지만 지금 애플의 스마트폰 정도의 위상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아무튼 학자들은 일본의 통신 산업 쇠락을 빗대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시작이 미래를 결론짓는 경로의존
기존 경로 택해야 하는 경로의 저주

‘경로의존’이라는 개념도 있다. 미국의 역사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시작한 시점에서 규정된 다양한 장치가 미래 가능한 결과들을 제약한다는 의미로 이 개념을 사용했다. 

가령 말 두 마리의 엉덩이 너비가 마차의 폭을 결정지었고 마차의 폭은 기차의 폭을 규정지었으며 기차의 폭은 로켓을 만드는 연료 추진체의 크기까지 제약하는 일로 연결됐다는 식이다.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크기가 미래를 쏘아 올리는 로켓 기술에 영향을 미치다니. 

어쨌든 현재 시점에서 로켓연료 추진체의 크기를 바꾸고 싶어도 그물처럼 연결된 관련 분야의 기준들이 설정되는 바람에 기존 경로를 택할 수밖에 없어 '경로의 저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락시장 ‘갈라파고스·경로의존’ 비판 직면
관련 산업 피해 우려 경로 이탈 불가

앞에서 설명한 두 가지 개념을 살펴보면 현재 공영도매시장 그중 가락시장이 직면하고 있는 비판의 핵심이 집약된 느낌이다. 

그중 하나는 디지털로 무장하고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에 상당량의 농산물이 공영도매시장에서 거래되고 여기에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수도 제약됐다는 비판인데, 즉 공영도매시장이 갈라파고스처럼 기득권을 지키면서 외부 변화나 내부 개혁에 소홀해 변화무쌍한 유통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수십 년간 도매시장에 의존하는 농산물 유통 체계가 만들어지다 보니 이와 관련된 전후방 산업이 거미줄처럼 얽혀 결국 혁신적인 안이나 개혁을 받아들일 수 없게 돼버려 '경로의 저주'에 빠졌다는 비판이다. 

특히 도매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수많은 인력과 도매시장 소프트웨어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농민이다 보니 기존 경로에서 이탈할 경우 농민 그리고 관련 산업의 피해가 막심해 도매시장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파괴적 혁신을 하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에 경로의 저주에 빠졌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공영도매시장 개혁 의견 분분
대아청과도 품목 확대 건의 

지난 몇 년간 공영도매시장 둘러싼 이 같은 비판 때문에 공영도매시장을 개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조만간 농림축산식품부가 공영도매시장 공공성 강화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 내 도매시장법인들의 지정조건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의견 수렴 중이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는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을 도입하려는 취지의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공영도매시장 바꾸기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최근에는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 중 하나인 대아청과가 품목 확대를 개설자에게 건의하면서 도매시장 개혁 움직임에 화력을 더하고 있다. 대아청과는 현재 배추·무·양배추 등 8개 품목만을 거래할 수 있는데 이를 청과부류 전체로 확대해 달라는 것이다. 대아청과 주장의 핵심은 법인 간 경쟁을 통해 출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폭을 넓힐 수 있고 시장도매인 도입과 같은 외부 경쟁 이전에 내부의 공정한 경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아청과는 지금까지 도매시장법인 지정 조건 도래 시기인 5년마다 지속적을 품목 확대를 주장해 왔는데 현재 도매시장 안팎에서 요구되는 개혁 바람과 2023년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의 완공, 도매시장법인 스스로의 개혁 의지 등을 고려해 볼 때 지금이 품목 확대의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도매시장 공공성, 고차 방정식 어떻게 풀까
세 가지 선택지 있지만 난제

최근 가락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논쟁들은 공영도매시장의 발전과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가락시장 개설자인 서울특별시와 유관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공영도매시장 공공성 강화 방안을 내놔야 하는 입장에서 서울시의 선택은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존 도매시장법인들의 역할을 강력하게 독려하는 방안이다. 법인 스스로 적극적인 산지 발굴 노력과 우수 고객 영입 의지를 독려할 수 있는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적절히 배합하는 방안이 거론될 수 있지만 이는 지금까지 법인 스스로의 노력이 미진한 점, 기존 시스템에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부족하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로 지적된다.

두 번째는 시장도매인 도입이다. 기존 경매 제도와 병행해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면 법인과 시장도매인의 경쟁을 통해 법인 스스로 적극적인 산지 발굴을 유도하고 출하자에게 출하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기준 가격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 법인과의 공정 경쟁이 불가하다는 점, 농민 수취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 등이 단점으로 꼽힌다. 

세 번째는 대아청과의 품목 확대다. 현재 대아청과의 무·배추 취급률은 각각 85%, 89%이고 양배추의 경우는 95%에 이른다. 취급 품목 확대를 통해 특정 품목 과점을 해소하고 일정 부분 출하 선택권을 보장하는 등 정부에서 주목하고 있는 주요 정책 과제들을 연착륙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에 매력을 느낄 수 있으나 중도매인이나 다른 법인들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와 도매법인이 꺼리는 채소류의 안정적인 유통 등에 대한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쉽지 않은 과제로 남는다.


공영도매시장 ‘발전’·‘개혁’ 재정의 필요
몸집 경쟁보다 도입 취지 살펴야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가락시장 공공성 강화 방안으로는 1. 기존 도매시장법인들이 역할 강화 2. 시장도매인 도입 3. 대아청과의 품목 확대 등의 선택지가 생긴다. 물론 검토조차 되지 못한 사안도 있고 논란이 불거져 추진되기 어려운 과제들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고민이 필요한 문제들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선택은 어떤 기본 전제에서 출발해야 할까. 우선 공영도매시장의 ‘발전’과 ‘개혁’이라는 용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일반 기업처럼 매출액이 늘어나고 공룡처럼 몸집이 비대해지는 양적 성장이 공영도매시장의 본래 DNA 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영도매시장의 첫 번째 존재 목적은 농산물의 원활한 유통과 적정 가격 유지,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 생활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다. 즉 공영도매시장의 발전과 개혁은 이 같은 논리 안에서 전개돼야 하며 이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공영도매시장의 발전과 개혁이라는 용어가 재정의 돼야 한다.


비효율적 제도 맥락으로 이해해야
농민과 소비자 보호가 우선

이쯤에서 재밌는 얘기를 해볼까 한다. 뜬금없는 진화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중 가장 진화된 동물이라고 여겨지지만 인간의 모든 기능이 가장 효율적일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사람의 눈은 맹점을 가지고 있어 생물학에서는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진다. 사람은 2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맹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됐고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탓에 맹점을 가지게 됐다. 오히려 문어와 같은 두족류의 눈은 사람의 눈보다 월등하게 진화했다. 

이 세상 모든 제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시스템이라 해도 그때그때 봉착하는 환경, 제도, 사회적 분위기 등 맥락(context)에 따라 정답이 될 수 있고 오답으로 돌변할 수 있다. 서두에서 설명한 ‘경로의존’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이 맹점을 가지게 된 이유는 두족류의 눈처럼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뒤바꾸는 '파괴적 혁신'보다 맹점을 가지고 진화하는 '경로의존'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도매시장 진화를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만 결국은 도매시장의 도입 취지로 귀결된다. 앞에서 설명한 농산물의 원활한 유통과 적정 가격 유지, 생산자와 소비자 보호가 도매시장의 생존 이유다. 어떤 선택지를 고를지는 서울특별시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손에 달려 있지만 갈라파고스나 경로의 저주와 같은 비판에 직면하더라도 도매시장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을 써 낸다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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