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의 스타트업 기록공책] '마장축산시장+도매시장+당근마켓' 장점만 뽑아 온라인에 담았다 '미트박스'
[박현욱의 스타트업 기록공책] '마장축산시장+도매시장+당근마켓' 장점만 뽑아 온라인에 담았다 '미트박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11.25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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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비용 다이어트로 업계 협업
온라인 축산 유통 다크호스로 부상
7만 식당·1만 정육점과 거래 이상무


"가격은 이만큼" 결심이 서면 스마트폰을 켠다. 가장 잘 팔릴만한 플랫폼을 찾아 헤맨다. "여기다" 싶으면 구구절절 이 상품을 왜 사야 하는지에 대한 해설은 아니더라도 '있어 보이게' 올린다. 빨리 팔아치우고 싶으면 가격을 조금 낮추고 인기 있겠다 싶으면 조금 비싸도 된다. 물론 업계가 감당 가능한 심리적 저지선에서.

소비자들도 인기 있는 플랫폼을 찾는다. 종류도 많고 가격대도 풍부한 '소위 검증된 마켓'을 점찍는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거래가 가능하니 이것만큼 좋은 플랫폼이 어딨나 싶다. 최근 온라인 플랫폼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다.

코로나는 비대면 시대도 앞당겼지만 온라인 플랫폼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온라인에 주력하는 업종들은 줄줄이 '잭팟'을 터트리고 있다. 통계청을 들여다보면 '예측'이 '확신'으로 바뀐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1년 9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을 보자. 모바일 쇼핑 거래액은 작년 9월과 비교해 1년 만에 23.9%나 훌쩍 뛰었다. 11조 원을 넘어 12조 원 클럽 입성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모바일에서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대표적인 상품 중 하나인 축산물도 예외 없다. 수십 년 전부터 온라인으로 갈아타려는 움직임이 많았지만 좀처럼 성과가 없었던 축산물은 최근 유행처럼 온라인 바람이 거세다.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축산물 유통 시장. 여기에 출사표를 던진 스타트업이 있다. 한우, 한돈, 오리 등 축종을 가리지 않고 온라인에 축산 장터를 연 미트박스를 해부해 보자. 

 
"이건 아닌데"
 
미트박스 창업자 김기봉 대표가 축산물 유통시장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기존 유통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틈새시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모든 상품이 마찬가지지만 축산물은 유통과정에서 마진이 붙는다. 경로가 불분명하면 마진의 출처도 안갯속이다.

축산물은 축종마다 경로가 제각각이어서 중간 밴더, 소위 육가공업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의 모세혈관처럼 전국의 점조직처럼 분포돼 있어 영세 업체도 부지기수다. 이 과정에서 채권이 발생하고 미수금으로 거래하는 업체가 넘친다.

축산 유통의 핵심 포인트 두 가지를 꼽으라면 '신용'과 '가격'이다. 신용이 생기면 마진 독식이 사라지고 가격의 거품이 빠지면 없던 신용도 생긴다.

기존 축산 유통 관행 중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미수’다. 영세 업체들이 난립하다 보니 미수는 하나의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일수록 미수에 목을 맨다. 문제는 미수에서 발생하는 금융 비용을 판매가에 붙여 팔다 보니 단가 상승은 불가피하다.

"신용거래와 부실채권을 잡고 유통과정을 줄여 가격을 낮춘다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김 대표가 타깃팅 한 포인트다.
 

“온라인 축산물 민간 도매시장”
 
국내에서 도매시장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영도매시장의 경우 유통인이 독점했던 정보 비대칭을 훌륭히 견제했다. 농민이 출하하면 꼭 받아줘야 하는 시스템과 도매시장의 실질 운영을 담당하는 도매시장법인들의 수익 구조도 농민과 한 배에 태우면서 과거 칼질이 난무했던 약육강식의 농산물 유통시장을 정리했다. 농민이 6~7%의 상장 수수료를 내고 출하하면 도매법인도 그에 따른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수십 년간 공영도매시장이 승승장구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도매시장을 축산물만 주력으로 온라인에 옮겨왔다. 그동안 플랫폼은 많았다. 오픈몰들이 온라인 장터 역할을 했고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적게는 30%, 많게는 40%를 요구하니 농축산 업계는 일부를 제외하고 굳이 오픈몰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후에도 많은 업체들이 생겼다. 하지만 B2C 중심이었다. 도매시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미트박스는 온라인에 도매시장 구조와 흡사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식당이나 식자재 마트 등 소상공인이 주요 타깃인데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당근마켓과도 거래 형태가 닮았다. 육류 업체가 플랫폼에 축산물을 올리면 식당에서 낙찰하는 식이다. 플랫폼 이용 수수료는 평균 3%.

플랫폼이 작으면 직거래만으로 의의가 있지만 볼륨이 커지자 ‘기능’들이 생겼다.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가격 발견’ 기능이다. 플랫폼에 각종 시세를 한눈에 보는 기능도 탑재하면서 자체 플랫폼에서 추출되는 낙찰 가격은 데이터화돼 상인들 사이에서 ‘축산물 기준가격’으로 활용될 정도다.

도매시장에 정산 기능이 있듯, 이곳에서도 정산뿐만 아니라 배송과 영업, 마케팅, 관리와 같은 서비스도 일괄 제공한다. 이쯤 되면 민간 온라인 축산물 도매시장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아! 이렇게 했군”
 
축산물 온라인 판매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대량으로 판매할 때가 문제다. 기존에는 개별적으로 무게를 측정해 판매가를 정하고 주문한 중량과 일치하는 상품을 각각 찾아 출고하는 방식을 썼다면 미트박스는 상품의 최대 중량을 일단 주문처리하고 출고 시 실계근값으로 정산, 차액을 고객 예치금으로 입금하는 방식을 특허화했다. 자동 소터 시스템은 기본. 물류 전용 단말기를 도입해 유통의 디지털화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국의 물류 배송망 구축도 인상적이다. 과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이버거래소가 자체 유통망을 보유하기보다 기존 유통망을 활용하는 방식을 활용했듯 미트박스는 오뚜기라는 식품 업체와 머리를 맞댔다. 오뚜기가 보유한 기존 유통망을 활용해 600대의 냉동·냉장 탑차가 구매 익일에 문 앞까지 배송, 오배송 오류를 최대한 줄였다. “아! 물류에 소요되는 투자 리스크를 이렇게 줄였군.”
 

“유통의 선택권”

보통 유통이 공룡이 되면 유통에 납품하는 사람들은 을이 되기 십상이다. 미처 판매처를 확보하지 못한 사업체들끼리 경쟁을 벌이는 데다 한번 공룡 유통 업체와 거래를 트면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돼서다.

당연히 납품업자들은 품질은 좋고 가격이 싼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고 출혈 경쟁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유통끼리의 공정 경쟁이 많을수록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자와 소비하는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특히 축산물처럼 고착화된 시장의 경우 유통선이 많으면 납품업자의 납품 선택권이 늘어나고 소비자도 구매 선택권도 늘어난다. 미트박스의 장점이라면 축산물 유통 분야에서 납품업체나 구매업체들에게 또 하나의 선택권을 부여했다는 데 있다. 그것도 온라인으로.

 
“인기 좋다”
 
앞에서 설명한 장점 때문일까. 최근 미트박스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다. 반응은 시장에 대한 더듬이가 가장 민감한 식당부터 시작됐다. 2015년 5천만 원에 불과했던 월 거래액은 2021년 6월 262억 원으로 폭증했고 이 중 식당과의 거래액은 154억 원으로 약 7만 개의 일선 식당이 미트박스 매출에 일등 공신이 되고 있다. 기존 축산물 유통경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자처했던 정육점도 약 1만 곳과의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인기가 좋다 보니 자체 PB 상품까지 론칭했다. 미트박스의 회심작 '당당한우'와 '당당한돈'이다. 해당 상품은 '품질은 고급 가격은 착하게'를 내세우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입소문이 나자 일반 소비자 구매물량도 늘고 있다. 특히 캠핑족들로부터의 인기도 꾸준히 증가하면서 2015년 시작된 미트박스의 시작은 회원 수 20만 명을 불러 모으며 축산 유통업계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관전 포인트”
 
투자 업체도 군침을 흘린다. 2018년 IMM 등으로부터 150억 원의 투자 유치를 시작으로 2018년 알토스벤처스 등으로부터 80억 원, 2016년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30억 원의 투자를 받아 시리즈 C까지 총 260억 원의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기존 축산 유통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출발한 ‘미트박스’. 마장동축산시장, 공영도매시장, 당근마켓 등의 장점만을 뽑아 온라인 플랫폼으로 담아냈는데 축산물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수산물까지 확대하겠다는 사업 계획까지 밝혔다.

온 나라 산업 전반이 디지털 혁신으로 이동하는 지금 ‘미트박스’의 질주를 지켜보는 것도 유통업계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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