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 2.0-누구를 위한 등급판정제도인가?
축산업 2.0-누구를 위한 등급판정제도인가?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2.10.18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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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따져보니 결국 배합사료 회사만 이익

축산물등급판정 기준 시대상황 고려 개편 필요

축산물 등급판정제도는 고기, 젖, 알 등 각 산물의 물리적 품질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축산농가는 규격화된 축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 기준으로 활용하고 유통업자와 소비자는 품질에 따라 축산물을 사고 팔 수 있어 합리적이고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유익한 제도다.
하지만 이러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축산물 등급판정 세부기준이 시대적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경직돼 있어 생산자는 과도한 생산비에 어려움을 겪고 소비자는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식생활을 알게 모르게 강요당할 뿐만 아니라 유통 및 가공업자도 판매도 할 수 없는 불가식 지방을 과도하게 함께 구매하는 비효율을 유발시키고 있다.

배합사료 배불리는 한우 등급판정 사업

등급판정사업은 단순히 거래를 위한 기준을 넘어 가축 개량 방향 그리고 가축 사양프로그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현재 축산시스템을 유지·지탱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한육우 등급판정제도가 근내 지방에 너무 치우쳐 있다 보니 높은 등급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데 있다.
특히 2004년 한육우 육질 판정 기준인 근내지방도를 7단계에서 9단계로 세분화하고 1++등급을 신설한 것은 고급육 생산을 위한 농가들의 투자에 불을 붙였고 이로 인해 사육기간이 과도하게 길어지고 농가들은 과도한 생산비에 허덕이게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등급제도가 배합사료 가격이 낮을 때야 문제가 덜되겠지만 고곡물가와 식량부족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국내 식량자급율을 낮추고 농가들을 무의미한 경쟁에 치닫도록 해 한우산업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배합사료업계에 과도하게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현재의 기준에 의해 생산된 한우의 경우 피하 및 내장 등에 지방이 과도하게 침착돼 불가식 부위가 한우 마리당 100~200kg 대에 이르고 소비자들은 기름이 잔뜩 낀 고기가 제일 좋은 고기로 오해까지 사며 국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장 상황 외면한 원유등급제도

낙농의 경우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등급판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지방, 세균, 체세포 등을 표준화해 일정 간격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기준을 정부가 고시했으나 업체별로 자율적으로 기준을 책정하도록 했고 지금은 낙농진흥회의 원유가 산정기준을 대다수의 유업체가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원유가 산정체계의 기준 중 원유에 물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유지방 인센티브를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도입된 젖소 품종인 홀스타인은 유전적으로 평균 3.5%대의 유지방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서는 더 높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한 농가들의 노력이 더해지며 국내에서는 평균 4%의 유지방이 나오고 있다. 유지방 중심의 가축개량과 값비싼 지방 보조사료를 먹이는 등의 노력 덕분인데 이러한 부분이 낙농분야 사료비용을 올리는 주범이고 소의 경제수명을 단축시켜 생산비가 과도하게 올라가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과도한 체세포 기준 설정으로 농가들이 젖소를 일찍 도태 시키게 만드는 등 현재의 원유가 산정체계는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러한 비용증가는 고정가격제인 낙농분야의 특성상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는데 만약 소비자들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안되는 유지방 올리기에 낙농업계가 힘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엄청난 후폭풍을 맞게될 것이 분명하다.

품목 현실 반영 못하는 양계등급판정 사업

닭과 계란의 등급판정제도의 경우 닭고기와 계란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등급판정사업을 하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수익 사업일 뿐 생산농가나 유통업자, 소비자 누구도 필요성이나 이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닭고기, 계란의 등급제 참여율이 이를 반영하는데 전체 계란의 5%, 전체 닭고기의 10~15% 내외가 등급판정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계란 구매 기준은 양과 신선도, 닭고기도 포장유통의무화로 브랜드와 신선도만 따질 뿐 등급이 있는지도 모르는 소비자가 대다수고 여기에 샘플을 뽑아내어 검사해 전체 닭고기와 계란의 등급을 부여하고 있어 소비자와 생산자, 유통업자들로부터 등급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일부 대기업들이 이 등급제를 활용해 추가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결국 농가들의 소득향상에 기여를 해야 하는 등급판정제도가 일부 대형소매유통업체와 식품대기업 배만 불리는 사업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등급판정제도 합리적 사양·소비기준으로 거듭나야

등급제는 시대상을 반영할 줄 알아야 한다.
고열량 축산물 생산에 집중하도록 하고 있는 현 등급제는 저지방 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못해 소비를 정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6년 등급제 개편을 통해 쇠고기의 프라임과 초이스 등급에 대한 근내지방 기준을 완화해 고급육생산에 따른 비용 부담을 농가들이 덜 수 있었고 국민건강에도 기여하게 됐다. 우리도 고급육의 기준 재설정을 통해 비용과 국민건강 양쪽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십 수 년째 논의만 하고 있는 낙농부분 원유가 산정체계의 경우 지방에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줄이고 기본 유대에 반영시키는 등 불필요한 도태를 유발시키는 체세포 등급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계란과 닭고기의 경우 현행 등급제를 폐기하고 계란은 ‘식용란’, ‘가공란’, ‘등외’로 단순화 시키고 등급판정요원에 의한 샘플검사가 아닌 전체 계란에 대한 기계식 등급판정제도를 하루 빨리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닭고기의 경우도 현재 기계식 등급판정을 할 수 있는 업체들이 있는 만큼 이들 업체를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점차 그 범위를 전체로 확대할 필요도 있고 등급도 소비자용, 가공용, 등외로 단순화시켜 시장 상황도 반영하고 소비자의 선택 기준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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