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유가공산업 열전 ⑴ '분유'
낙농유가공산업 열전 ⑴ '분유'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2.11.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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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우유보다 분유가 먼저였다”

조제분유 치열한 경쟁, 서울우유·네슬레 시장 철수

유제품 중 가장 먼저 대한민국 국민이 소비하기 시작한 품목은 무엇일까?
당연히 백색시유일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흰우유에 앞서 구호품으로 들어온 분유가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과거 신문을 뒤적여 보니 1950년대 유니세프와 대한민국 정부와의 협정으로 분유, 연유 그리고 간유를 국내 고아원에 있는 영아와 유아들에게 보급하기로 하고 문교부와 협의를 거쳐 초등학교까지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원조분유의 국내 보급은 더욱 늘어나게 되는데 한국전쟁 직후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난리 통에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도 없어 해외원조 식량에 근근이 의지했기 때문으로 원조농산물인 밀가루와 분유는 없어서는 안 될 식량이었다.
밀가루가 탄수화물 즉, 열량 공급원이었다면 분유는 마땅한 단백질 공급원이 없던 50~60연대 국민들의 체위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1972년 국내 낙농업이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구호용 분유에 대한 국내 반입을 중단키로 하면서 20여 년간 이어진 원조분유의 반입은 끝이 나고 본격적인 국내산 원유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백색시유를 비롯한 여러 유제품이 출시가 됐지만 분유의 인기는 시들지 않았다. 지금은 영유아용으로 분유가 이용되고 있지만 당시 백색시유는 냉장고의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장기보관이 가능한 분유의 수요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분유는 콜드체인시스템 보급과 함께 점차 시들해졌고 대신 영유아용 조제분유시장 중심으로 제품이 된다.
실제로 서울우유협동조합이 1965년 영유아용 조제분유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2년 뒤인 1967년 남양유업도 조제분유 시장에 뛰어 든다. 1972년 매일유업까지 조제분유 시장에 뛰어 들면서 이들 유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조제분유 시장의 활성화는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가능케 한 선물로 또 신여성들의 모유수유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면서 분유수유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유업체들은 영유아-청소년기에 집중되는 유제품 소비층을 잡기 위한 무한 경쟁 속으로 들어갔고 특히 조제분유 시장은 흰우유보다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품목인지라 업체들의 수익에 직결되고 다른 유제품과 달리 유통기한도 길어 콜드체인시스템이 구축되기 이전인 1970년대 효자품목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여럿 낳던 베이비붐 세대를 지나 이제 하나 또는 둘만 낳는 것이 트랜드가 된 1970년대 중반부터는 조제분유시장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분유수유인구는 줄었지만 아이들에게 향한 부모들의 투자가 크게 늘면서 좀 더 좋은 것을 먹이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구가 상대적으로 강해진 것이다. 이러한 트랜드 변화를 감지한 유업체들은 광고 판촉전에서 이제는 신제품 경쟁으로 이어졌고 조제분유 고급화로 시장은 급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초기 분유설비는 철제원통형 드럼을 뜨겁게 달구고 표면에 우유를 분사시키고 이렇게 건조된 분유를 드럼통에서 긁어 내는 식으로 제조가 됐다.
이러한 제조법은 영양소 파괴가 많이 일어나고 단백질 변형 등으로 영유아들의 소화에도 어려움을 주었고 결정적으로 탄내 비슷한 가공 취까지 발생해 분유품질경쟁 과정 중 퇴출이 되고 우유를 분무한 후 열풍으로 건조하는 설비로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이러한 설비경쟁 신제품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조제분유업계 맏형인 서울우유가 1988년 조제분유 사업을 포기하고 백색시유와 가공유 등 신선제품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서울우유의 사업포기는 예견된 것으로 협동조합인 서울우유의 경우 오너 경영을 하고 있는 남양·매일과 달리 의사결정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고 대규모 고정투자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이 거세 남양과 매일과의 정면승부를 버거워 했다.
분유시장을 놓고 벌인 치열한 경쟁은 서울우유뿐만 아니라 네슬레 등 다국적기업까지 철수시켰고 다국적기업과 서울우유가 철수한 조제분유 시장은 남양유업이 안정적으로 시장을 선도하며 매일유업이 뒤를 좇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후 파스퇴르유업이 후발주자로 남양유업과 상표권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던 남양산업을 인수한 후 이름을 바꾼 일동후디스가 조제분유시장에 진출, 현재의 조제분유 시장 구도가 완성이 된다. 현재 조제분유 시장은 남양유업이 선두업체로 뒤이어 매일과 일동후디스가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히 경쟁하는 구도이다.
고부가가치의 조제분유 시장은 계속 승승장구할 것으로 보였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출산율이 저하되면서 2000년대 들어 조제분유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 등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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