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배추’로 분석한 유통단계 축소의 허와 실
‘가을배추’로 분석한 유통단계 축소의 허와 실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3.03.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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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폭락기에 더 커 보이는 유통비용 실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 현장방문지로 삼은 농협유통의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유통구조를 꼭 개선시켜 농산물의 가격 안정을 시키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 자리에는 다수의 유통전문가들이 배석했다. 유통단계가 너무 많다보니 농산물에서 차지하는 유통비용이 50%에 육박해 소비자는 너무 비싸 힘들고 농민은 제값을 받지 못해 불쌍하다는 게 요지다.
6~7단계에 이르는 유통단계를 축소하면 어느 정도의 유통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까.
유통비용은 상거래 비용과 물류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상거래 비용은 소유권이전 시 발생하는 비용으로 상장수수료, 소개료, 상거래에 소요되는 일반관리비, 상인이윤 등이 여기에 속한다. 물류비용은 운송비, 보관비, 포장·가공·선별비, 하역비, 감모·청소비, 물류관리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유통비용은 품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전체 농축산물의 평균유통비용은 소매가의 43%로 시중에서 구매하는 농축산물의 원가는 소매가를 100으로 보았을 때 농가수취가격이 57%로 가장 높고 6단계를 거치는 동안 유통인들이 43%를 나눠 갖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각 유통주체가 산술적으로 6~7%의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한 단계를 줄일 때마다 농산물 가격이 6~7%씩 내려갈 수 있고 정부가 3단계로의 축소를 목표로 내건 만큼 20% 가까이 농산물 가격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유통비용은 상거래 비용과 물류비인데 줄여도 상거래 비용인 상장수수료와 얼마되지 않는 단계별 마진 정도가 조금 줄어들 뿐 물류비용은 고정비용이기 때문에 감소요인은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아니 대부분 물류비용은 인권비, 운송비여서 물가상승, 에너지가격 상승, 인건비 상승으로 비용은 매년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 2011년 1월 공정위가 소비자단체에 의뢰해 조사한 쇠고기 유통비용 조사 결과 수년간 유통단계별 비용 그리고 유통인 마진은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는게 당시 발표 자료의 핵심 내용이다.
유통인들은 인건비 상승과 물류비용 상승을 규모의 경제로 이를 해소해 왔고 최근 한계에 와 있다는게 유통업계의 이야기다.
유통비용 감소는 농산물 가격 변동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유통비용이 과다하다는 지적을 늘 받고 있는 배추는 유통비용이 시기에 따라 80%에 육박할 때도 있다.
산술적으로만 보아도 너무 과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통비용이 과하다기 보다는 배추의 가격이 너무 싸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가을배추 유통비용을 살펴보니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고 2011년에는 10% 가까이 급상승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배추가격이 폭락했을 때 배추 유통비용은 올라가고 배추가격이 폭등했을 때 유통비용은 낮게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유통비용은 고정돼 있고 배추가격의 등락에 따라 유통비용이 과하게 보일 수도 있고 낮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유통비용이 문제가 되는 때도 농산물 가격이 올랐을 때보다는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을 때 문제가 된다.
산지가격 하락에 비해 소매가격 하락폭이 크지 않은 이유도 전체 배추가격에서 차지하는 원가가 배추 조달가격 보다는 배추를 운송할 때 발생하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농산물가격 안정을 이유로 유통단계 축소를 지시한 것은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잘못된 정책적 판단을 했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아쉬운 것은 지난번 농협 하나로클럽에서 유통전문가들과의 간담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을 고쳐주는 자리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농업전문가인 이동필 장관을 필두로 다수의 유통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지시에 아무도 “아니요”라고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곧바로 언론은 유통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보도를 앞 다투어 내어 놓고 정부도 대통령 지시와 언론의 힘을 얻어 또 다시 유통단계 축소를 위한 작업에 들어가려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유통비용 줄이기 농산물가격 안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가. 5년간 공부하다 보니 내린 결론은 유통비용 줄이기가 아니라 수급안정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정권말기 농산물 가격 안정 정책은 수급조절에 집중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통단계 축소 지시 뉴스를 접하고 어떤 유통단체장은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가 났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화로 그칠 일이 아니라. 유통전문가들을 동원하고 유통단체들이 연대해 유통업계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을 제대로 설명하고 현재의 유통환경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야 쓸데 없는 곳에 헛힘을 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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