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농 밟고 일어난 축산업 10년 호황…그 끝은 버블붕괴
폐업농 밟고 일어난 축산업 10년 호황…그 끝은 버블붕괴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3.04.0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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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4주년 특별기획>우루과이라운드 타결 20년 우리 농업·농촌에 남긴 것은

규모화·품질고급화·브랜드화 등 ‘경쟁력 강화 정책’ 성과 허상에 불과

공급과잉에 경쟁력 강화 담론 사라지고 수급 조절 이야기만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는 1930년대의 대공황을 계기로 각국이 보호무역정책을 경쟁적으로 실시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등 보호주의 무역정책의 문제점이 제기됐고 이에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경제질서 확립을 위한 논의가 이어지다 1948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The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이 성립됐다.
이후 세계무역질서는 자유무역과 무차별원칙을 표방한 GATT를 기본 축으로 유지됐으나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지역주의와 보호주의가 심화되고 일본·서독·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경제력 급상승으로 다극화 체제로 전환되면서 국가 간 통상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무역질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요 국가 간의 통상마찰의 주된 품목은 농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인 1960~70년대는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베이비붐으로 인해 인구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식량이 매우 부족했다.
하지만 냉전체제 하에서 국가 간 교역은 많은 제약을 받아 식량의 국제 조달은 지금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에 1970년대에 농업보호 정책이 가속화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가 농업보호를 통한 농산물 생산 증대에 집중했다.
식량의 외부조달보다 자체 증산에 집중하던 사이 녹색혁명이 일어나고 미국과 유럽 등 주요 농업선진국들은 1980년대에 식량의 과잉 생산에 따른 가격 폭락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으며 계획생산에 의한 배급제를 실시 중이던 공산권과 달리 미국과 유럽은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주요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막대한 수급조절 비용을 부담하던 미국과 유럽은 농산물 해외 수출에 집중하게 되고 막대한 수출보조금을 추가로 지불하면서 재정상황은 악화되고 만다.
미국과 유럽의 수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과 무차별원칙을 표방한 GATT체제 내에서도 농산물은 관세철폐 예외 품목이었던 지라 수출은 말처럼 쉽지 않았고 이를 손봐야 한다는 움직임이 농산물 수출국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다. 여기에 카길과 벙기와 같은 곡물메이저의 로비가 힘을 보태면서 우루과이라운드 출범의 분위기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1983년 5월 윌리암스버그 경제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무역자유화 교섭의 실현에 노력할 것이 합의된 이후 세계통상장관회의, GATT 회의 등 3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1986년 9월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에서 뉴라운드를 개시하기 위한 각료선언이 채택되면서 우루과이라운드가 개시됐다.
농산물에서 시작한 우루과이라운드는 섬유 등 상품무역 전체로 확대되고 이후 서비스, 지적재산권 등으로 판이 넓어지면서 협상 타결을 어렵게 하고 말았다.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 대해 협상이 이뤄지다 보니 당초 예상과 달리 난항을 거듭해 1993년 12월에 타결됐고 1995년부터 발효돼 WTO 체제가 출범됐다.
이 UR협상에서 주목할 것은 제한적으로 이뤄졌던 농산물이 주요 교역 품목으로 떠올랐다는 점과 대한민국이 국제수지상 적자를 이유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었던 관세무역일반협정의 국제수지조항을 졸업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농산물 수입 개방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농산물에 대한 수입쿼터 폐지, 관세감축 등 수출입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농업보조금, 농산물의 수출보조금 제한 등 국내 농업정책에 대한 간섭까지 받게 됨에 따라 정부의 농업부양 정책을 가로막는 구실로 자리잡게 했다.


UR 타결과 농업경쟁력 강화 정책

농산물에서 시작된 협상테이블은 상품시장을 넘어 금융 등 서비스 분야까지 협상범위가 넓어지면서 지루한 협상을 끌어오다 1993년 12월 UR은 타결된다.
우리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기 이전인 1990년을 전후 협상타결을 기정사실화하고 해외선진 농업국가와의 경쟁에서 농업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각종 경쟁력 강화조치를 취하기에 이른다.
정부는 농산물 시장 개방 이후 우리 농업인들이 미국과 같은 농업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공장형 농업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농장은 더욱 커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농업인의 숫자는 지금보다 1/10 정도는 줄어야 한다. 그래야 농장의 규모화를 확실히 이룰 수 있어 농축산물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규모의 경제를 통해 어느 정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UR협상은 타결되고 어느 정도 선방했다고 정부는 자평했다. 쌀을 관세품목에서 제외시켰고 꿀, 낙농제품을 포함한 민감품목도 고율관세를 유지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만 낙농을 제외한 나머지 축산부분은 18~40% 관세만 남겨두고 시장을 완전히 개방했기 때문에 축산업계의 반발이 주를 이뤘다. 협상이 마무리 되는 시점에 정부는 농업계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이전에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투·융자 사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영농규모의 확대와 전업농 육성사업을 큰 틀로 하는 농어촌발전종합대책은 1989년 이미 발표됐고 이후 전업농가의 영농 규모화를 유도할 각종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1990년대는 대부분의 정책이 집중된다.
정부는 개방 일정이 2000년 전후로 정해지자 42조원의 농어촌 투·융자 계획을 3년 앞당겨 1998년까지 조기 집행을 통해 규모화와 시설현대화에 농가들이 나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쌀농사 위주의 농업을 시설원예와 축산 등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 품목으로의 전환을 유도했다.
당시 개방을 앞둔 농촌의 분위기는 이대로 폐업하느냐 아니면 정부자금을 지원받아 농장의 규모를 늘려 개방에 대응하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농가에서는 자급수준의 농사만을 짓고 농업 외 소득에 의존하는 생존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규모화에 가장 성공한 분야는 축산업이다.
1990년대 경제발전은 축산물 수요의 증가로 이어졌고 축산업을 통해 돈을 번 농가들이 늘어나면서 대규모 시설투자에 나서게 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농지로도 양돈과 양계부분 같은 경우 규모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30~40대 젊은 농업인들이 축산업에 뛰어 들었다.


예기치 못한 구조조정과 축산업 호황

정부의 투·융자사업에 따른 규모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점에 IMF로부터 대규모 구제 금융을 받는 외환위기가 도래했고 사료가격이 급등하면서 축산업계 전체로 불안감이 엄습한다.
당장 현찰을 들고 가도 먹일 사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개방까지 코앞으로 다가오자 상당수의 축산소농들은 폐업을 선택한다.
외환위기·시장개방이라는 위기가 중첩했고 정부의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확대라는 기회가 교차했던 1990년대를 지나면서 우리 축산부분은 소농위주에서 중대형농가 위주로 산업이 재편됐다. 이후 외환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해내자 얼어붙었던 축산물 소비도 살아나기 시작해 축산업은 사상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축산물 가격의 급등세는 한우부분에서 두드러졌는데 1990년대 말 엄청난 수의 한우가 도축되면서 사육기반이 무너졌고 미국에 광우병이 발병하며 미산쇠고기의 국내 수입이 중단되는 등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작용했다. 이후 외환 위기에서 살아남은 한우농가들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중소농 위주의 한우산업도 본격적인 규모화의 길을 걷게 된다.


개방 그리고 투·융자 사업의 효과

개방이 축산에 집중된 탓에 정부의 투·융자사업도 축산부분에 집중됐다.
당시 정부의 축산부문 주요 정책을 살펴보면 시설현대화와 규모화, 계열화, 품질고급화, 브랜드화 등에 집중됐는데 과연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축산업계는 개방일정과 금융위기가 중첩됐다.
생각지도 못한 구조조정으로 축산업계는 규모화를 위한 시장 정리가 이뤄졌고 설상가상인지 1999년·2002년 구제역, 2003년 고병원성 AI가 발병하면서 구조조정의 방점을 찍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수입축산물이 물밀 듯이 들어 올 줄 알았는데 유럽과 미국의 광우병 발병으로 미국과 유럽의 쇠고기는 원천적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한우뿐만 아니라 수입쇠고기와 경쟁관계에 있는 육우, 양돈 부분도 혜택을 보게 됐다.
이후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축산물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축산업계는 장기 호황에 들어서고 생존한 축산농들은 벌어들이는 돈을 농장 시설 확대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 공급과잉으로 문제가 될 시점에 돼지 소모성질병, 고병원성 AI, 구제역 등이 발병하면서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해 줬고 축산부분의 호황은 2010년까지 이어진다.
2000년의 축산업은 호황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10여년 간 호황은 정부의 규모화, 품질고급화, 브랜드화 등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정부가 손도 데지 않고 코를 풀었다고 표현해도 될 폐업농들을 밟고 일어선 호황이었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폐업을 유도하거나 구조조정을 시켜야 했었는데 상당수의 농가들의 금융위기를 거치며 알아서 폐업을 선택해 준 것이다. 이들 농가들의 선택 때문에 농장의 규모화가 가능했고 사육두수가 계속 증가함에도 높은 가격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외환위기 때의 폐업농, 구제역과 조류독감 발병으로 피눈물을 흘린 이들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을 호황이었던 것이다.

축산업, 버블 붕괴

축산부분이 각종 악재에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착시효과를 주고 있는 사이 농민들은 규모화에 열을 올렸다. 벌어들였던 돈을 농장의 규모를 키우는데 몰두했고 각종 경영체를 만들어 계열화, 브랜드화에 올인 했다.
지역마다 축협과 영농조합을 중심으로 한우브랜드가 생겨나고 도계장을 중심으로 닭계열화 회사가 생겨났다. 양돈부분은 배합사료회사가 중심이 돼 수직계열화에 박차를 가했다.
자조금이 생겨나면서 한우·돼지·닭고기와 계란 광고가 TV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고 축산업의 겉모습은 계속 화려해 져 갔다. 지난 호황기 때 우리 축산업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2008년부터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바로 농장의 규모화로 가축의 사육규모가 시장에서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닭의 경우 08·09·10년 연속된 고병원성 AI로 급한 불을 껐다. 소와 돼지도 10년 구제역으로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리는 듯 했다.
하지만 2011~2012년 농장재건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다시 공급과잉에 따른 어려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이미 농장의 규모화가 이뤄지면서 투자된 농장 즉, 인프라가 충분했기 때문에 농가들이 확보한 축사에 가축을 모두 집어 넣을 경우 공급과잉 상황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과거에는 대형농장 운영경험이 미천하다 보니 생산성이 좋지 못했는데 노하우가 쌓이면서 폐사도 줄어들어 공급과잉을 더욱 부추겼다.
2011년 하반기 이후 한우, 양돈, 산란계, 육계까지 전 품목에서 공급과잉 상황이 연출되더니 2012년부터는 여기저기서 가격 폭락에 농민들의 경제상황은 악화되고 설상가상 2007년 이후 국제곡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과거와 같은 저렴한 사료를 구할 수도 없게 됐다.
엄청난 대출을 끼고 농장을 키운 농민들은 부채에 늘어가는 사료 값에 한숨을 짓고 있다.

경쟁력 강화 책은 허상이었다

1990년대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입된 정책들은 결국 농민들을 빚의 굴레로 밀어 넣고 말았다.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공산품과 같이 고정된 가격에 판매하는 품목이 아니기에 공급과잉 상황이나 소비감소 상황을 맞이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투자를 하면 할수록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줄어든 수익을 보존하려 규모의 경제로 대응할수록 가격은 더욱 곤두박질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품질고급화가 대안처럼 보이지만 앞서가는 몇 명만 이득을 보고 나머지는 오히려 낙오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고 브랜드 사업도 품질차이, 차별성이 없는 육류를 가지고 마케팅을 하려하니 오히려 비용만 증가하고 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애써 쌓은 인지도도 공급과잉이라는 상황 속에 묻혀 버리고 많은 비용을 들여 높은 등급의 축산물을 생산해도 과거보다 저가에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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