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객관적 지표'인가 '정치산수'인가?
통계, '객관적 지표'인가 '정치산수'인가?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3.08.23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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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 재밌는 일화가 있다. 그 당시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 숫자에 밝았던 그는 국회에서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각종 통계 수치를 인용해 조리있는 답변을 내놓는 유능한 총리였다.

어느날 총리는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숫자가 포함된 통계 및 수치를 들며 의원들을 설득했고 그가 의원들을 설득할 때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메모지를 보며 조리있는 답변을 내놨다. 당시 의원들은 총리의 명쾌한 설명에 혀를 내둘렀다.

총리가 답변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올 때 실수로 메모지를 떨어뜨렸는데 의원 중 한사람이 그 메모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메모지에는 숫자하나 적혀있지 않은 백지였다. 그는 메모를 보는 행동을 통해 의원들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항상 통계 수치를 인용하며 조리있는 답변을 내놨던 벤저민은 중요한 말을 남겼다.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벤저민의 이 말은 지금까지 통계의 위험성을 지적할 때 회자되고 있다.

물론 통계는 의사결정을 할 때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숫자로 호명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통계는 객관성과 진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객관과 중립의 요구가 더욱 절실해 지는 지금, 통계의 힘은 정책입안, 과학에서 가설의 검증, 마케팅에서 소비 심리 조사, 선거 등등 우리 사회전반에 그 도구로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통계와 관련 최근 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가 도마위에 올랐다. 농경연은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내년 말까지 1년여 남은 시점에서 농업인의 77%가 쌀 관세화를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쌀에 대해서만은 MMA(의무수입)물량을 제외하고 수입이 금지됐는데 쌀 농민들 스스로가 수입개방을 찬성한다는 이번 농경연의 조사결과는 수입개방을 꾸준히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다수의 농민들을 만난 기자 입장에선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물론 관세를 높게 책정해 수입개방을 한다고는 하지만 농민의 절반도 아닌 80%에 가까운 수가 수입개방에 찬성한다니 농경연이 내놓은 통계가 올바른 통계인지 의심스러웠다.

해답은 여론조사 방법에 있었다. 쌀 관세화에 대해 모르겠다고 응답한 농민들에게 관세화의 장단점에 대해 각각 설명을 했지만 장점을 지나치게 부각해 찬성 답변을 유도했으며 쌀 시장 전면 개방이란 문구도 쌀 관세화라는 어려운 말을 사용해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숨겼다.

농경연과 정부는 이 통계치를 가지고 농민들은 쌀 개방을 원한다며 관세화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쌀 개방시기를 미룰 경우 의무수입량을 추가로 늘려줘야 하기 때문에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객관성에 문제가 될 수 있는 통계치를 들고 나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삼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벌거벗은 통계’의 저자 발터 크래머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통계를 들먹인다”고 일갈하며 통계의 착시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통계의 영어 표현은 ‘statistics’ 이다. 이 속에 국가를 나타내는 ‘state’ 의 어원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미묘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이 사태를 바라보는 기자 개인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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