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농산물 수급조절위원회 문제없나
<이슈분석>농산물 수급조절위원회 문제없나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4.05.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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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매비축사업·수급조절기준가격·폐기지원금 현실과 괴리

■ 가격하락 지속 시 농산물 수매비축사업 무용지물
 
제주도에서 무를 유통하고 있는 송현수 씨는 최근 월동 저장무 40톤가량이 방출됐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올초부터 정부는 반토막 난 무가격을 잡겠다며 농협을 통해 2만톤의 시장격리,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2000톤을 수매하는 등 가격 회복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생산자 단체들도 1만톤 가량을 자율폐기하며 가격 회복에 힘을 보탰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나마 가격 하락세가 누그러져 수급위에서 제시한 가격 안정단계에 진입하긴 했지만 송 씨는 안정단계 중에서도 바닥수준이라며 생산비를 건지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푸념했다. 이런 상황에 aT가 2월에 수매한 월동무를 시장에 방출했다는 소식은 그에게 청천벽력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수급정책을 펴는 데는 수급조절위원회에서 산정된 각 단계별 대응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무의 경우 4월 수급조절매뉴얼상 안정단계는 7269~1만3533원. 정부는 월동무 가격이 안정단계에 진입하자마자 저장성이 떨어진 월동무 40톤 가량을 시장에 푼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월에도 낮은 수준에서 안정과 경계단계를 반복하고 있던 배추에 대해 저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축물량 1000톤 가량을 김치공장에 납품했지만 농민들의 반발로 추가 방출을 자제한 바 있다.
 
당초 수매비축사업은 공급량이 넘칠 때 싼 값으로 농산물을 수매해 가격이 오를 때 비싼 값으로 방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농산물 특성상 저장기간이 최대 3개월을 넘지 못하며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 등의 저장비용 지출 또한 만만치 않다. 올해처럼 기상이 좋아 공급이 넘쳐 가격하락이 지속되면 정부가 수매 비축한 농산물은 결국 상품성이 떨어져 기간 내에 방출하지 못하면 폐기처분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장 만료시기가 다가오면 정부에서는 농민과 유통인들의 반발에도 가격이 안정단계로 진입하는 동시에 방출을 검토하고 있다.
 
결국 수급위 위기별 조치사항에 명시돼 있는 수매비축사업은 가격하락이 지속될 때 어차피 시장에 풀리는 물량이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농민들의 볼멘소리는 푸념이 아닌 셈이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시장에 물리는 양이 미미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농산물 가격은 비탄력적이어서 조금만 공급이 넘쳐도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매비축사업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최근 정부정책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수매비축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aT는 최근 배추가격이 하락경계단계에서 머물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지난 4월 시설봄배추 2000톤에 대해 수매비축을 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를 보류하고 시장격리로 방침을 선회했다.
 
■ 기준가격 낮고 수급위 결정 산지반영 늦어
 
송 씨는 물론 복수의 유통관계자들에 따르면 수급조절위원회가 제시하는 각 단계별 가격이 너무 낮게 설정돼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송 씨가 최근 월동무를 가락시장에 납품하기 위해 산출한 유통비용만을 따져보니 18kg PE 포대 당 세척·포장비 2000원, 제주산지에서 창고로의 물류비 1500원, 저장비 1000원, 창고에서 가락시장까지의 수송비 1000원, 상상수수료 500원으로 생산비 등을 제외하더라도 최소 평균 6000원 이상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전국 산지유통인들의 단체인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의 유통비용 산출결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급위에서 제시하고 있는 안정단계 진입으로의 4월 최소가격은 7269원으로 송 씨가 산출한 유통비용과 생산비 등을 포함하면 안정단계의 산정가격은 안정이라고 하기엔 현실과 괴리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단계별 기준가격만이 아니다. 수급위에서 검토되고 결정한 사항이 산지 현장에 반영되기까지의 시간소요가 너무 길다는 지적은 유통인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aT 한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한 수매비축 사업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대국민 홍보도 병행돼야 하기 때문에 검토작업만 해도 빨라야 일주일은 걸린다”고 밝혀 정부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수급위원회가 열린 후 수급정책이 결정되고 시행까지 이르는 데 최소 2주 이상은 소요된다는 게 유통관계자의 설명이다.
 
농민들과 산지유통인들이 주장하는 정부의 뒷북행정은 여기서 기인하는 것으로 정책이 결정되고 나면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진 가격을 회복하기에는 이미 그 동력을 잃어버리는 게 현 수급위의 한계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되새겨봄직하다.
 
■ 산지폐기 지원금도 부족
 
수급위에서 결정된 산지폐기물량에 대한 정부 지원금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실시하는 봄배추 폐기 지원금은 10a(302.5평)당 69만9000원.
 
이 금액은 정부가 겨울배추를 산지 폐기할 때와 같은 금액으로 지난 4월 취재한 한 전남의 한 농민은 폐기지원금이 너무 낮다며 하소연했다. 그는 “하우스에 들어가는 생산비만 이미 75만원 수준인데 정부 지원금 69만원은 현실적으로 너무 적다”며 “지금 시세가 좋지 않다보니 이마저도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당장 농가들은 도매시장까지 출하할 때 들어가는 운송비 등을 지출하면 손해가 나기 때문에 단돈 10원이라도 건질 수 있는 산지폐기에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게 현실이다.
 
문제는 산지에서 농민과 유통인들이 지속적인 자금 압박과 가격하락으로 인한 경영난에 시달리다 보면 차기작형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데 있다.
 
이미 지난 2월에는 노지배추 포전거래 실적이 지난해 대비 30% 수준에 머물렀으며 배추 재배면적 또한 갈수록 줄고 있는 게 현실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노지봄배추 재배면적은 지난해보다 5% 감소한 2294ha로 조사됐다.
 
■ 강력한 가격지지정책으로 농산물 자금흐름 풀어야
 
유통업계에서는 정부에서 하루빨리 산지에서의 자금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자금흐름이 경직되면 차기작형 재배에 문제가 되며 이는 다시 농산물 가격폭등 사태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선 우선 정부의 강력한 가격지지정책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이광형 사무총장은 “우리 연합회와 정부가 공조해 산지폐기나 자율폐기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미미하다”며 “정부가 더욱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유통관계자는 “수급조절위원회가 생겨 정부에서 생산자나 유통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건 정부 아니겠느냐”며 “수급조절위원회는 사실상 언론무마용이며 정부가 기존정책만을 답습하고 뒷북치는 행정만을 일삼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어 “수급조절위원회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수급위 정책이 조속히 수행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며 좀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인프라 구성도 더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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